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베일이 감겨질까,
서평: 서머싯몸의 인생의 베일을 읽고
이 소설의 모티브는 아래의 세 문장이다.
첫번째는 단테의 신곡 중 연옥편 제 5장 중의 구절이다.
“부디, 당신이 현세로 돌아가 이 긴 여행의 피로를 풀게되거든.”두번째에 이어 세 번째 망령이 말했다네. ‘나 피아를 기억해 주세요. 시에나에서 태어나 마렘마에서 죽었나니. 그 경위는 보석반지로 나를 아내로 맞은 그가 알고 있나이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 덧없는 영혼, 연옥에 갇혀 천국을 기원하고 있다. 부정을 의심받다 죽은 피아의 이야기는 서머싯 몸에게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소설로 쓰리라는 일종의 암시가 되었고 드디어 인생의 베일로 탄생하였다.)
두번째는 셀리의 시다.즉, 오색의 베일(life). 살아있는 자들은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른다는.
(우리가 믿는 대로 형형색색 채색되는 베일이다. 어떤 색과 모양으로 일굴지는 각각 개인에게 달렸다. 나는 어떤색을 칠하며 삶을 일구워 왔는가? 앞으로 어떤색으로 일구어 살 것인가?)
(Percy Bysshe Shelley, Sonnet, 1818년)
Lift not the painted veil which those who live
Call Life: though unreal shapes be pictured there,
And it but mimic all we would believe
With colours idly spread,--behind, lurk Fear
And Hope, twin Destinies; who ever weave
Their shadows, o'er the chasm, sightless and drear.
I knew one who had lifted it--he sought,
For his lost heart was tender, things to love,
But found them not, alas! nor was there aught
The world contains, the which he could approve.
Through the unheeding many he did move,
A splendour among shadows, a bright blot
Upon this gloomy scene, a Spirit that strove
For truth, and like the Preacher found it not.
세번째는 올리버 골드스미스의 시 미친 개의 죽음에 관한 애가‘죽은건 개였어’라는 구절이다.
위 세 개의 작품에서 인용한 구절을 윤곽을 그린 후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인생의 화려한 베일을 믿지 말라는 퍼시셀리의 싯구. 남편에게 부정을 의심받아 창밖으로 내던져진 영혼의 이야기. 그리고, ‘미친 개의 죽음에 관한 애가’속의 미친개와 친구가 된 남자가 미친개에게 물려 다들 남자는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죽은 것은 미친개였다는 이야기.
인생의 아이러니와 공허함을 말해주는 이야기들이다. 부정을 의심받은 피아는 정작 죽임을 당하고, 부정을 저지른 키티는 오히려 구원과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아이러니, 불합리라니. 이성은 오간데 없고 미친개 짖음만 울려퍼진다. 사정이 이리하니 퍼시펠리는 베일을 걷지말아 라고 당부 하였으리. 베일을 걷어내는 순간 시큼한 생의 내음을 풍기는 지레 힘없고 추레한 모습에 실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원칙도 이유도 없이 들이닥친 벼락은 인생을 산산이 조각낸다. 언제 어디서 어느 방향에서 벼락이 내리꽂힐지 모르니 아아, 인간들이여 그저 지금을 누릴지어다. 자연과 아름다움을 누리고 그리고 여력이 있다면 스스로 움직어 생의 아름다움을 조금 지어보기를. 5세기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별안간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보에티우스는 억울하고 어이없는 생에 좌절했지만, 다시 일어나 이 기막힌 생을 추궁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왜 생은 이다지도 무례하단 말인가! 예고도 없이 원인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고 들어온 인생이라는 이름의 불한당. 그는 사형을 선고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생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작하게 되었고 마침내‘철학의 위안’이라는 책을 썼다. 결국 편안한 마음으로 생을 정리한다.
어떻게 살아왔거나에 상관없이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벼락은 별안간 아무데나 내리꽂히기 때문이다. 벼락을 맞더라도 자연을 보는 눈, 사랑과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면 그는 이미 반 정도는 이겨낸 셈이리라. 거기에 처절한 탐구정신(고귀함)마저 있다면 더 이상 고통과 죽음은 위협이 아니리라.
소설은 영국 중산층의 장녀인 키티와 그 가족, 키티를 사랑하여 결혼한 세균학자이자 의사 월터, 그리고 키티와 부정을 한 타운젠트, 그의 부인 도로시, 콜레라가 창궐하는 메이탄푸에 있는 동안 이들을 도와준 워딩턴 내외, 그 오지에서 병자들과 약자들을 보살펴주느라 헌신하던 수녀들과 몇몇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 형형색색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 키티는 희망없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하여 그저그런 결혼을 선택하여 남편을 따라 홍콩에서 살게 된다. 이야기는 바로 여주인공 키티가 유부남 찰스와 연인관계 임을 남편인 월터가 알게 되면서 시작한다. 키티를 매우 사랑하였던 월터, 사랑없이 결혼한 키티는 그 후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를 알게 된 월터는 분노한다. 키티의 연인 찰스는 부인 도로시를 자기 생의 레버러지로 인정하고 따르는 졸렬하지만 현실적이기에 결국 키티를 배신한다. 이에 키티는 월터의 강요에 굴복하여 콜레라가 창궐한 사지로 간다. 거기에서 월터는 희생과 봉사, 콜레라에 대항하며 생을 소비하고, 키티는 자연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에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부심을 회복하며 생을 구원받는다. 자신을 돌보지 못한 월터는 결국 개처럼 죽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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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베일 1
부정, 탈선: 월터는 이를 이유로 부인 키티를 콜레라가 만연한 메이탄푸로 데려간다. 그 지방으로 가면 콜레라에 걸려 죽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주위의 염려를 뒤로한 채 부인과 함께 그 아수라장 속으로 뛰어든다.
매인 몸, 모순, 달콤한 고통, 경탄, 웃음, 최고, 건강, 열정
자의식, 밀랍인형, 하찮은, 속박,
베일 2
이름다움과 치유: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키티는 자신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인지, 세상에는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찰스를 향했던 사랑하는 마음도 떨치게 된다. 다만, 자신을 원망하는 월터를 위로할 수 없는 자신의 위치를 한스러워하며 그저 바라만 본다.
‘눈물이 키티의 얼굴을 타고 흘러 내렸다. 아름다움이 다가왔다. 그녀는 신자가 신을 받아들이며 먹는 면병(미사때 쓰는 과자)처럼 그것을 받아먹었다.’
‘도, 우리들 중 누구는 아편에서 그 '길'을 찾기도 하고 누구는 신에게서 찾고, 누구는 위스키에서, 누구는 사랑에서 그걸 찾죠. 모두 같은 길이면서도 아무곳으로도 통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이 한갓 환영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역겨움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유일한 것은 인간이 이따금씩 혼돈 속에서 창조한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이 그린 그림. 그들이 지은 음악. 그들이 쓴 책. 그들이 엮은 삶. 이 모든 아름다움 중에서 가장 다채로운 것은 아름다운 삶이죠. 그건 완벽한 예술작품입니다.’
‘그것은 길과 길을 가는 자입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걸어가는 영원한 길이지만, 어떤 존재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것 자체가 존재이니까요. 그것은 만물과 무이지요. 그것으로부터 모든 것들이 자라나고, 모든 것들이 그것을 따르며, 마침내 그것으로 모든 것들이 돌아갑니다. 각이 없는 네모이고, 귀로들을 수 없는 소리이며, 형태 없는 상이랍니다. 그것은 거대한 그물이고 그물코는 바다처럼 넓지만 아무것도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의 피난처가 되는 성소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창문 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망하지 않기를 소망하라고 그것은 가르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비천한 사람이 온전히 지속됩니다. 굽히는 사람이 똑바로 섭니다.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고 성공은 실패가 도사린 함정입니다. --위대함은 스스로를 극복한 자의 것입니다.’
‘비록 미래는 아주 희미했지만 아침햇살이 드리운 안개낀 강물처럼 다채롭게 빛났다. 자유! 답답한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일 뿐 아니라 그녀를 짓물렀던 애증관계로부터의 자유였다. 자유,위협적인 죽음으로부터 자유 -- 모든 정신적인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유체이탈된 한 영혼의 자유’
베일 3
월터의 고통과 외로움
부정한 처를 용서하지 못하는 가련한 월터는 자신을 학대하기로 한다. 메이탄푸에서 그는 콜레라를 물리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병자들을 돌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현지인들은 월터를 성자처럼 떠받든다. 정작 자신은 아픔과 분노로 가득차 있음에도 말이다. 마침내 그 지방의 콜레라가 한풀 꺾였을 때 그 역시 함께 사라지고 만다. 더 이상 살아 있을 이유도 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을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으나 사랑과 배신을 이겨내지 못한 비참한 개같은 생이었다. 고통에 팔딱거리는 월터의 말이다.
‘나 자신을 경멸해--그의 영혼은 갈갈이 찢겨졌다’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에 잠깐 머물다가 가는 신세로도 모자라 자신을 고문하다니 인간은 얼마나 딱한 존재인가?’
‘냄비 속에 갇힌 물고기 꼴이야.’
‘죽은 건 개였어’
베일 4
수녀들의 헌신
‘수녀들. 그들은 내가 안전히 무가지하다고 느끼도록 만들었어요. 그들은 모든걸 포기했어요. 짐도, 나라도, 사랑도, 아이들도, 자우도. 그리고 내가 가끔 여전히 포기하기 힘든 그 모든 소소한 것들, 꽃과 초원, 가을날의 산책, 책과 음악, 안락함. 그 모든 것도 그들은 포기했어요.--그들 모두에게 이 세상은 실제로 진정한 유배지예요. 삶은 그들이 기꺼이 짊어져야할 십자가이지만 그들의 가슴속엔 언제나 욕망이......오, 욕망보ᄃᆞ 더 강한 것이 가득하죠. 그서은 열망이자, 갈망이예요. 영원한 삶으로 그들을 이끌어 줄 죽음에 대한 열렬한 열망이예요.’
‘사랑과 의무가 하나이면 은총이 당신안에 머물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행복을 맛볼 겁니다.’
베일 5
여러 가지 색색의 사랑: 워딩턴과 몽고공주와의 사랑, 고단한 수녀들이 약자에게 베푸는 헌신과 사랑. 그리고 월터의 키티에 대한 사랑. 찰스의 부인 도로시에 대한 사랑. 키티 어머니의 자식과 남편에 대한 사랑.
워딩턴과 몽고공주: ‘아등바등하는 일상사가 어쩐지 덧없어 보여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색칠한 가면아래 풍부하고 심오하며 중대한 경험의 비밀이 숨겨진 것만 같았다’‘내가 그녀를 떠나면 결단코 그녀가 자살할 거라는 데 추호도 의심이 없어요’
월터:‘나는 당신에 대해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기뻐하는 것에 나도 기뻐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무지하지 않다는 걸, 천박하지 않다는 걸, 남의 험담을 일삼지 않다는 걸, 그리고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면 한 편의 코미디야. 당신이 지성에 얼마나 겁을 먹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당신이 아는 다른 남자들처럼 당신에게 바보처럼 보이려고 별짓을 다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원장수녀:‘마음을 얻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자신이 사랑을 주고 싶은 대상처럼 자신을 만들면 되지요.’
원장수녀:‘나는 사소하고 무가치한 삶을 희생과 기도의 삶으로 교환했습니다.’
키티: 스스로를 기만하는 행위는 언제나 비열한 짓이라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