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니옹 섬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다양성’ 일 것이다. 프랑스라고 해서 백인만이 살 거라고 생각한다면 레위니옹 섬에 도착하자마자 그 인구의 다양성에 놀랄 것이다. 레위니옹의 인구는 8만 5천 명 정도로 7만이 조금 안 되는 제주도의 인구를 조금 넘는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한 섬에 모여 ‘레위니옹인’으로서 정체성을 찾아가기까지는 몇 백 년의 시간이 걸렸다.
레위니옹 사람들은 그 뿌리를 보면 마다가스카르, 아프리카, 인도, 중국, 유럽이 있다. 16세기에 처음 포르투갈인들이 섬에 발을 디뎠다. 17세기부터는 프랑스가 식민지로 삼으면서 유럽인을 비롯하여 노예로 끌려온 온 마다가스카르, 아프리카, 인도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프랑스의 동인도회사가 섬을 다스리며 일궜던 커피농사부터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후 사탕수수 농사를 이어오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노예들의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1848년은 레위니옹 섬에서 노예제가 폐지된 해로 현재까지도 노예제 폐지일인 12월 20일은 공휴일로 자유를 축하하는 날로 레위니옹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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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가 폐지된 이후 레위니옹은 프랑스 식민지의 지위는 유지하면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노예를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을 마다가스카르, 인도를 비롯해 중국에서 충당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46년에 프랑스의 도(Département)로 합병되어 현재는 프랑스가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섬에서는 지나가던 사람을 잡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해달라고 하면 누구든 몇 시간은 거뜬히 이야기할 수 있다. 중국계 레위니옹인 내 친구 스테판의 이야기만 들어봐도 그렇다. 프랑스 본국에서 공부를 할 때 친해진 스테판은 레위니옹 사람이다. 중국인이었던 외할아버지가 일본 식민시대 때 일본인의 핍박을 피하기 위해 중국을 떠나 레위니옹 섬에 정착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레위니옹에서 자란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스테판은 모르긴 몰라도 자기 아버지는 마다가스카르인의 피가 조금 흐르는 것 같다고 한다. 레위니옹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스테판은 프랑스 본국에서 대학 생활 마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테판은 일본 문화와 언어에 관심이 있어 일어일문학을 전공하였다. 지금은 자신이 관심 있는 일본에 가서 일할 수 있는 날을 꿈 꾸고 있다.
레위니옹은 ‘회의’를 뜻하는 프랑스어 Réunion에서 비롯됐다. 섬 이름이 ‘회의’가 된 기원은 프랑스혁명 당시로 올라간다. 절대왕정을 뒤엎고 공화정을 세웠던 프랑스혁명 이후 혁명 연맹병과 파리 근위병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회의를 기리며 섬의 이름을 La Réunion으로 명명하였다. Réunion은 결합, 집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종이 섞여 조화롭게 살고 있는 이 섬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