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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Apr 29. 2021

파리 명품거리의 하녀방에 산다는 것


누구든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에 정착하게 되면 걱정하는 것이 사는 곳일 것이다. 어학연수로 프랑스를 왔을 때는 학교에서 지정해준 기숙사가 있어서 큰 고민 없이 숙소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후에 교환학생으로 또 석사를 공부하기 위해 돌아온 파리에서는 기숙사를 얻지 못했다. 나의 파리 거주사는 다이내믹하다.

 

교환학생을 처음 왔을 때는 정말 운이 좋게도 홍콩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계 프랑스인 친구가 어머니와 둘이 살던 집에서 비어있는 본인 방을 나에게 내주었다. 한 학기 동안 친구의 어머니와의 동거를 하게 되었는데, 친구의 어머니는 동남아시아에서 오랫동안 거주하신 중국분 이셨다.

 

프랑스에서 제일 유명한 페르라쉐즈 (père lachaise) 공동묘지의 바로 옆 아파트에서 사셨는데, 그 집의 내 친구 방에 세 들어 살게 된 것이다. 낯선 파리 생활과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수업,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중국풍의 소품들, 중국 음식, 아주머니가 즐겨보시는 중국의 CCTV 채널이 항상 켜져 있었다.

밖에는 프랑스 집안에는 중국인 상황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 느껴지는 아시아의 진한 향기가 나의 향수병을 많이 달래주었다. 아직도 종종 아주머니와 같이 거닐던 페르라쉐즈 공동묘지와 아주머니가 해주시던 중국음식이 가끔 생각난다.


이후 나는 석사를 파리에 하게 되어 지내야 할 곳을 찾게 되었는데, 그렇게 찾은 곳이 라틴지구에 있던 학교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위치한 건물 꼭대기 층의 하녀방(chambre de bonne)이었다. 학교와 가장 가까운 곳을 찾기 위해 매일매일 부동산 사이트를 뒤져본 결과 찾게 된 9m²(2.7평) 크기의 방이었다.


프랑스에서 예전에 하녀들이 맨 꼭대기에 살았기 때문에 맨 꼭대기 층 층고가 기울어져있는 곳을 하녀방이라고 한다. 이 정도 크기의 방은 당연히 화장실은 그 층에 있는 공용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공용화장실 사용은 정말 원치 않았기에 겨우 화장실도 같이 있는 하녀방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부동사 업자의 말을 들어보니 이전에는 6m²(1.8평)의 방과 그 옆 공용화장실이 있었던 구조인데, 프랑스의 법이 9m²다 적은 방은 세를 놓지 못하게 바꾸면서 급히 주인이 두 개를 합쳐 내가 들어간 9m²방을 만들었다고 한다.

가난한 시인, Carl Spitzweg 작품 (1839)


그 이전에는 1.8평짜리 방에서 교수님이 10년 정도 사셨다고 한다.(교수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조금 넓어지긴 했지만 방음이 잘 되지 않아, 현재 누가 복도 공용화장실에서 실례를 보고 있는지까지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곳이었다. 장점이 있다면 정말 좁기 때문에 맞은편에 살던 이웃과 담합하여, 내 집에서 설치한 와이파이를 같이 사용하여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정말 좁아서 이웃도 마치 한 공간에서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명품 옷가게가 즐비하고, 문인들이 즐겨갔던 카페가 많은 생제르맹 데프레 (Saint-germain des près) 거리에 위치해있던 집이었다. 나는 집에 들어가면 2.7평의 하녀방, 거리로 나가면 명품 가게가 즐비한 파리의 럭셔리 거리였기에 이 또한 아이러니한 재미를 주었다. 매일 부스스한 복장과 등가방을 매고, 명품 옷이 진열된 거리를 걷는 기분은 마치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그때의 하녀 방은 파리 생활 중 나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방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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