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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너희를 어찌해

협성독서왕 독후감 공모전 일반부 3위

by 이준수

-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쓴 독후감입니다. -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월요일 아침 어김없이 애국조회가 시작된다. 장엄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교실 전면에 걸린 태극기를 쳐다본다. 이제 가슴에 손만 얹으면 되는데 습관적으로 주위를 살핀다. 찌릿!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다 딱 눈이 마주친 녀석들이 잽싸게 손을 올린다.


눈치 없는 다ㅇ이는 상ㅇ이 더러 왜 갑자기 멈추냐고 성화다. 상ㅇ이는 눈을 감아 버린다. 그제야 사태를 인지한 꼬마가 담임에게 인사를 꾸벅하고는 곧은 차렷 자세를 취한다. 문제는 손이다. 다ㅇ이는 아직도 왼손과 오른손이 헷갈린다. 주변 인물 중 제일 확실해 보이는 승ㅇ와 같은 방향을 취한 다음에야 안심한다. 저 녀석을 9년 뒤에 어른 딱지 붙여서 세상에 내보내야 한다고? 그럼 더 심한 지ㅇ이는? 규ㅇ이는 어떡해?


나는 4학년 담임이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일원을 길러내기 위하여 십 년째 분필을 잡고 있다. 처음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고 고3 시절 의대 갈 성적이 되지 않아 차선으로 교대에 왔다. 내 목표는 확실했다. 고교 이후 진로로 고민하지 않기. 교대를 비롯한 의대나 경찰대, 약대 이런 계열은 내부 경쟁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대학 입학만 하면 직업이 대게 고정된다. 야근 죽어라 하고 상사 비위 맞추는 대기업은 가기 싫고 SKY 일반 학과를 간다고 해도 또 다른 길을 모색하기가 두렵고 귀찮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막상 교직이 너무 잘 맞네. 아, 하늘이 내려주신 천직인가 보다는 개뿔, 오후 다섯 시면 퇴근해서 그랬다. 어쩌다 보니 “다들 이렇게 살아. 다른 회사도 그래. 요즘 저녁 시간 전에 퇴근하는 사람이 학교 선생 말고 누가 있냐?(159쪽)”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좁은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면 주민들은 노동에 절어 지친 얼굴이었다. 그 주민들은 우리 반 학부모였고, 친구였으며, 이웃이었다. 내가 바란 건 소박하고 평범한 삶이었지 의도치 않은 특권 생활이 절대 아니었다. 진로 시간에 아이들한테 물어봐도 사정은 비슷했다.


“저는 과학자가 되어 관절염을 낫게 해주는 약을 개발하고 싶어요.”

“소방관이 되고 싶어요. 다친 사람들 구해주면서.”


과학자가 되고 싶은 찬ㅇ이는 대학원생들이 교수의 노예처럼 부려지면서 박봉에 시달리는 과정을 모른다. 소방관 되고 싶은 명ㅇ이는 취객에 맞아 죽어도 순직처리 되기 힘든 극한 상황을 모른다. 그저 자기 담임처럼 9시쯤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패턴이 기본인줄 안다.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은 범위가 넓고 거침없다. 왜냐하면 어떤 직군을 꿈꾸더라도 저녁이 있고, 휴일이 보장되는 삶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기대를 깨고 싶지 않아 늘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지만 께름칙했다. 초중고 12년 간 학교 다니며 흥미와 적성에 맞는 일을 찾으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나? 기회는 누구에게나 균등하고 결과는 정의로운가? 그 어떤 질문에도 명쾌하게 “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이상과 현실은 대한민국과 호주만큼이나 멀고 달랐다.


현실을 올바르게 보여주지 않는 것도 아이들을 기만하는 게 아닐까. 교과서에는 조금만 신문을 들춰보고, 뉴스를 시청하면 들통 날 거짓말이 무척 많았다. 세상의 낯 뜨거운 속살은 가려지고 점잖은 문장이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아있었다. 나는 교묘하게 편집된 사실을 진실인 양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 도덕 2단원 수업 때도 그랬다.


“예의바른 행동과 말투는 매우 중요해요. 공손하고 다정한 사람이 됩시다.”


공손하고 다정하게’ 수업을 진행하다가 멈칫했다.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경우를 말하는 차례였다. 친절하게 웃는 편의점 점원, 교장 선생님께 깍듯이 인사하는 어린이가 예시로 등장했다. 한결같이 ‘을’의 이야기였다. 주민에게 공손한 국회의원, 손님에게 다정하고 예의바른 기업 회장 따위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강자의 공손과 다정함은 훌륭한 인품의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약자는 공손과 다정함의 이름으로 순종과 침묵을 강요받는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돈도 실력,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같은 파렴치한 언사가 공공연히 떠도는 세상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갑’이 될 확률이 높을까? ‘을’이 될 확률이 높을까? 미안하지만 후자가 압도적으로 높다. 본디 ‘갑’은 소수고 ‘을’은 다수다. 결국 나는 ‘을’ 후보자에게 ‘을’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품행을 훈련시키는 꼴이 되어버린다.


보ㅇ가 말수 줄어든 담임을 빤히 쳐다봤다. 보ㅇ는 너무 착해서 손해를 봐도 그저 웃고 마는 아이다. 약삭빠른 놈들이 보ㅇ의 성격을 악용한다. 어떻게 대처하나 지켜보고 있으면 너무 답답해서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약육강식은 교실에서도 적용된다. 차라리 사전적 정의는 오세아니아 바다에 던져 버리고 “한국에서는 아직 목소리 큰 게 통해. 돈 없고 빽 없는 애들은 악이라도 써야 되는 거야(182쪽).”라고 가르쳐야 되는 거 아닌가?


심지어 여기는 변변한 입시학원, 영화관 하나 없는 강원도 탄광촌이다. 마을에 한두 명 쯤은 나오는 SKY 진학 현수막도 찾아보기 힘든 동네다. 왕년에 지나가던 똥개도 만원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옛 영광의 깡촌에는 빈집이 쌓여간다.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고, 옛날이랑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하는데, 어떤 동네, 어떤 사람들은 옛날 그대로야. 나아지는 게 없어(103쪽).”쓸쓸해지는 풍경이다.


이 아이들을 어찌해야 하나. 정부는 미세먼지 줄이겠다며 화력 발전소 가동률과 석탄 비축량을 낮추는 방안을 내놓았다. 또 대한석탄공사는 만년 적자로 2023년까지 단계적 인력 감축 계획을 수립, 시행 중이다. 나라 경제가 안 좋다고 하지만 도계는 그 중에서도 명백히 쇠락하는 동네다. 타이타닉도 맨 아래 3등석 객실이 가장 먼저 물이 차지 않던가.


네비게이션 사용법 가르치기


‘겨우 11살 밖에 안 되는 꼬맹이들이야. 뭔 걱정을 그리 사서 해?’


암울한 소식이 들릴 적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어난다. 애들 인생에 일 년 스쳐 지나가는 일개 담임 주제에 뭘 그리 깊이 고민하냐고 자책하지만, 늘 결론은 뭐라도 하자였다. “집 좋네. 몇 평이야?(143쪽)”가 안부인사로 건네지는 세상에 아이들을 맨몸으로 떠나보낼 수 없었다. 적어도 본인이 행복을 느끼는 조건을 인지하고, 돌아가더라도 그 길 따라 타박타박 가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이를 테면 자동차 네비게이션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랄까. 어차피 사람 인생은 남이 대신 운전 못 해준다. 당연히 목적지도 다르고, 가는 길도 다르며, 휴게소에 들러 핫도그를 사먹을지 말지도 운전자가 결정한다. 처음부터 이러한 전제를 깔고 시작하는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은 스트레스 관리 면에서 차이가 크다.


가끔 서울 출장 가면 사교육 업체 광고가 눈에 띈다. 예나 지금이나 광고 전략은 달라진 게 없었다. 마치 애들이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고, 지금 안 하면 늦는 양 겁을 준다. 그걸 읽어내려 가다 보면 없던 초조함이 생겨나 심장 구석구석 퍼져나간다. 20년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10대에 누리는 행복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평온하고 안녕한 상태가 불안해지면 자연스레 자기비하가 뒤따른다.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11쪽).” 스스로를 착취하고 억압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시절이 떠올라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우리 반 애들은 시골에 살아서 안심이었다. 여기는 애들 자체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협박성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돈이 안 되니까 업자들이 붙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애들이 외부의 이상한 상술에 놀아나지 않고 학교 교육 중심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선호하는 네비게이션 교육법은 토론과 시사 이슈 확인이다. 현재 아이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교육 자료의 부족이 아니다. 오히려 정보는 넘치는데 자기 인생의 행로를 모르고, 남이 떠다 먹여준 지식으로만 승부를 보려 하니 자발성이 떨어진다. 무섭고 낯설어도 대한민국의 속살을 직시하고 일찌감치 대비하는 편이 낫다.


“이 톱니바퀴가 어디에 끼어 있고 이 원이 어떻게 굴러가고 이 큰 수레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그런 걸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19쪽)” 같은 후회가 들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이 속한 세계를 조망하고 시뮬레이션 돌려야 한다. 아이들과 이야기 할 거리는 차고 넘친다. 얼마 전에 나눈 <헬조선> 토론은 미술 시간이 시발점이었다.


러시아 월드컵 시즌에 맞춰 본선에 진출한 나라 국기 그리기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32개국 깃발이 차례로 완성되어 교실에 걸렸다. F조에 걸린 태극기가 반듯했다. 그런데 수행 평가 채점을 하려고 자세히 보니 대한민국 글자 옆에 조그맣게‘헬조선’이라고 적혀있었다. 태극기를 그린 A를 따로 불렀다.


“무슨 뜻인지 알고 쓴 거에요?”

“배그(온라인 게임 배틀그라운드)에서 헬조선, 헬조선 하길래...”


가슴이 철렁했다. 지금이야 채팅창에서 주워들은 비속어를 아무 생각 없이 쓴다지만, 머리가 굵어지면 그 뜻을 알아차릴 것이다. 뚜렷한 근거도 없이 미움의 바다에 빠지는 건 곤란했다. 혐오는 이성적 판단을 흐린다. A를 심하게 나무라지 않았다. 대신 이어지는 국어 수업에서 <우리나라는 헬조선이다>로 찬반 토론을 열었다.


절반 정도는 헬(Hell)이 뭔지, 조선이 뭔지도 몰랐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짝꿍을 보며 키득대는 녀석들은 좀 아는 애들이었다. 그중 제일 크게 웃는 B에게 헬조선의 뜻을 물어보니 지옥 같은 한국이라고 했다.


“한국이 지옥 같다는 데 동의해요? 그러니까 찬성하나요?”

“음, 꼭 그렇지는 않는데 댓글에서 다 헬조선이라고 했어요.”


옆에 앉은 C도 유사한 답변을 내놓았다. 하긴 태어난 지 십 년 밖에 안 된 어린이들이 벌써부터 나라가 지옥 같으면 큰일 날 일이었다. 집값, 카드값, 취업, 대입, 내신 성적, 사교육비 걱정 안 하는 해맑은 친구들에게 잠시만 엄마, 아빠가 되어 보자고 했다. 부모님의 하루 일과를 방학생활계획서 짜듯 표로 정리했다. 만일 내가 어른이라면 어떤 점이 어려울지 세 가지만 꼽았다. 연관성 있는 의견끼리 묶으니 세 개의 큰 덩어리가 나왔다.


-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고, 가끔 주말에도 일을 해서 피곤하다.

- 돈이 없어서 걱정이 많다.

- 스트레스 푼다고 술 마시고 담배를 피워서 건강이 안 좋다.


조사 결과를 다 함께 읽었다. 그제야 “아! 힘드시겠다.” 탄식이 흘러나왔다. 지ㅇ이는 왜 사람들이 한국을 지옥이라고 말하는지 알겠다고 했다. 공감대가 형성되자 준비해 두었던 비장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여러분들이 어른이 되면 어떨 것 같아요? 그때도 헬조선일 것 같나요?”


아이들은 망설이며 말을 아꼈다.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보다 못한 소원이가 나라가 지금보다 발전하면 괜찮을 거라고 애써 웃었다. 모두들 그러길 바랐는지 여기저기서 고개가 위 아래로 움직였다. 이대로 멈출 담임이 아니었다.


“9년 뒤에도 사정은 크게 바뀌지 않을 거예요. 여전히 집값은 비싸고, 월급은 짜며, 일 하는 시간은 많을 거예요.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른 나라로 이민 갈까요?”


4학년 1반은 모두 한국에 남는 쪽을 골랐다. 가족과 친구를 남겨두고 갈 수 없다, 영어를 못한다, 자연이 아름답다 등등 떠나지 않을 이유는 많았다. 현ㅇ이는 그냥 가끔 삽겹살 구워먹고 LTE 터지는 곳이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걸 듣고 성ㅇ이가 외식할 만큼 돈 벌면서 캠핑도 가끔 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어려운 용어는 하나도 오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11살의 언어로 세습 자본주의나 최저생계비, 삶의 질 같은 개념을 다뤘다. 돈벌이가 안 되는 직업 논쟁에서는 “내가 뭘 하고 싶으냐가 정말 중요한 거지. 돈이 안 벌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좀 덜 억울할 거 아냐(151쪽).”로 결론이 났다.


교실 토론은 늘 이런 식이었다. 지내다가 함께 이야기 나눌 사건이 터지면 키워드를 뽑아 논쟁했다. 헬조선, 반칙, 행복, 금수저, 할로윈으로 시작한 토론의 종착역은 언제나 우리가 사는 일상이었고, 어떻게 살 것인가로 마무리되었다.


토론 몇 번 하는 게 무슨 대수냐고 할지 모르겠다. 대화한다고 사회가 뒤집어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맞다, 세상은 당장 뒤집어지지 않을 뿐더러 과격한 혁명을 일으켜 뒤집을 마음도 없다. 다만 의미를 찾고자 한다. 한국에서 사는 것이 이토록 복잡하고 지난할 지라도, 삶의 목표가 있고 나름대로 가치를 실현하며 사는 인생은 괜찮지 않을까?


나랏돈 받으며 딸 둘 키우는 사람으로서 한국을 애증한다. 사랑하기에 화도 나고, 욕심이 생긴다. 아직까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몸으로 일하는 사람이나 벌이도 별 차이 없잖아. 블루칼라라고 깔보는 분위기도 아니고(108쪽).”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한국이 지긋지긋해서 이민가고 싶은 나라라고 해봤자 서북유럽, 북미, 호주 포함해서 스무 개 남짓 아니던가.


한국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한국이 좋아서, 한국이 싫어서 그 무엇이 되었든 웃는 사람을 더 자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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