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은 알고 있다
서울에서 알라딘 뮤지컬을 보고 온 이후 '아름다운 세상'은 우리 반 단골 음악이 되어 버렸다. 궁궐에서 답답하게 지내던 자스민 공주가 알라딘의 마법 양탄자를 타고서 부르는 노래. 물론 우리 반 채은이가 부르는 가사는 조금 다르다.
"공부 ~ 없는 세상~ 그대에게 보여주리~"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길래 이토록 보여주고 싶어 하는 걸까. 공부 없는 세상에서 직업 교사인 나는 실업자 신세다.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공부 있는 세상이 필요하다. 나에게 채은이의 노래는 무시무시한 '실업송'이다. 그런데 채은이의 노래를 끝까지 듣다 보면 반전이 존재한다. 노래가 갑자기 끊기며, 연극적인 독백이 등장한다.
"공부 없는 세상에는 비밀이 있어. 모두가 백수라고!(뭔가 허탈한 표정) 다들 놀고 있지 하하하. 취직도 못 하고."
공부 없는 세상을 외치는 동안에도 대한민국의 5학년은 취직을 걱정하는 것이다. 세상이 애들을 괴롭히기 위해 공부를 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걸 채은이도 알긴 안다. 그렇지만 어떡해. 춤추고 싶고, 소리 지르고 싶은 걸. 공부 해방은 학생의 숙명. 교사가 수업 시간에 교무실에 급히 갔다 올 일이 있으면 교실은 미스터리 공간이 된다. 수업이 지체될까 봐 나는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그러나 조용히(초등교사 16년 차의 필살 기술) 미끄러져 나아간다. 어째서 지금 타이밍에 연락이 오는 것이냐! 어찌저찌 용무를 해결하고 돌아오는 길. 복도의 바닥을 타고 우리 교실의 웅성거림이 퍼져 나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이 온 복도를 가득 채운다. 발끝의 진동으로도 반 아이들이 떠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 녀석들아, 안 된다. 다른 반은 시방 수업 중이란 말이다. 나의 발바닥은 마찰력으로 더 뜨거워지며 속도를 높인다. 교실 뒷문 손잡이를 잡고 돌린다. 철컥. 동작 그만!
이럴 수가, 모두들 자리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눈을 비벼보아도 장면은 그대로. 내가 헛것을 들었단 말인가. 그럼 피부에 닿았던 그 둔중한 진동은 뭐였는데. 감각에 오류가 생긴 걸까. 아니다, 겨우 삼십 대 후반에 이런 착오를 할 리가 없다. 심지어 담임이 돌아왔음에도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과제에 집중하고 있는 탓이다. 아니면...... 연기를 하고 있거나.
나는 심호흡을 한다. 정신을 올곧게 가다듬은 후 주변 상황을 살핀다. 현장에 답이 있는 법. 연기는 반드시 허점을 남긴다. 일단, 교과서를 보자. 문제 진행도가 낮다. 내가 교무실에 다녀올 시간이면 과제 절반 이상은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초반부에 머물러 있다. 흠, 뭔가 수상쩍은 냄새가 난다. 태우의 공부를 봐주는 척하며 어깨에 손을 올려본다. 파르르, 미세하지만 진동이 발생했다. 더군다나 살갗 아래가 뜨겁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곳에서 더위를 타다니. 이건 명백히 태우의 심장이 놀라 뛰고 있는 것이다. 머리에서도 열기가 슬며시 올라오고 있다. 이런 증상의 원인은 하나. 지독한 독감(삼복더위 팔월에?)에 걸렸거나 아니면 내가 없는 사이 놀았거나.
재빨리 하승이의 등에 손바닥을 대어 본다. 곧바로 반응이 돌아온다. 이 아이의 가슴도 쿵쾅이고 있다. 그 장면을 세아가 곁눈질로 살핀다. 한쪽 눈은 책에 고정되어 있지만 반대편 눈은 잠깐 이쪽을 향했다가 돌아간다. 명백한 정탐행위다. 뒷줄의 은유, 현서도 작전의 실패를 눈치챘는지 표정이 묘해진다. 이것으로 상황파악 끝. 나는 고요히 말한다.
"그 짧은 시간에 감쪽 같이 놀았군. 대단한 기술이야."
"크큭큭."
"놀았으니까 빡세게 공부해볼까?"
"네에."
제 발 저린 도둑들이 웃는다. 스마트패드에 아무리 뛰어난 첨단 기술이 적용된 교육 콘텐츠가 있어도 아이들에게는 피가 돌고 숨을 쉬는 인간 교사가 필요하다. 자료만으로는 동기부여에 한계가 분명하다. 손바닥으로 심박수와 체온의 변화를 감지하는 특급 무공은 꽤 쓸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