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갈등은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이 각자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에 발생하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 것 같다.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갈등 상황은 줄어든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갈등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최근, 내가 속한 동호회에 이런 일이 있었다. 동호회 회원 10명이 외부에서 주관하는 대회에 참가하고, 동호회에서는 10만 원을 지원하게 되어 있었다. 문제는 지원 방식을 두고 의견이 나누어졌다.
A: 마침 참가인원이 10명이니 1인당 1만 원의 간식 쿠폰이나 현금을 지원하자.
B: 현금 지원보다 집행부에서 물과 간식거리를 준비해 달라.
대부분 A의 의견에 동의하는 분위기였으나 B가 다른 의견을 제안하면서 갈등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지원금 지급 방식에 대해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때, B의 의견에 대해 하수와 고수는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하수는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데 급급하지만, 고수는 문제의 원인에 집중한다.”
하수라면, B의 의견을 문자 그대로 수용하여 물과 간식을 준비할 것이다. 그리하면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고수의 해결책은 ‘B가 왜 저런 의견을 제안했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했을 것이다. B는 현금이나 물, 간식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준비한 물과 간식을 함께 먹으며 경기하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모습을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내 선택은? A에 의견에 따라서 현금으로 지원하라고 했다. 하수의 해결방법으로 정한 것이다. 고수의 대응방법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이 나에게 소중한가?’라는 생각을 더 하니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B의 의견처럼 하기에는 집행부의 희생이 너무 클 것이 예상되었다. 그래서 내 선택은 B를 포함한 일부 회원보다 집행부를 얻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었고, 현재 국회의원인 김대식 교수는 《사람을 남기는 관계의 비밀》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결과만 얻으면 하수, 사람까지 얻어야 고수다!”
결국, 고수가 문제의 원인에 집중하는 것도 함께 할 사람을 얻기 위해서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니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삶에서는 갈등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도 하수와 고수처럼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는 힘든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