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이 짧은 말 안에는 굉장한 겸손과 수용이 담겨있다. 우리는 에고가 인정하는 성공 혹은 이익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덕분에'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불안한 주택 시장에서 집을 살까 말까 고민 중이다.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아파트를 구매했다. 오 년 뒤 해당 아파트의 시세가 올랐고, 더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갈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아파트를 소개해준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덕분에' 일이 잘 풀렸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덕분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아주 어렴풋한 감각이라 할지라도.
에고가 너무 강한 사람은 내가 아닌 외부의 다른 영향으로 잘 된 일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최종 결정도 자신이 내리고 책임도 모두 내가 지는 것이니 혹여 일이 잘 되더라도 자신의 몫이라 여기는 것이다. 만약 일이 안 풀리면 다른 사람 혹은 상황 '때문에' 망한 것이라며 비난하기도 한다. 에고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성질이 있다. 이기적이며 만족을 모른다. 성공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실패는 외부 요일에 달려있다는 자기 합리화에 최적화되어 있다.
내가 '덕분에'의 힘에 놀라게 된 것은 명상 중에 번뜩 발견한 어떤 사실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일어나게 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고, 나의 인지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다.'라는 깨달음이다. 과거의 나는 어두운 감정에 휩싸일 때면 에고를 힘들게 하는 요소들을 부정했다.
그 녀석만 없었다면, 억울하게 당하는 상황에서 용맹하게 대처했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반복되었다. 뜻대로 되지 않았던 과거와 제대로 복수해 주지 못했다는 마음속 앙금이 나를 괴롭게 했다. 때로는 미래의 정보를 모두 기억한 채로 옛날로 돌아가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망상에 빠졌다. 특정 조건을 바꾸면 '에고'가 흡족해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갈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짧은 식견에서 나온 얄팍한 계산이었다.
'나'라는 존재는 부모의 몸을 빌려 세상에 온다. 태어나는 시기와 장소 고를 수 없다.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기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의 성별 그리고 자질이나 기질이 상당 부분 정해진다. 집안 사정은 또 어떤가. 재산이 넉넉한 가정일 수도,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일 수도 있다. 내가 속하게 될 국가와 사용하는 언어, 익숙한 문화 또한 마찬가지다.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고졸이셨고, 이웃 중에는 중학교도 못 간 분들이 계셨다. 외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평양에서 내려오셨다가 철도원으로 일찍 생을 마감하셨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중학교 무렵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내가 돌이 지나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뜨셨다. 나는 소규모 자영업자의 첫째이자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팔 남매의 막내아들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서른에 북쪽 전쟁터로 차출되어 여러 군데 부상을 입고 나서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하셨다면 아버지도, 나도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다. 이 밖에도 나열할 수 있는 온갖 삶의 조건들은 끝이 없다. 그리고 그 모든 조건들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동시다발적이고 상호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매 순간은 모든 원인과 결과가 적절히 균형을 맞춘 상태다. '에고'가 판단하기에 좋든 싫든 내 심장은 말없이 뛰고, 지구는 태양 주변을 돌고, 태양은 우리 은하의 중심을 기준으로 둥글게 움직인다. 어디선가 늙은 별은 죽고, 특정한 조건에 이른 우주 공간 어디에서는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 다른 별의 시작점이 된다. 엄청난 고온과 고압으로 인해 핵융합이 일어나고 원소들이 만들어진다. 지구의 일부는 낮이고 일부는 밤이며, 80억 명의 사람이 자기 종족이 거주하는 행성을 생존에 불리한 환경으로 만들어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것이 사실로서의 현재다.
사람의 신체 또한 장구한 역사적 결과물이다. 불덩어리 행성 지구에서 최초의 생물이 발생한 이래 생물은 무수히 많은 변주를 거치며 현재에 이르렀다. 고감도 시각 기능을 수행하는 눈, 섬세한 혀, 우주를 의식할 수 있는 뇌. 내가 원해서 가진 신체 기관이 아니다. 그저 태어났더니 수십 억 년의 불가사의한 사건의 조합에 의해 형성된 인간이라는 몸을 갖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길게 돌아온 이유가 있다. 현재라는 것은 광대무변한 우주적 인연으로 얽히고설킨 실시간적 실체이므로 내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부분이 대다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정말 나는 모른다. 다만 인지와 감각이 허락하는 만큼은 해석하고 느낄 뿐이다.
'망할 녀석 덕분에 지금 이렇게 숨 쉬며 밥 먹을 수 있다. 망할 녀석이 진짜 망할 녀석이 아닐 수 있다.'
엉뚱하지만 나의 결론은 '덕분에'라는 말을 에고가 판단하기에 나쁜 상황에서도 써 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나와 조합이 좋지 않은 누군가를 지독히 싫어했다. 그 결과 큰 갈등을 빚었고 서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미숙하고, 지혜롭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의 경험으로 인해 어른이 되어서는 극단적인 인간관계를 피할 수 있었다. 감정을 조절하고 예의를 갖추는 법을 배우고 실천했더니 사회생활이 부드러워졌다. 적을 만들 일이 없었다. 에고의 성에 차지 않는다고 타인을 비난하는 일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망할 녀석, 망할 상황이라 여겼던 것이 도리어 이후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이제는 지나간 모든 시간이 '덕분에'로 느껴진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 좋은지 나쁜지 당장으로서는 판단하기 힘들다. 좋은 일이라 여겨지면 감사한 마음으로 '덕분에'라며 받아들이고, 나쁜 일이라 여겨지더라도 '덕분에' 감사하게 될 날이 오리라 넘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즉각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게 된다.
좋고 나쁨은 에고의 기준이다. 세상만사는 그냥 벌어지는 것이다. 그 이면의 무한한 배경을 인간인 나는 절대 알 수 없다. 모든 일 '덕분에' 지금 이렇게 숨 쉬며 살고 있다. 어쩌면 운명의 흐름에 삶을 내맡기고, 고요하게 숨 쉬는 것이 살아있음의 단순한 진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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