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원초적인 대머리 공포가 있다. 어린 시절 3대가 한 집에 모여 살았다. 태어나자마자 할아버지는 양 옆머리만 남은 대머리셨다. 나이가 많으시기도 했지만 동네의 모든 할아버지가 대머리는 아니었다. 스물다섯에 결혼해 일찍 자식 둘을 낳은 우리 아버지도 대머리의 길을 걸었다.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가운데부터 술술 벗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은 세월을 따라 속되었다. 사막이 확장되듯 반짝이는 부위가 넓어졌다. 지구온난화보다 더 무서운 민머리가속화.
유전자로 계승되는 대머리의 역사를 목격한 나는 하늘을 원망했다. 왜 우리 집 남자들은 모발을 붙잡지 못하는 겁니까! 급기야 나는 모계 쪽의 넓은 이마까지 물려받았다. 부계의 이마도 넓은데 모계 쪽은 더 적나라했다. 달려라 만주벌판! 대머리 더하기 광활한 이마. 남자로서 피하고 싶은 두 유전 요인의 조합이 나의 숙명이었다.
나는 만 27세였던 2014년에 결혼했다. 또래에 비해 이른 나이였다. 이제와 드는 생각이지만 혹시 나의 무의식에 결혼을 서두르려는 본능이 숨어있지는 않았을까. 머리숱이 풍성한 남자는 만혼을 걱정하지 않는다. 헤어 스타일로 나이를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듬성한 남자는 만혼의 난이도가 상당히 올라간다. 모발이 없으면 같은 나이라도 겉보기 연령이 확 올라간다. 누가 대머리와 결혼하고 싶어 할까. 탈모 위험군인 사람이 미혼인 채로 나이를 먹으면 결혼할 수 있는 여지 자체가 줄어버리는 것이다.
이른 결혼은 예비 대머리에게 여러 가지 심리적 안정을 준다. 나처럼 일찌감치 자녀를 낳으면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모발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설사 오십 대 초반에 훌렁 벗어진다고 해도 이미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있다. 옆집 아빠와 우리 집 아빠를 비교하는 어린이도 아니기에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아내도 안타까워는 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을까. 결혼도 했겠다, 아이도 낳아 다 길렀겠다 이제 와서 대머리를 탓해 보았자 뭐 하겠는가. 대머리가 진행 중인 정치인의 아내들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결혼 이후 나는 두피 관리에 공을 들였다.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이라 해도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인간은 한계에 도전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탈모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샴푸를 썼다. 검은콩 두피 토닉도 칙칙 뿌렸다. 향이 그다지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효과가 있다면야. 샴푸를 할 때면 나는 속으로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솟아나라 모발모발.
과연 진심이 담긴 주문은 효과가 있었다. 아버지의 과거 대비 머리카락이 잘 붙어있었던 것이다. 두 아이를 기르며 맞벌이에 이런저런 고민거리가 있었지만 잘 지켜냈다. 과학의 힘은 대단했다. 탈모 제품 발굴에 들인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모계 쪽은 이마가 넓다 뿐이지 숱은 괜찮았다. 혹시 나는 절반의 확률로 모계를 따른 것은 아니었을까. 은근한 기대를 품게 되었다.
그럭저럭 모발을 사수하며 살아가던 중 내 삶은 큰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육아휴직을 하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 점심을 해결하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나 스스로 식사를 챙겨야 했다. 기회가 좋았다. 나는 예전부터 채식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었다. 이제 점심을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으니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것이 비극의 씨앗인 줄 알지 못한 채.
가족과 함께 먹는 아침과 저녁 식사는 그대로 두고 점심만 채식으로 차렸다. 잡곡밥에 멸치 볶음, 시금치나물, 도토리묵, 미역국을 먹었다. 조촐한 상차림이었다. 학교 급식은 맛있지만 어린이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살이 찐다. 거의 매일 육류가 나오고 간식도 빠지지 않는다. 반면 집 채식은 깔끔하고 소박했다. 칼로리가 낮고, 소화도 잘 되었다. 한 끼의 채식만으로도 저절로 몸무게가 감소했다.
다이어트에 자극받은 나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동물성 단백질을 지양하고 전체 식사의 70% 이상을 채식으로 채운 것이다. 간식 메뉴에서 그릭 요구르트를 뺐다. 나는 요구르트에 꿀을 넣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요구르트도 우유에 기반한 동물성 단백질이었으므로 과감히 제외했다.
달콤한 음식을 단념하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나는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커피와 디저트를 기호 식품으로 삼는 사람에게 꿀 요구르트의 빈자리는 컸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빵집에 다니게 되었다. 버터와 우유가 듬뿍 들어간 빵은 지양했다. 주로 무화과 깜빠뉴, 크렌베리 바게트를 커피와 곁들여 먹었다. 크루아상이나 몽블랑처럼 부드러운 풍미는 없었으나, 담백함 속에서 은은한 단맛이 배어 나왔다. 언제나 대안은 존재했다.
역시 채식하기 잘했어. 몸도 가볍고 기분도 최고다! 아침에 가뿐하게 눈이 떠졌다. 그러나 채식의 기쁨 이면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욕실에서 사달이 났다. 평소와 다름없이 샴푸를 하는데 손가락에 걸리는 게 적어진 느낌이 들었다. 기분 탓인지 뭔가 허전했다. 거품을 헹구려 샤워기로 물을 트는데 욕조의 물이 잘 빠지지 않았다. 왜 이러지, 뭐가 끼었나? 손가락을 수채구멍에 넣었다. 거기에는 파래줄기처럼 뒤엉킨 머리카락이 잔뜩 끼어있었다. 악몽의 한 장면.
소중히 간직해 온 모발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항암치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특수한 약을 처방받은 것도 아니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어 있었다.
채식. 생활에서 바뀐 부분은 그뿐이었다. 출근하지 않으니 업무 스트레스는 전혀 없었다. 수면은 충분했고 음악과 책도 원하는 만큼 즐겼다. 유일한 변수는 식생활이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채식과 간헐적 단식은 몸에 좋은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몸이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채식은 몸에 좋다, 틀림없이 참일 거라 믿었던 명제를 의심해 보기로 했다. 지난 일주일 치 식단을 적었다. 콩나물국, 군고구마, 연근조림, 가래떡구이. 휴대폰 갤러리에는 그간의 채식 사진이 남아있었다. 나는 음식을 4종류로 분류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기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발상실의 원인은 명백했다. 절대적인 단백질 부족. 채소류와 과일 섭취량은 넉넉했다. 그리고 탄수화물 비율이 지나치게 높았다. 나는 채식을 한다는 핑계로 영양이 불균형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단백질의 일종인 케라틴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에서 케라틴을 원활히 공급해 주지 않으니 빠질 수밖에. 무지의 대가는 컸다.
잠시 잊고 지냈던 대머리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당장에 채식 도전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바로 자라지 않았다. 산불로 소실된 산림이 일 년 만에 되살아나지 않듯 모발이 빠진 자리는 비어있었다. 보름 가까이 매일 콩밥에 고기를 먹었다. 보쌈, 족발, 찜닭, 제육볶음을 돌려가며 반찬으로 삼았다. 곧 체중이 원래대로 복귀했다. 그러나 불어난 체중이 전혀 아쉽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나에게는 체중보다 모발이 훨씬 가중치가 높다는 사실을.
모발이 다시 자라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뒤에서 사진을 찍으면 정수리 부분이 하얗게 보였다. 아이들이 내 어깨 위로 올라오는 장난을 치다가 할아버지 머리 같다고 나를 놀렸다. 보통 같으면 아이들을 나무랐을 아내도 침묵을 지켰다. 나의 머리는 탈모였다. 아이들은 사실을 말했을 따름이다. 없는 머리카락을 있다고 호도하면 안 된다. 슬픈 진실 앞에서 나는 참담함을 느꼈다.
삼 개월에 걸쳐 나의 머리는 점차 본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첫 번째 채식 라이프는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상실의 아픔에서 사람은 진정한 배움을 얻기도 한다. 2년의 시간이 흘러 나는 다시 육아휴직에 돌입했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나는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된 채식을 해보겠노라 단단히 다짐했다. 영양사가 식단표를 짜듯 식단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신경 썼다. 특히 단백질을 대폭 보충했다. 두부와 된장, 청국장 삼총사를 든든히 먹었다. 출출할 때면 아몬드와 호두, 감자를 입안 가득 채웠다. 모두 단백질 함량이 높은 식품이다.
두 번째 육아휴직이 한 달 하고도 절반이 지난 현재 나의 머리카락은 양호하다. 이마와 머리의 경계선도 뒤로 후퇴하지 않았다. 몸이 개운해지는 채식의 장점을 누리면서도 모발이 굵어졌다. 채식 탈모의 불안감은 싹 사라졌다. 채식이 나쁜 것이 아니라 무지하고 섣부른 도전이 나쁜 것이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탈모의 실패를 계기로 나는 처절히 깨달았다. 의욕만 앞선 무모한 절제는 위험하다. 대머리는 머리를 뒤로 넘길 수 없지만 나는 실패의 경험을 뒤로하고 다시 건강히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