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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모습-내면과 외면

일상

by 일렁

나는 패션에 밝지않다. 배색에 둔하고 스타일에 민감하지않다. 무엇보다 치장하는데 쓰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한다. 내면을 채워도 모자랄 판국에 껍데기나 떡칠하면 골빈사람이는 저깊은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정규교육의 위력이 최면을 걸 날 통제했다.

고등학교때 선생님은 손바닥을 효과적으로 아프게 때릴수있는 회초리를 자랑하곤 했다. 허공에 휙휙 고주파수를 내며 바람을 가르도록 회초리를 휘두르며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꼭 골빈것들이 겉만 번지르하게 떡칠하고 다닌다고. 골이 비었다는 사실을 감춰야하니 더 바르고 두르고 걸고 다닐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난 그때 그 말을 가슴속깊이 받아들였다. 인형처럼 머리속이 비기는 싫었기에 의도적으로 치장을 멀리하고 거기에 한술 더 떠 경멸하기까지 했다. 머리 빈 사람 취급을 받지않으려면 최소한 치장이라고 하지말아야나보다라고 맘속에 새겼던 거 같다. 이모습 그대로 자연스러운게 좋은 거야. 덕지덕지 붙이고 바르고 걸고 다니는 것은 다 거짓이야. 본모습을 숨기는 것이니. 결국 꾸미는것은 남도 나자신도 속이는 것이 아닌가,

나이가 꽤 들어 중년이 넘어가도록 그 구태스런 생각을 꺼내 재고해볼 시도조차 한적이 없었다. 그 한결같은 순종이란, 피식 웃음이 난다. 규교육의 위대함이여!

눈화장을 해 본적도 없었다. 아! 결혼할때 풀메이컵을 받았었지? 그 이후도 그 이전도 난 스킨과 로션을 두드리며 내가 할수있는 최선의 멋이라 생각했다. 내면을 채워야지, 머리에 지식을 가슴엔 인격을. 하지만 그런게 구호만으로 되는일은 아니었다. 급기야 외면은 물론 내면에도 불만을 보이는 구태의연한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파보인다는 소리를 일주일이면 한번은 듣는 초라하고 소심한 모양새와, 때마다 들이치는 숙제를 해내느라 경황 휑한 소용돌이가 이리저리 부딪혀 갈라지는 사막같은 내면을 가지게되었 때문이다.

나 바빠서, 해 줄 수가 없네, 미안해. 미안해. 뭐좀 하다보니 깜빡 잊었어. 미안해, 분명 난 탈선을 한적도 잘못한것도 없이 그저 매일매시간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미안해는 입에 붙어 있었다. 뭘 잘 못한걸까, 모를일이었다. 그런데 미안했다. 분명 뭘 잘못한게다. 아님 잘못된거다.


난 색깔에 반응합니다. 색이 이쁘면 눈이 가지요. 세련된 스탈을 봐야 관심이 생기구요. 촌스런거 자연스런거 딱 질색입니다. 섹시하고 과감한 화장, 인공미를 좋아해요.

그간 내 삶에서 들어보지못한 문장들. 내가 그간 소중히 간직해왔던 내면의 아름다움과 외면의 하찮음을 단숨에 날려버리는 말이었다. 그말에 난 단번에 충격을 받았다. 더구나 그말을 내뱉는 이의 세련되고 멋진 모습과, 무엇보다 역사와 철학을 궤뚫고있는 그 깊은 지력에 그동안 나를 영도해왔던 그 굳건한 가치는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바닥이 꺼져버리는 현기증에 비틀거렸다. 아,아, 이제부터 난 어떡해야한단 말인가! 어디에 기대 살아야한단 말인가! 하는수없다. 내면이고 외면이고 일단 아름다워져야 한다! 길은 정해졌다.

이제와서 어떻게 아름다워질수있단 말인가!

우선 아름다운 내면을 위해 무조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읽다보니 고등학교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나도 그때 꿈많은 문학소녀였지. 교실 속 내가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아! 그래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책을 가슴에 꼭 안고 시를 암송하던고 잔인한 사월을 외고 별을 읽으며 헷세를 찾던때가. 눈가가 젖었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지났구나.

립스틱을 바르고 눈화장을 했다. 어색한 모습. 색이 보인다. 눈웃음을 살짝 지어보니 생기가 돈다. 여운 구석이 있네. 옅은 갈색의 눈두덩이와 붉은 입술이 내 본 얼굴색과 융화되지 않아 겉도는 듯해서 어색하고 거북하지만, 오랜만에 얼굴에 피가 도는 거 같았다. 거울속 얼굴은 아직도 낯선 손님 같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하다보면 늘겠지.


인터넷을 하다보니 쇼핑을 유도하는 배너가 여기저기서 반짝인다. 그전에는 까딱 잘못눌러 쇼핑사이트로 들어가기라도 할라치면 투덜거리며 냉큼 제자리로 돌아오곤했는데 얼마전부터는 별 저항없이 제발로 들어가곤 한다. 어제도 그랬다. 쇼핑사이트에 들어가 수백개 리뷰를 보며 자신있게 1+1바지와 니트 반폴라, 스커트 2장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더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하며 잔뜩 부푼 기대를 품고서. 곧 겨울도 오고하니 기모바지가 필요해. 모델이 입은 모습을 보니 군침이 돈다. 핏이 그만하면 딱이다. 따뜻한데다 핏도 이쁘니 나도 모델처럼 당당하고 섹시한 핏을 낼 수있겠지.

오늘 배송된 상자를 열었다. 상자를 안고 큰 거울 앞으로 달려가 상자를 연다. 지익! 잘드는 칼로 모서리를 정확히 눌러 갈랐다. 옷을 싸고있는 비닐을 급히 찢어발겨 옷을 꺼냈다. '어, 아줌마 바지네' 큰아이가 바지를 보자마자 반응한다.아줌마바지? 아냐 , 그럴리가. 후기에서 얼마나 핏이 좋다했는데. 이리와서 좀더 자세히 봐봐. 자. '엄마. 이런바지 할머니들이 젤 잘입고다니는 스탈이야. 허리는 밴딩에 기모가 든든하고 짝짝 늘어나는 스판. 딱 할머니 스탈이네.' 헉 그럴리가.

서둘러 입어본다. 아아, 사이트 그 모델이 보여준 핏은 어디갔냔 말이다. '엄마, 그런바지는 배나온 아줌마들이 배 감추고 싶을때 입는 바지야. 지하상가 가면 그런스탈 많이있어. 얼마준거야?' 흑! 1+1에 24000원. 그래도 싸기는 하잖아? '싸긴 뭐가 싸. 지하상가 가면 한개 만원도 안될텐데' 기대는 햇살에 눈 없어지듯 사라지고 대신 실망이 눈덩이가 되어 굴러왔다. 으악. 얼마나 성심성의껏 골랐는데. 눈썰미하고는 고작 이정도라니. 난 아직도 멀었어. 거울에 비친 내 하체가 한없이 초라해보였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구나. 잠시 자만했던 난 금방 현실을 자각하고 다시금 마음을 잡는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안목을 득하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포기도 빠르고 위로도 빠르다.

꾸미기로 말하자면 내면이라고 더 어렵지도 외모라고 해서 더 쉽지도 않다. 절대 아름다움이 어딘가 있겠지만, 난 내 나름의 멋을 찾아보려 한다. 나만의 멋은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고 만족하고 사랑할수 있는 모습이겠지. 가을을 물들이고 있는 형형색색의 이파리들과 파란하늘. 이 풍경들과 어울리는 몸과 감각과 마음. 지금 보고있는 모든 모습이 꿈일지도 모른다. 이 순간 이자리에서 그 모습을 하고 외부를 감각하고 느끼며 반응하는 이 모든것들이 전부 나로부터 비롯했으므로 다 나다. 이시간 이자리에서서 감각하고 느끼고 행동한 이가 바로 나다. 꿈이여도 하는 수 없다. 내가 여럿이라도 상관없다. 전력을 다해 사랑할수있는 나 혹은 나들, 그 구석구석을 빛내기위해 분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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