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다. 장마철 하늘은 머리 위 또하나 바다다. 이때는 바다보다도 더 물로 가득차는데, 물은 금방이라도 후두둑 쏟아질 것 같다. 초인종 소리에 쏜살같이 나가보니 문앞에 택배가 와 있다. 택배는 벌써 사방이 축축하다. 서둘러 습기로부터 구해야 한다. 김운하 작가의 신작 '고래의 안부 바다의 마음'은 이렇게 장마 한가운데서 내게로 왔다. 하늘 색 표지에는 큼지막한 고래가 도드라져 있다. 마치 하늘에서 헤엄이라도 치는 것처럼 고래의 몸통과 꼬리와 지느러미가 서로 리드미컬하다.
저자 김운하는 인문학자이자 소설가다. 저자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홀려 고래에 대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고래에 관한 유적지를 찾아 다녔다고 한다. 책 표지에 씌여져 있듯이 이 책은 '모비딕'을 모티브로 인류세시대 고래를 찾아 여정을 기록한 일종의 기행문이다. 책은 총 22장, 들어가는 말과 나오는 말로 구성되어 있다. 모비딕-고래-바다-인류세-지구-인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저자는 독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모비딕을 새롭게 읽게 하고, 고래가 무엇인지, 고래가 사는 바다 환경을 생각하게 하며, 고래를 비롯한 비인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책 후기에서 저자는 지구 최상의 포식자인 호모사피엔스가 호모 디스터비언스가 되어 언젠가는 지구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호소한다.
1. 사악한 책
멜빌의 책 속에서 모비딕은 몸집이 거대한 향유고래인데, 많은 함선을 격파하고 선원을 수장시킨 전설 속의 괴물로 산전수전 다겪은 선장 에이허브이 치를 떨며 복수를 다짐하는 적개심의 대상이다. 모비딕을 발표한 후 멜빌은 혹평과 배고픔에 시달려 결국 세관직원으로 살게 되는데, 결국 모비딕은 멜빌에게도 절망의 표상이 되고 말았다. 멜빌은 모비딕을 집필하면서 자신을 책을 '볶음서'이자 '사악한 책'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 이유를 애써 설명하지 않았다. 저자는 멜빌이 왜 자신의 책을 그렇게 말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저자는 여행하는 내내 이 수수께끼에 천착한다. 장생포 울진, 서귀포를 거치면서도 묻고 또 물어 멜빌의 수수께끼를 풀어내고자 한다. 저자는 책 뒷분분에서 이렇게 썼다.
- '한마디로 멜빌은 기독교에 바탕을 둔 근대 서구 휴머니즘이 가진 독단과 위선, 그것의 제국주의적 본성인 인간 중심적 확장주의, 타자에 대해 권력을 쥐고 지배하려는 태도를 에이허브라는 캐릭터를 통해 극단적으로 그려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멜빌은 자기 책이 그들의 관점에서 '사악한 책', 악마적인 책으로 보일 수도 있음을 명확하게 자각했다는 고백을 호손에게만 은밀하게 털어놓았던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여 마침내 그들의 서식지까지 파괴하고 있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 입장에서 멜빌의 모비딕은 지배의 범주를 벗어났기에 사악한 악마로 치부될 수 있음을 걱정한 것이다.
2. 우리나라 고래 유적지를 찾아서
암각화에 새긴 고래 등 동물들 (울진 대곡천 반구대 암각화)
저자는 울산 장생포,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간절곶, 서귀포 고래해체 공장을 답사하여 지금은 없어져버린 우리나라 고래의 자취를 하나하나 보여준다. 장생포에는 포경산업기지로서 흔적을, 울진 대곡천 가 암벽에 새겨진 암각화에서 신석기시대 조상들이 그려놓은 귀신고래, 혹등고래,범고래를 보았다. (오른쪽 그림) 그림 왼쪽에 많은 물고기를 볼 수 있는데, 이 물고기들 중 새끼를 안고 있는 고래를 볼 수도 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도 고래를 사냥했다. 암각화에는 사냥에 필요한 어구들도 함께 새겨져있는데, 당시 변변치않은 배를 타고 그 큰 고래를 어떻게 잡았을까는 상상하기 어렵다. 고래를 잡으로 바다로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장생포의 고래 전성시대는 일제시대 일본의 무도한 남획으로 사라졌다. 어느 곳에서든 일본의 폭력은 항상 상주하고 그 상흔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지나간 과거의 일로 현재를 가로막지 말라고 하는 발언이 부질없음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고래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할까, 책은 고래고래 소리지르다의 고래를 상기시킨다. 용의 아들 포뢰가 고래를 만날때마다 크게 놀라 두려워 울부짖어 고래고래 소리지른 것을 두고 고래라 이름지은 이유라 설명한다. 고래는 쉽게 발음되는 아름다운 말이다. 그래서 모든 사찰이 지키고 있는 종과 종을 치는 당목에 포뢰와 고래를 상징하는 그림이 있다고 한다.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조상의 해학과 유머를 절에 가면 꼭 찾아 보고싶다.
3. 고래, 안녕하신가요
고래가 처음부터 바다에서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육지에서 바다로 돌아간 고래는 의외로 하마와 같은 류로 분류되는 포유류다. 바다로 돌아간 고래는 두 다리는 지느러미로 퇴화했지만, 여전히 폐호흡을 하고, 새끼를 낳는다. 큰 부레를 가지기 위해 몸집을 불리고, 솜털을 없앤 대신 두터운 지방층을 가진 거대한 물고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지능이 높고 문화적 활동을 한다.
수천만년 동안 큰 위기 없이 살았던 고래는 원양어업이 성행하는 1700년대 이르러 멸종의 길을 걷게 된다. 겨우 일만년 역사를 지닌 호모사피엔스에게 무차별 포획되면서다. 이미 여러 종을 멸종으로 보낸 전력을 지닌 인간들이지만 처음부터 맘먹고 멸종시키려는 의도는 한번도 없었다. 큰 돈 같은 어떤 욕망에 따라 움직인 것일뿐. 에이허브처럼 말이다. 이 지구에 살고있는 수많은 생물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예의바른 생명체로서 인간이 아니라 그저 자연을 그들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만물의 영장'이자 '왕'이라는 병에 걸린 인간이기 때문이다.
지금 고래는 그리 안녕하지 못하다. 무자비한 남획으로 멸종 위기 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우리나라 동해 연안에 나타났던 귀신고래도 1990년도 이후 자취를 감춰 거의 멸종한 것으로 보고있다. 시작은 사람이 무차별로 잡아들여서, 지금은 서식지인 바다가 그물 등 어구나 석유 시추, 핵폐기물 투척 등의 서식지 오염으로 사라지고 있다. 고래는 지금 이 지구가, 바다도 몹시도 편치 못하다. 수천만년간 별 탈없이 살아왔던 고래는 별안간 나타난 인간들에 의해서 멸종 위기를 겪고 있다.
4. 비인간들과 연대, 공생
다윈이 항해를 마치고 1839년 비글호의 항해기를 출판하고, 1851년 멜빌이 모비딕을 발표한 후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써 내는 동안 자연이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진화를 일어킨 것은 아니라는 성찰을 하게 된다. 즉 아주 약간만 비틀렸더라도 진화는 지금의 인간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얼마나 평범한 존재란 말인가! 발에 채이는 돌멩이와 다를바 없음이다. 저자의 탄식이다.
- '저 하늘과 바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작은가. 장대함과 장엄함, 경이에 비한다면 나는 내 발밑으로 밀려와 바위에 부딪다 다시 거대한 바다로 스러져가는 파도의 끄트머리에서 흩날리는 물 한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한낱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 깨달음은 슬프다. 보잘것 없음을 인정하기는 싫지만 외면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인간은 지구촌 주민 중 하나였던 것이다. 우주적 관점으로는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깨달음이 바로 비인간들과 동등하다는 생각을 가능케하는 첫걸음이며 그때서야 비로소 연대와 공생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책임이라 보고된지도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인간이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고 앞으로는 공생을 위해 지구촌 주민 중 하나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생각해야 한다. 일단 과오를 낱낱이 열거해 보면 좋겠다. 꼼꼼한 열거는 적나라한 모습을 직면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방울에 지나지 않은 존재치고는 너무나 많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았던가! 그래서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과오는 바로 잡아야 한다. 마침내 저자는 이렇게 선언한다. 인간은 생태 교란종이라고!
-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이면서 동시에, 호모 디스터비엔스다. '지혜로운 동물'이지만 그 지혜를 과신한 나머지 스스로를 '지구생태계 교란 동물'로 만들어버린 동물.'-
포스트모던 시대, 사이보그 인간이 자연스런 시대, 인공지능 로봇이 저벅저벅 걸어다니는 시대, 더이상 인간과 비인간 생물과 무생물을 가르기 힘든 세상에서 인간은 지금의 지구에서 버려지지 않기 위해 더더욱 주민으로 예의를 지켜야 할 것이다. 함께 할 때 계속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만들어 온 세상을 파괴할 것이다. 지구는 인간이 더이상 살기가어려워질 것이기에.
5. 나오는 말
지구는 46억년은 생물무생물의 변천사다. 지구환경이 바뀔때마다 지구촌 생물과 무생물 등장인물도 교체되었다. 환경을 이기는 생물도 무생물도 없다. 환경에 적응한 주민들만 지구에 남겨졌다. 고래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등장하고, 바닷속 환경이 오염되면서 고래는 더이상 지구촌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인간은 지구촌 주민으로 살면서 지구가 마치 저들의 것인냥 착각에 빠졌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 인본주의 라는 병에 걸렸다. 이제 하루빨리 깨어나야 한다. 기후위기, 핵전쟁, 핵폐기물 투척 같은 환경오염은 지구촌을 불가역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지구를 더이상 변화시키지 말고 유지할 수 있다면 지금의 지구촌 주민들도 안녕할 것이다. 물방울이 중력을 따라 흘러가듯이 말이다. 이 책은 기행문인 줄 알았더니 길지않은 내용이지만 많은 깊은 것들을 담고 있는 철학책이자 인류를 위한 지침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