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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따라 가버린 부녀지간

정치는 공기같아서

by 일렁

더좋은 세상으로 변하기를 원하는데, 이제 나부터 변해야할 것 같다. 저런. 변하는 것은 언제나 아프다.

그래서 변화의 아이콘에 열광하는구나 싶다. 사실 나도 안정을 원했다. 하지만, 내 자유를 함부로 통제받는 것은 정말 싫다. 굳이 분별하자면 자유를 원하는 보수라고나 할까?

그날 아침, 잠도 덜깬 상태에서 나는 두유를 갈고 있었다. '드륵드륵 드르륵' 소리만 들어도 다 되가는 구나라 딤작할수있었다. 이제 아침준비가 마무리되어가는데 엄마는 숟가락을 들고 자리에 앉으셨다. 몸이 안좋아진 엄마는 의치를 끼우고 들기름을 한술 마시고 자리에 않으신거다. 들기름은 오메가3를 먹게하는 좋은 식품이라길래 엄마는 매일아침 들기를을 들고 계시다.

꼭 일주일이 지났다. 아침에 갑자기 눈이 내린다. 눈예보가 있었지만 설마했는데 아이 눈망울만한 눈이 펑펑 내린다. 넋을 놓고 눈을 보다가 책을 읽는다. 나른한 기지개를 펴고나니 눈이 멈춰있었다. 아침을 먹어야하는데 어제저녁식사를 늦게해서 그런모양인지 허기가 지지않았다. 그래서 뮝기적거리며 책을 계속읽고 있었는데 창문너머 보이는 눈이 비현실감을 가져왔다. 아련함으로 지금을 너머 일주일전으로 나를 데려간다.

엄마가 숟가락을 들고 계시고 나는 '삐삐삐'울리는 소리를 듣고서 두유포트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컵을 식탁에 놓고 두유를 따랐다. 다른 겁을 하나 더찾아들고 한컵 더따랐다. 먼저 컵에는 엄마두유, 나중 컵은 아빠두유, 이렇게 따르고 나니 겨우 아침준비를 마쳤다. 엄마께 아빠도 식사하시라 전하주시라 말하고 두유포트에 남은 두유를 다른 컵에 따랐다. 두유포트에 남은 두유를 싹싹쓸어 마시고 손으로 닦아마신후 포트를 씻었다. 전기가 통하는 부분에 물이 닿아서는 안되니 보통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오늘은 휴일인데, 엄마가 편찮으시니 아침은 필수다. 아침준비도 필수다. 그리고 온전히 내몫이다. 엄마가 잘 드셔야 항암제를 이겨내실수 있고 치료를 계속할 수 있다. 그러니 삼시세끼 준비는 필수고 야채와 과일을 골고루 드실수 있도록 식단을 구성해야한다. 단백질도 물론이다. 탄수화물은 소화가 느리더라도 비타민 B군이 풍부한 다당류를 드시도록 해야하고 지방은 신선한 오메가3를 섭취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오래된 기름이나 유전자조작이 흔한 옥수수기름, 오메가6가 가득한 기름은 사절이다.

이런 생각을 곱씹다보니 바짝 신경줄이 당겨졌나보다. 엄마가 안절부절하신다. 나도 사실은 조금 피곤했다. 아침에 잠을 깨면 머리가 맑아서 하루 중 가장 작업효율이 높은데, 오늘은 아니다. 휴일이고 아침인데, 이런 건너뛸수없는 작업을 해야한다니, 조금 서글퍼졌나 보다. 엄마께 불려서 붙들려오신 아빠가 주방 식탁쪽으로 들어오신다. 거실에서 떠들던 티비는 소리를 멈췄다. 이제는 더이상 공영방송이 아닌 kbs가 뉴스를 떠들었었는데, 겨우 멈췄다. 우리들의 공영방송까지는 아니었지만, 발벗고 나서서 tv시청료를 주고싶을 정도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버리고 싶고 원망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개인방송으로 전락한 KBS가 수치스럽다. 아까 힐끗 보았더니 아빠는 kbs를 틀어놓고 휴대폰 메시지도 보고계셨다. 갑자기 어제 일어난 카이스트생 입틀막사건이 떠올라 짜증이 확 일었다. 대통령만 잘 뽑았다면 그런일이 안일어났을텐데...낙엽 생각이 확 나서 화가 치밀었다.

마침 아빠가 들어오셔서 자리를 앉으시고, 엄마도 곁에 앉으시고 따끈한 두유를 드시는데, 내 못된 입에서 갑자기 낙엽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낙엽이가 가장 나쁜놈이야. 개쓰레기 같으니라고, 아니 개는 뭔 죄야, 핵폐기물 같으니라구' 지난번 대선 마치고 아빠랑 티격거린 적이 있었는데 이제 그 후로 일년이상 지났으니 괜찮으시겠지라고 내마음대로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아빠는 여전히 낙엽팬이었다. 격한 말이 오가고 있는데 그새 애들 아빠가 살포시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낙엽이 저지른 잘못을 하나하나 세고 있었다.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산책과 밥을 주려고 얼른 자리를 떠났다.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보니 거실에 아빠가 먼데를 바라보고 서 계신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나를 힐끗 보신다. 나는 아이들 밥을 주느라 좀전에 일어난 일은 거의 잊고 있었다. 해맑은 눈으로 아빠를 보고 아빠의 무심한 눈길을 무심결에 흘려보냈다.

그리고 식사를 하려 식탁으로 가 앉았다. 애들아빠는 자리에 없었고 엄마는 홀로 앉아계셨다. 내가 자리에 앉으니 아빠가 들어오셨다. 그리고 말하셨다.

'이제부터 내 앞에서는 정치얘기하지 말아라'

천둥처럼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직 상황이 종료되지 않은것을 직감하고 바로 알겠다고 대답 했다. 그런데 '잼은 결코 대통령이 될수없는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그런줄 알아라'고 말씀하신다. 큰소리로 말이다. 그래서 나도 한마다 대꾸했다.

'아빠, 그 카톡들 다 엉터리 거짓말이예요. 어디에서 온 카톡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글고 아빠도 정치 얘기 더이상 하지마세요. 그래야 공평하지요'

'공평은 무슨'

그리고 화가나서 숟가락을 놓으셨다. 그리고 자리를 옮기셨다.

올해로 84세, 정정한 아빠는 화가 많이 나셨나보다. 집으로 가시겠다고 말한다.

흥분한 나도 식사를 계속 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아빠는 엄마랑 황급히 고향집으로 가셨다. 정말 급히 가셨다. 나는 아픈 엄마와 함께 황급히 차를 타고 가시는 아빠를 속으로 원망했다. 카이스트 학생은 입틀막 당한지 하루, 엄마가 두번째 항암주사를 맞은지 이틀밖에 안되었는데, 아빠는 시동을 켜고 휙 가셨다. 이 모든 순간이 비현실적이었다. 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두어시간 지나니 비로소 엄마와 아빠가 떠나셨음을 실감했다. 멍충이, 낙엽이 뭐라구 이런일을 벌이고 이런일을 당하다니.

어르신들에세 보내는 문자들이 도대체 뭘까, 누가 보내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아빠는 그 문자들을 깨알을 낱낱이 세듯 읽으신다. 일단은 매일 들어오는 문자들, 동영상들을 아빠는 반가워하시는 것 같다. 자식들 그누구도 그처럼 매일매일 꼬박꼬박 동영상에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아빠께서도 처음에는 동영상들을 쓰레기라 생각했지만, 가랑비에 젖어들 듯 그 글자들을 읽기시작했고 믿기시작하고 의지하기 시작한 것 같다. 착하디착한 아빠는 그냥 일반 시민이다. 월급쟁이로 수십년 지내셨고 정년을 하신 분이다. 경찰, 검찰, 판사 이런분들을 뵌 적도 없이 사셨고 이 분들은 그저 먼나라 귀족, 높은 양반으로 알고 존경하며 사셨다. 그런 아빠가 변했다. 이준 돌풍이 불때 약간 변하셔서 안철 편이 되시더니, 대선 마치고서는 아주 대놓고 납엽 팬이 되셨다. 문자와 동영상을 보낸 자들이 도대체 누구인지는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오늘 하신 말씀으로 보면 낙엽 우호적인 편, 잼 반대파들 인것 확실한 것 같다. 오, 우리 아버지를 어쩌랴! 동쪽에 사는 친구들이 부모님과 말이 안통한다는 둥, 한판 싸웠다는 둥 그런말을 하며 좌절감을 보일때 나는 그런건 결코 내겐 일어나지 않을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배운자, 변화를 원하는자 들 중 한명인 나는 어떻게 해야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약자들이 조금더 편하게, 아이들도 잘 살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세상으로 말이다.

물론 나부터 변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또 나는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 숙제로다. 정말 큰 숙제다. 조금 완고하긴 하지만, 순하고, 착하디착한 우리 아버지와 좀더나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도무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하다. 가슴을 더 차갑게 그리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차분히 생각해 봐야겠다. 어려운 문제다. 진심으로 정치는 내 곁에 있었고 우리는 정말 정치에 휘둘리며 살고 있음을 실감했다. 이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골똘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빠! 저는 앞으로 조심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이야기 해보게요.

김창옥 토크가 티비에서 나온다. 부녀간 의견이 서로 상치되었을때 해결법을 보여주는 중이다. 음악과 분위기로 연출된, 사회가 가르쳐준 지혜와 규범을 넘나들며 이끌어낸 관중들 교감을 등에 업고 제시한 해결책은 눈물없이 볼수없는 감동적 서사를 부른다. 아버지와 딸은 끝내 눈물을 흠치며 말한다. '좀 더 들으려하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이제껏 잘자라줘서 고맙다고.' '아빠가 제 뜻을 지지해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조금씩 더 이야기해볼께요.' 적당한 거리와 예절 그리고 인정이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필요하다는 김창옥의 뒷말이 나를 찌른다. 나는 그동안 가까운 사이라고 얼마나 함부로 바라고 말했던가! 정작 나라는 사람도 내 안에서 불편하다 아우성인지라 그 정체도 모호한 실정인데 말이다. 그런 와중에 나도 아닌 타자를 가깝다는 이유로 얼마나 편하게 생각해 왔던가 반성해본다. 가족은 사회의 최소단위로서 사회를 이루는 기본단위라 배웠는데, 이런 배움을 나는 가장 가까운 관계라서 아무렇게나, 마치 내 모든 공과를 함께 나누고 책임지는 사이인 줄 알았던 게다. 또 다른 나의 집합적인 모습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살았던 게다. 가족은 가까운 관계 맞다. 언제라도 떨칠 수 있는 관계다. 내게는 적당한 거리감, 그사람에 대한 인정과 예절이 필요하다. 예절이 더욱 필요하다. 따뜻한 예절이면 더욱 좋다.

정치는 물과 같고 공기와 같아서 조금 오염되었을 때는 잘 모른다. 그까이꺼 죽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오염도가 높아진다면 경우는 다르다. 면역에 약한 생명부터 병들기 시작한다. 조그마한 상처에도 회복이 어려워진다. 그럴수록 강한자들은 더욱 강한 성을 짓기 시작할게다. 죽어가는 자들을 보며 언젠가 자신에게도 덮칠지 모르는 불안감에 성을 굳건히 하고 싶어져서 일게다. 혹은 힘없이 스러지는 자들을 보며 가진 것을 더욱 뽐내고 싶어서일까? 아무런들 공기와 물은 성을 아무리 크게 쌓아도 피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더욱 두려운 것은 공기나 물은 한번 오염된 후 되돌리기는 정말로 어렵다는 말이다. 물을 공기를 다 갈아 엎기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정치가 그렇다. 조금 수리해서 쓸수 있을때 수리를 하는 것이 우리모두에게 좋다. 생명줄이다. 너무 오염이 되면 그때는 너무 늦다. 그러니 생명줄을 만지작거리며 장난치다니 너무 위험하다. 정령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함께 가보자는 것인가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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