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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석 Aug 31. 2019

바람 부는 날에 소환된 추억

이번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를 만큼

책 속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간간히 글도 조금씩 쓰고.....!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쭈굴해져 가는 낯빤대기와 
염색한 검은 머리 밑으로
서릿발처럼 허옇게 치밀어 오르는 흰 터럭들.....ㅠㅠㅠ
그나마 얼마간이라도 남아있는 체력이라고 유지하려고
300계단을 몇 번씩 왕복했더니
가랭이랑 무릎이 찌걱찌걱 짜증을 내고 있습니다.

나이 탓이런가!
요즘 마누라 얼굴을 쳐다보면
괜히 짜~안~한 마음에 가슴이 아려옵니다.

갱년기가 지나 푸석해진 얼굴
탄력을 잃어버린 피부
늘어진 얼굴......

그럼에도 여전히 바쁩니다.
자기 일에다 집안일,
그리고 손주들 봐주러 새벽같이 딸네 집으로....

엊그제 보니,
입술이 새파랗습니다.
- 당신 입술이 왜 그래?
- 뭘?
- 입술 색이 왜 새파랗냐고?
- 뭐, 바빠서 그렇지 뭐~
-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청소기 돌리고 바닥 좀 닦어!
 ......!
알았어.....!

청소기를 돌리면서도 내내 마누라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나 때문에 호강은커녕 고생만 덕지덕지 하고 사는 여자.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갈수록 부담되는 손주들 몸무게에 어깨와 허리가 아프답니다.

광화문 네거리에 있었던 "광화문 빌리지"
제 기억에 건물 4층에 있었습니다.
당일 2명의 여자와 더블로 선을 보고(당시 문공부 직원)
별로 시답지 않아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기 여친을 만난다면서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합니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 마누라를 만났지요.

첫눈에 반한 것은 우리 마누라였고
저는 그냥 그러저러했습니다.
며칠 뒤 전화를 하니 만나던 날 밤 한숨도 못 잤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당최 얼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종로, 무교동, 명동을 주유하던 자칭 한량이라서
주변에 거시기한 여자들을 꽤 많았더랬죠.

그런데 우리 마누라는 핵교 졸업하고
직장 다니면서 이모님 집에서 지냈는데
워낙 호랭이 같은 이모님 때문에
칼퇴근은 기본이고 남자는 어림 반푼의 반푼도 없었답니다. 
그러니 한량끼 있는 남자를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만났으니
얼매나 가슴이 콩닥콩닥 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그날 저녁에 만난 남자의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후 저는 그냥저냥 그녀를 만났고
그녀는 매주 주말이면 하숙집으로 찾아와
꽃도 꽂아주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주었습니다.
제 방은 물론, 마루와 마당까지 싹싹 쓸고 다녔는데
하숙집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그런 여자가 솔찮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 미타 리 그 아가씨 잡어, 잡어!
 (하숙집 아줌마는 말이 무지하게 빨라 미스터 리를 미타 리로 줄여버립니다^^)
- 요즘에 저런 여자 읎어!
- 글고 말여 여자가 남자를 좋아해야 잘살아!
- 알았지? 그러니 아무 생각 말고 무조건 잡어 잉?
저는 그 집에서 4년을 넘게 하숙을 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사실 한 식구 같이 지내서
"네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네 일"같아
하숙집 대소사는 물론,
제 개인의 일까지 전부 공유가 되었기 때문에
제 여친의 모습이 남다르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래저래 지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일방적이고도 강압적으로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저는 사실 결혼에 별 뜻이 없었기도 하지만
"과연 이 여자가 나하고 평생을 살 수 있는 여자일까?"
라는 의문이 항상 가슴에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상처 때문에 우리 마누라는 30년도 넘게
그 분풀이를 저금한 돈 꺼내 쓰듯 합니다 ㅎ ㅎ

어쨌거나 매우 일방적이고 
싸가지 읎으면서도 강제적으로 이별을 통고하고
맨날 하숙집에서 뱃대지 득득 긁으면서 딍글딍굴 했었는데......
가을 태풍이 휘몰아치던 어느 해 10월 31일 오후
하숙집으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 미타 리 전화받어~~!
빠르고 날카로운 아줌마 목소리가 집안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전화를 받으러 가보니,
- 미타 리, 그 아가씨여.
-......어떻게, 읎다고 할까?
- 받기 곤란하면 나가고 없다고 할게.
아줌마는 송화기 구멍을 손바닥으로 꽈~악 막은 채로 나에게 속삭였습니다.
- 그런디 그래도 잘 한 번 다시 만나봐~아!
- 내가 볼 때 요새 그런 아가씨 드믈어
- 글고 할머니랑 승식이 아빠도 그렇고 앞집 뒷집 다 그래
사실 조금 난감하기는 했습니다.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이미 헤어져버린 여자를 다시 만난다는 것이
적잖게 껄적지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헤어진 지 2달이 지난 시점에 전화를 한 것은
필시 무슨 일이 있거나 해결(?)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수화기를 넘겨받았습니다.
- 여보세요?
- 여보세요?
아무 대꾸가 없었습니다.
전화가 온 지 5분도 더 흘러서 전화가 끊어졌나 보다 하고 마지막으로
- 여보세요? 하니,
그제야,
- 전데요......
- 오늘 한 번만 만나주면 안 돼요?
 ......!
- 왜, 무슨 일이 있어?
- 아니 그냥..... 좀 할 말이 있어서....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딱 오늘만 전화하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마음 약해서~ 마음 약해서~ 가 아니고
사실 저도 그동안 정이 조금 들긴 들었었나 봅니다.
가끔 얼굴이 어른어른 했었으니까요.
사실 허구한 날 데먼데먼한 저에게
과분하리만큼 온갖 애교와 서비스를 제공했었던 요인도 분명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거의 1년 동안 매주 주말에 하숙집에 들르고
또한 거의 70%~80%는 꽃을 사서 꽂아줬는데
하숙집 근처 꽃집 주인은 아가씨가 안 오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종로구 사직동에 있었던 하숙집을 나와서 거리로 나와보니 
태풍급 바람이 온 거리를 휩쓸고 있었습니다.
세찬 바람을 얻어맞은 나무들은 이파리들을 대량으로 떨구어 내고
그 잎새들을 바람에 휩쓸려 사정없이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광화문 네거리를 건너 조선일보 앞을 지나서 시청도 지나고
신세계 백화점까지 그 바람을 맞으면서 걸어갔습니다.

약속 장소인 신세계 백화점 뒤편에 있는 다방에 들어가 보니
그곳에는 다방 레지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 내가 너무 늦게 와서 가버렸나 보다. 하고 나가려고 할 때,
- 혹시 누구 만나러 오셨어요?
- 아! 네~에, 근데 제가 너무 늦어서 가버렸나 보네요.
다방 레지는 손가락으로 안쪽 구석을 가리키면서,
- 쩌그 안쪽에 아가씨 한 분 있어요. 오신지 꽤 오래되셨어요.

ㄱ자로 꺾어진 안쪽에 있어서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아가씨는 노란 점퍼를 입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 오랜만이다. 잘 있었니?
그러나 여자는 앞으로 늘어진 머리카락에 얼굴을 숨긴 채 대답이 없었습니다.
사실 올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참 좋지 않았습니다.
또한 쌀쌀해진 날씨에 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이어서 마음도 스산하고 
1년 동안 만나던 여자를 그렇게 다시 만나다 보니 제 마음도 참 거시기했습니다.  

커피를 시켜놓고 설탕 한, 두 수저를 넣고 저으면서도
여자는 내내 커피잔만 쳐다보고 말이 없었습니다.
- 왜, 무슨 일이 있어?
- 만나자고 했으면 말을 해야지.....
사실 그녀를 만난 직후 심상치 않은 짐작은 했었습니다.
평소 워낙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이었는데
이렇게 바람도 심하게 불고 낙엽이 온 사방에 흩날리는 늦가을날
아무도 없는 다방 구석에 저를 불러내 놓고 아무 소리를 하지 않고 있으니.....

커피가 거의 식어갈 무렵,
여자는 얼굴을 들고 저를 쳐다봤습니다.
눈 주위와 볼에 눈물 자욱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작심한 듯 한마디를 내어 던졌습니다.
- 자기, 내가 딱 한마디만 할게
- 자기가 책임진다고 하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이 자리에서 나갈께.
- ??? 무슨 책임???
솔직히 어렴풋이 어떤 예감과 짐작은 했었지만 
사람 말을 듣기 전에는 100% 확인할 수는 없었던 지라,
- 도대체 뜬금없이 무슨 책임을 이야기하는 거야?
- 며칠 전에 병원에 다녀왔는데 나 홀몸이 아니야.
- 그런데 나도 좋아해서 그런 일이 생겼으니까 책임은 반반이라고 생각해
- 그러니 자기가 책임을 지지 않겠다면 지금 말해줘
- 이후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 그리고 이 일로 귀찮게는 하지 않을 테니 걱정은 하지 마
그런 말을 하면서 여자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습니다.
솔직히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지만 막상 현실을 알고 나니 참 난감했습니다.

저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온갖 생각이 머리를 휘감았습니다.
결혼은 애초부터 생각이 없었고
그냥 주유천하 하면서 "인생은 짧고 굵게 살겠다"라는 것이
저의 인생 목표였는데 팔자인지 운명인지 졸지에 아빠가 될 운명이라는 것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당최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여자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솔직히 울고 짜고 "책임져 이 나쁜 놈아!"라고 했으면
OOO! 네가 알아서 해, 나는 몰라! 하고 뛰쳐나왔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하숙집에서 전화를 받을 때부터 집을 나설 때까지
- 미타 리, 가서 잘하고 와 잉?
- 어른들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댜
- 내가 볼 때 둘이 천생연분이야
- 이따가 저녁에 내가 삼겹살 거하게 쏠 테니까 아가씨랑 꼬~옥 같이와 잉?
또한 천상 여자이면서도 교양과 인품이 훌륭했던 할머니 마저도,
- 아이고 총각, 그 처자 놓치면 평생 후회할 테니께 잘 따독거려서 데리고 와 잉?

심지어 내가 틈틈히 공부를 가르치던 하숙집 딸내미도,

- 오빠~아, 그 언니 정말 좋은 사람 같아, 잘 되었으면 좋겠네~
그리고 바람기 많은 앞집 아줌마 역시
- 이봐요, 그렇게 아가씨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면 죄받어. 
- 내가 볼 때 참 이쁘고 참하더구먼, 잘 허고 와요 잉?

제가 하숙을 하던 사직동은 차량이 들어갈 수도 없는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앞집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모든 대소사를 공유하던 동네였습니다.

그런 곳에서 4년을 넘게 하숙을 하였던 고로

"네 일은 곧 내 일"이라고 공감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다중 압력(?)과 
스산한 늦가을의 바람,
휘몰아치는 바람에 쓸려가는 낙엽들,
가버린 줄 알았는데 다방 구석에 쭈그리고 있던 여자.....

그리고 제 양심을 사정없이 쿡~쿡 찔어대는 눈물......
"책임을 진다고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여자의 배짱(?)
 .....인지 어쩐지 몰라도.....
그날 저는 매우 중대한 결심을 하고 말았습니다.

- 아........!
- 알았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제 입에서 "알았어"라는 말 한마디가 끝나자마자
그 여자의 얼굴 표정은 18,000도쯤 뒤바뀌어 버렸습니다.
기쁨과 안도, 그리고 희망, 또 다른 그 뭐시기 등등등......!
조금 전까지 땅이 꺼지듯 내뿜는 한숨과 눈물이
한순간에 기쁨의 눈물로 뒤바뀌고
어둡고 슬퍼보였던 그녀의  눈동자는 별처럼 밝게 빛나고 반짝였습니다.

그날 저녁 "잘하고 오면 삼겹살 파티 거하게 쏘겠다"는 하숙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기쁨과 희망에 넘친 여자가 남창동에 가서 소갈비를 배가 터지도록 처멕였기 때문입니다.
쐬주도 한 병 곁들여서......

그 이후,
8남매나 되는 장모님 형제들과 그 배우자들한테
혹독한 청문회를 거쳤습니다.
그야말로 좌~악~살나게 깨지고 또 깨졌습니다.
우리 처갓집 어른들은 8남매인데
장모님과 바로 아래 이모님 빼놓고는 전부 군인, 경찰, 공무원, 교사로 일하고 있는
되게 꼬장꼬장하고 보수적인 집안입니다.
특전사 대령이던 처삼촌 집에 저희를 불러다 놓고
- 아니, 우리 집안에 무신 이렇게 싸가지 없는 놈을 들인디야!
- 지금 이 상황에서 물릴 수도 없고.... 

- 이 일을 어쩌면 좋을 건지 너네들이 말을 좀 혀봐!
- 얼마나 근본 없는 집안이길래 결혼도 하지 않고 애를 배 가지고 와?
- 그래서 지금 어쩔 건데?
- 얼마 안 있으면 애가 나올 텐데 살 집이라도 마련해 놓은 거야?
- 어이, 자네 집안 부모님은 원래 이렇게 가르쳤나?
- 시방 남의 귀한 자식을 이렇게 해놔도 되는거여 뭐여?
 ...... 등등등!

무려 장장 4~5시간, 

거실 한가운데에 우리 둘을 앉혀놓고

16명이나 되는 일가친척이 퍼부어대는 질타, 질타, 또 질타.....

하이고~오~!

그야말로 청문회도 그런 청문회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어른이신 장인어른 말 한마디로 그 지긋지긋한 청문회는 끝났습니다.

항상 " 좋은 게 좋은 거여"라는 만사태평 장인어른은,

-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러쿵저러쿵할 게 뭐 있나?

- 어이, 이서방(졸지에 이서방으로 호칭이 바뀜) 인자 어떻게 할 건지 자네가 얘기해 보소!

- 아~ 네, 저희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결혼 일정을 잡겠습니다.

- 음~ 그려?

- 그러면 됐어, 이제 그만허고 밥이나 빨리 차려

- 얘들 배고프겠구먼

- 글고 지금 이 시간부터 일체 이러쿵저러쿵 허지 말어

- 이제는 우리 식구가 되었으니까 좋은 말만 해주라고

- 알았지?

장인어른의 마지막 피니쉬 블로우에 모든 상황이 한방에 정리되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야 어찌어찌어찌 우리 둘은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때 뱃속에 있던 아이는 자라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그 딸아이가 손주까지 낳았으니 세월이 참 많이도 흘러버렸습니다.

저는 딸이 둘이고 아들이 하나입니다.
그냥 평범하고 착하게 모두 잘 컷습니다.
지금은 모두 직장에 나가고
생전 말수가 없는 아들 녀석은
예상치도 못한 선물을 툭툭 던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키울 때는 딸이 좋고
"세월이 지나면 아들이 듬직하다"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시간(세월)이 갈수록 마누라를 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그저 자식 키우고 한량 같은 남편 거두고 사느라고 많이 늙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마누라 얼굴을 보면 마치 채무자 같은 심정이 되어 버립니다.
괜히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더군다나 폐경기에 이르러 급속하게 변모해 가는 외모가
마치 저 때문에 그런 것 같아 미안함을 넘어 죄스럽기도 합니다.
맨날 "잘해줘야지" 하면서도
말은 불퉁불퉁 내뱉는 제가 스스로 실망스럽기도 하고.....
허긴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았는데
마누라라고 모를리야 없을 것이지만,
- 당신이 지은 죄가 많아 이제야 신경 쓰이나 보지?
라는 마누라 일갈에 가슴이 뜨끔 거리는 것은 일종의 업보일까요? 
어쨌거나 그런지 어쩐지는 알 수 없지만
가을에는 마누라 보약 한재 진상을 올릴까 합니다.
죽으나 사나 평생 동반자 이니까요.

오늘 비도 오고 베란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갑자기 차가워진 느낌입니다.
아스라한 기억이긴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마치 엊그제 일 같이 생생하게 복기되는 것이 조금 신기하기도 하네요?

지금은 할망탱이로 변했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칼칼한 하숙집 아줌마 말마따나
천생연분이라는 예측과 예언이 별로 틀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꿀떡같이 찰떡같이는 몰라도 30 몇년을 그럭저럭 잘 살아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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