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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브라운 봉수대

2025.11.01

by 이준수

봉수대 하나를 보기 위해 강릉에서 동해까지 세 번이나 움직였다. 나는 두 다리를 써서 기필코 저 질퍽한 진흙길을 타고 올라가 봉수대를 보고 싶었다. 세 번의 주말을 썼다. 첫번째, 두번째 주말은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질퍼기(우리는 그 쫀득한 브라우니 반죽 같은 길을 그렇게 불렀다)'에 졌다. 하얀색 뉴발란스550은 브라운 컬러가 되어버렸다. 나는 왠지 오기가 생겨 그날 저녁 묵호항에 들러 진한 갈색 국물의 '돈코츠라멘'을 먹었다. 가을의 저녁은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진다. 쌀쌀한 바람을 훅 들이킨 뒤 들르는 라멘집은 상당히 괜찮은 조합이다.


'멘야산초쿠 묵호점'에서 뜨거운 라멘을 후루룩 먹으며 다음 주에는 반드시 봉수대를 보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아, 그런데 돈코츠 라멘의 밸런스가 무척 훌륭해서 면 사리를 추가해버리고 말았다. 뜨끈뜨끈한 국물이 들어가자 '봉수대 도전'은 하나의 모험처럼 여겨졌다. 브라운은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긴 가을 장마는 그칠 줄 몰랐다. 나의 투지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둘째 주에는 팀버랜드 고어텍스 등산화까지 갖춰 신고 어달산 어귀까지 갔다. 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내린 비를 머금고 있던 흙이 갈색 흙탕물을 예전보다 질질 쏟아냈다. 강릉에서 어달까지 왔는데 물러설 수는 없지. 장화를 신은 아이들을 양손에 잡고 산길을 올랐다. 아니지, 늪지대를 허우적거렸다. 신발이 또 엉망이 될 테지만 재미있었다. 자발적으로 기어들어간 재난은 아웃도어 스포츠일 뿐이다.


아, 부드러운 빛깔의 베이지 면바지에 다크 브라운 패턴이 생겼다. 우리는 십 분 간 낑낑거리다 어그적어그적 돌아내려왔다. 서로의 모습이 수재민 같아서 웃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 신경을 집중한 탓인지 근육이 기분 좋게 긴장해 있었다. 두고 봐, 이제부터는 건기라고.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비는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 바닥은 말랐다. 정확히는 기괴한 모습으로 흙이 굳어있었다. 포크레인이 거칠게 바닥을 파뒤집으며 산 꼭대기까지 간 탓인지 흙길은 '화성'이나 '토성(가본 적은 없지만)' 바닥처럼 엉망이었다. 다만 다행이라면 그것이 액체 상태가 아니랄까. 혹성 탐험을 하듯 함정처럼 숨어 있는 진흙 웅덩이를 피해 봉수대에 올랐다. 기쁘다.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고 장단지 근육이 올라 붙는다. 바람이 불어 고개를 돌리면 파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있다. 절기는 상강. 상강의 바다는 선명한 파랑이었다. 나는 이 바다를 보려고 세 번이나 여기에 온 것인 줄도 몰랐다. 잠깐 눈을 감았다.


봉수대는 기단만 남아있고 봉화 시설은 없었다. 안내판의 글자는 죄다 지워져있다.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기단 위로 바다를 복사한 듯한 가을 하늘이 가득차 있었다. 나는 근육을 썼고 생각이 없었다. 평화로웠다. 내가 바란 것은 단지 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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