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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 Jun 27. 2024

삶은 계속된다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50 [완결]

스트레이는 이웃들의 잔디를 깎아 주고 푼돈을 번다. 그 이웃들 중 하나가 단기 일자리를 소개해 줬다. 한 나이 든 남자를 도와서 집 두 채를 수리하는 일이었다. 한 채는 그 남자의 집, 다른 한 채는 그 남자의 어머니의 집이었다. 두 집 다 으리으리했고 특히 어머니의 집은 너무 커서 잔디를 트랙터로 깎아야 할 정도였다.


남자가 음주운전으로 일곱 번 적발되어서 남자의 트럭에는 음주 측정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측정 결과가 0이어야만 트럭에 시동이 걸리는 것이었다. 그렇게나마 아직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엄청나게 비싼 변호사를 쓴 모양이라고 스트레이는 추측했다. 남자의 트럭을 함께 타고 목재를 사러 가야 했는데, 남자가 아침 아홉 시부터 음주 측정을 통과하지 못해서 트럭을 운전하지 못하는 바람에 일이 자꾸 늦어졌다.


남자는 결국 스트레이의 일당을 이틀 치 떼어먹은 채로 어영부영 일을 끝냈다. 그리고 몇 달째 스트레이의 연락을 대부분 무시하고 있다. 스트레이가 집에 직접 찾아가면 집에 없는 척 한다. 한 번은 스트레이를 쫓아내기 위해 경찰까지 불렀다. 스트레이는 여러 번 좌절했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 생활에서 이틀 치 일당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트레이는 남자가 어머니의 커다란 집을 팔아서 번 돈으로 세 번째 차, 두 번째 집, 오토바이, 보트(오토바이와 보트는 음주운전 이력 때문에 운전할 수 없는데도)를 사들이고 있음을 알고 있다.


스트레이는 어린 시절부터 육체노동에 익숙했고 지금도 육체노동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래도 언젠가 돌아가야 할 본업은 역시 프로그래밍이다.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일하면서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뿐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다. 스트레이는 계속 포트폴리오를 손보고 이력서를 내고 있다. 그러나 우울증, 시카고의 일자리 여건 변화, 면접을 보기 위해 새 옷을 사기는커녕 머리를 자를 돈조차 부족한 생활 속에서는 취업을 위한 시도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스트레이 외에도 미국의 수많은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기가 너무나도 힘들다고 말한다. 요즘 고용지표가 아주 좋다는 언론 보도와는 대조적이다. 2023년에는 한 명의 구직자가 평균 30곳의 직장에 지원했고 그중 네 곳에서만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응답을 들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나머지 26곳은 불합격 통보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이력서가 통과된다고 해도 면접을 대여섯 번씩 보는 기나긴 채용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집에서 단기간 동안 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려고 해도 가족이 발목을 잡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스트레이의 어머니와 동생은 스트레이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을 싫어한다. 집의 인터넷을 끊어버리겠다고 스트레이를 위협할 정도다. 예전에 스트레이가 프로그래밍으로 번 돈 중 상당한 액수를 어머니가 가져간(그리고 그 혜택을 동생도 입은) 것을 생각하면 스트레이가 다시 프로그래머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더 이득일 텐데,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은 모양이다. 스트레이는 이 집에 살면서 육체노동으로 그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벌었고 어머니는 그것도 대부분 강탈해 갔다. 스트레이는 아버지가 두들겨 팰 때 맞서 싸우는 법은 어린 시절에 이미 익혔지만, 어머니가 돈을 내놓으라고 패악을 부릴 때 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아직까지 찾아내지 못했다.


어머니는 동생에게 직업이 있을 때도 동생의 생활비를 전부 댄다. 한 아들의 돈이 어머니를 거쳐 다른 아들에게 계속 흘러가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부모가 한 자녀를 위해 다른 자녀를 착취하는 일은 전 세계 어디서나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방학 동안 어머니가 스쿨버스 운전을 하지 못해서 가족 전체의 소득이 낮아지면, 스트레이는 저소득층을 위한 식비 지원 카드인 EBT(Electric Benefit Transfer) 카드의 발급 대상이 된다. 학기 중에 어머니가 일을 하면 발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발급 대상일 때, 스트레이는 자신의 EBT 카드를 어머니에게 준다. 발급 대상이 아닐 때, 어머니와 동생은 비싸거나 맛있는 음식이 집에 있으면 자신들만 먹고 스트레이에게는 먹지 못하게 한다. 남아서 버리는 경우가 더 많은데도 그렇다. 스트레이가 상담치료를 받는 클리닉 근처에는 던킨 도넛 매장이 하나 있는데, 스트레이는 가끔 노숙하던 시절처럼 그곳의 쓰레기통을 뒤져 도넛을 꺼내 먹는다.


스트레이의 또 다른 친구와 나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동시에 신데렐라를 연상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동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스트레이에게 나는 신데렐라의 줄거리를 설명해 줬다. 피를 나눈 혈육들에게 그런 일을 당하고 있으니 어떤 면에서는 신데렐라보다 더 나쁜 처지다.


스트레이는 자신의 부모가 모두 나르시시스트(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라고 확신한다. 동생의 성격은 어머니와 판박이라고 하니, 어머니가 나르시시스트가 맞다면 동생도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있을 것이다. 나는 동생과 문자를 몇 번 주고받고 어머니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본 것이 전부이므로 두 사람에 대해서 직접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스트레이가 두 사람에 대해서 이제까지 내게 한 말들에 거짓이 없다고 믿고, 그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스트레이가 내린 판단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이의 가족이 서로 싸우지 않는 거의 유일한 시간은 집 안팎의 고양이들을 돌보는 시간이다. 스트레이의 집 마당은 동네에서 길고양이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으로 소문이 났다. 항상 돈 이야기로 언성을 높이는 어머니와 쇼핑 중독 때문에 카드빚이 있는 동생도 길고양이 먹이를 사는 돈만큼은 아까워하지 않는다. 한 번은 병에 걸린 고양이를 붙잡아서 수의사가 있는 보호소로 보내기 위해 세 가족이 마치 술래잡기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기도 했다.


한 가지 문제는 스트레이가 사는 지역에 무료 중성화 서비스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길고양이 암컷들은 자주 임신을 한다. 원래는 새끼를 한두 마리 정도만 데리고 나타나거나 모두 잃은 채로 나타나는 암고양이가 많았는데, 2024년 봄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생존율이 갑자기 높아졌다. 마당에는 순식간에 열 마리를 넘는 새끼고양이가 우글거리게 되었다. 스트레이와 가족은 동분서주한 끝에 다행히 여러 마리를 입양 보낼 수 있었다. 나머지는 보호소로 보내게 되었다. 미국에는 보호소에서 동물을 입양하는 문화가 잘 정착한 편이기 때문에 이 새끼고양이들도 아마 곧 입양 갈 곳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스트레이는 안면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고양이를 직접 나눠줄까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최소한의 책임감조차 없는 사람이 고양이를 데려가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스트레이의 집이 빈 사이에 누군가가 마당에 와서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몰래 데려갔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후, 다시 집이 빈 사이에 그 새끼고양이를 몰래 마당에 돌려놓았다. 돌아온 새끼고양이는 발 하나를 다쳐서 전혀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마도 귀엽다고 무작정 데려갔다가 어떤 경위인지는 몰라도 발을 다치게 되었고, 그렇게 되자 마치 망가진 장난감처럼 원래 있던 자리에 내버린 듯했다.


새끼고양이는 집에 돌아온 첫날 어미 젖 외의 모든 음식을 거부했다. 그러나 어미는 새끼고양이를 외면하고 적의를 보였다. 일주일 동안 떨어져 있었기 때문인지, 건강한 새끼만 키우려는 본능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스트레이는 새끼고양이를 자신의 침대 옆에 두고 돌보면서 뭐라도 먹여 보려고 애를 썼고, 다행히 새끼고양이는 분유와 튜브형 간식으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며칠 후에는 다시 살도 오르고 세 발로 움직이는 데에도 익숙해졌지만 갑자기 소변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스트레이는 귀찮아하는 어머니를 재촉해서 이 새끼고양이만 다른 새끼고양이들보다 더 이른 시기에 보호소로 데려갔다. 보호소의 수의사가 진찰해 보자 새끼고양이의 방광은 꽉 차 있었다. 스트레이가 며칠 동안 돌보고 마지막 날 서두른 덕분에 새끼고양이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다른 생명을 보살피는 일은 스트레이의 정신건강에 분명 유익할 것이라고 믿지만 한편으로는 위험 요소도 있다. 우울증의 주된 증상 중 하나는 죄책감이기 때문에 고양이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다. 다른 낙이 없는 생활 속에서 고양이들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게 될 수도 있다. 이미 스트레이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샀다가, 어머니가 길고양이 사료를 사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그 물건을 환불하고 사료를 사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새끼고양이를 살린 지 약 일주일 후 스트레이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스트레이의 아버지를 포함해서 아들 셋을 두었고, 그중 스트레이의 아버지를 포함해서 두 명을 먼저 떠나보냈다. 할머니는 하나 남은 아들의 집에서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으며 친척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스트레이도 두 번 찾아갔다. 항상 집안에서 겉돌던 스트레이에게 할머니는 몇 안 되는 자상한 친척 중 하나였다.


할머니는 장례식을 생략하는 대신 유골을 고향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할머니의 고향은 콜로라도주의 산에 있는 폐탄광촌이다. 옛날에 탄광이 문을 닫은 후 마을에는 단 한 명의 인구도 남지 않았다. 스트레이는 항상 그런 유령 마을들에 흥미를 느꼈다. 나는 유골을 들고 시카고에서 1,600킬로미터 떨어진 콜로라도로 떠나는 스트레이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친척들과 교류가 많지 않았던 스트레이는 할머니를 방문한 동안 모처럼 작은아버지와 대화를 했다. 작은아버지는 가족사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어릴 때 증조할아버지에게 납치당했다는 이야기도 짧게 해 줬다. 스트레이는 놀랐고, 다음에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러 올 때 작은아버지에게 이것저것 자세히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스트레이가 자신의 가족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미국인 중에는 DNA 검사를 통해 자신의 혈통을 알아내는 사람이 많다. 스트레이의 작은아버지와 어머니도 검사를 받았고, 스트레이도 그 결과를 전해들은 덕분에 이제 자신의 혈통을 안다. 아버지 쪽 조상들은 주로 멕시코계이지만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프리카계도 여러 명 있다(스트레이의 성도 거기서 온 모양이다). 어머니 쪽 조상들은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아일랜드에서 왔고 오래 전 시카고 부근에 정착했다. 이제 스트레이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전보다 잘 알고, 더 알고 싶어 한다.


스트레이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는 스트레이 본인을 포함해서 아무도 모른다. 나는 끊이지 않는 고난으로 삶에 번아웃이 와 버린 듯한 스트레이가, 물리적으로든 비유적으로든 지금 그 자리에 머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 소유이지만 스트레이의 큰돈이 들어가고 스트레이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집에서, 화목하지 않은 가족과 함께 고양이들을 돌보면서, 떼어먹힌 일당을 받아내기 위해 애쓰면서. 언젠가 스트레이의 상황이 나아지고 내면이 치유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되지 않는 대로. 삶은 계속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발을 다친 새끼고양이를 임시 보호하던 첫날.


불과 이틀 만에 살이 오르고 훨씬 건강해졌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했습니다.

완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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