강원도교육청 블로그 나눗쌤 3월
나를 비롯해서 많은 학부모님들이 자녀에 대해 놀라워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학교에서 아이가 미루지 않고 규칙에 따라 할 일을 하면서 지낸다는 점이다. 직업 교사인 나 또한 내 아이가 학교에서 성실하게 잘 지낸다는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되면서도 신기한 기분이 든다. 왜 그럴까? 집에서는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익히 보아 왔기 때문이다. 또 얼마나 많은 잔소리를 했는지 기억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학교는 어떤 곳이기에 미룸보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걸까. 긴 겨울방학 기간 지루한 '청소 전쟁', '공부 전쟁'을 겪은 분들이라면 무슨 금단의 마법이라도 쓰는 줄 아실 것이다. 그렇지만 실상은 매우 단순하다. 정해진 일과와 규칙에 따라 모두가 행동하면 그냥 자연스럽게 몸이 따라온다. 학생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천성이 매우 게으르고 개인주의적인 교사라고 할지라도 '선생님'이라는 역할이 부여되고 '시간표'에 따라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되면 반자동적으로 신체가 반응한다.
물론 인간은 기계가 아니므로 고정된 법칙에 따라 움직여야만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본인이 지향하는 '멋진 삶'을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실천이 잘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강력한 시작 모션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가령 이것은 여성들에게 잘 먹히는 방법인데 만사가 귀찮을 때 "일단 머리부터 감아라. 그럼 다음 일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남성에 비해 평균적으로 머리카락 길이가 긴 여성의 경우 외출 준비로 머리를 감는 행위가 일종의 진입 장벽이다. 그런데 우선 머리를 감고 나면, 드라이를 하고 옷을 고르는 일련의 행위가 물 흐르듯 이어지게 된다. 예전 나의 할머니께서는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바늘쌈지부터 정리해라"라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지금에 와서야 참뜻을 알게 되었다. 차분히 반짇고리를 점검하면서 생각을 다듬으셨던 할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3월을 맞은 초등학생 또한 생활의 큰 변화를 겪는다. 긴 겨울 방학이 끝나고서 새 교실, 새 선생님, 새 친구들과 새로운 일상을 꾸려나가야 한다. 그래서 첫 주는 수업 진도에 치중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으로 서먹함을 깨고 학급 규칙을 만드는 등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데 중점을 둔다. 어떤 선생님께서는 2주 혹은 한 달 가까이 적응기간을 두기도 한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학교에 맞춰질 수 있도록 일종의 배려인 셈이다.
가정과 달리 학교의 규칙은 정교하다. 여덟 시 오십 분부터 아홉 시 십 분까지는 독서와 글쓰기를 한다, 매 수업이 끝난 후 쉬는 시간에 맞춰 화장실에 간다, 점심시간은 열두 시 이십 분부터 한 시 이십 분까지이다. 수업 중에는 교실 바닥에 누워서 쉴 수 없고 실내화를 착용한다. 기타 등등.
이러한 규칙은 머리로 암기한다기보다는 사실상 몸에 익히는 것에 가깝다. 반복 훈련과 단체 생활의 힘은 강력하다. 집에서는 대변 뒤처리도 힘들어하는 1학년 신입생이 한 학기면 씩씩하게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다. 편식이 심한 아이도 나물 반찬 한 두 숟가락은 더 먹게 되고, 운동을 죽어라 하기 싫어하는 친구도 체육시간에 운동장 한 바퀴는 거뜬히 뛸 수 있다.
그렇다고 학교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는 적응을 잘 마쳤더라도 집에서는 행동이 다를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학교도 나름 사회생활인지라 긴장되고 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집과 학교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약이 덜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한 집에서는 본래의 기질대로 돌아가게 된다.
그럼 집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힌트는 학교에 있다. 단순한 규칙의 생활화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이불을 갠다, 식사를 마친 후 자기 식기는 싱크대에 넣는다. 양치는 식후 30분 이내에 한다. 기본 행동강령을 꾸준히 되풀이하면 된다. 물론 부모님도 함께. 엄마 아빠는 유튜브 보고, 드라마 정주행 하면서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조던 피터슨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이 들면 방청소부터 해라! 방은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아이에게 책상과 주변은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장소이다. 아무렇게나 펼쳐진 책을 서가에 꽂고, 굴러다니는 마스킹 테이프를 서랍에 가지런히 넣는 행위는 중요하다. 별 것 아니게 보일 지라도 직접 몸을 움직여 단정하게 공간을 관리하는 행동 자체가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방 청소부터 하기, 이부자리부터 개기, 머리부터 감기, 양치부터 하기.
인생의 치트키가 뭐 별 것 있을까. 내가 원하는 멋진 인생으로 다가설 수 있게 하는 '열쇠'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가. 좋은 습관이 누적된 사람은 아무도 이길 수 없다. 좋은 습관이 누적된 사람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