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 쇼와 미드와 영어의 재미

한국에서 외국어 공부한 이야기 - 11

by 이정미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 휴학을 했다. 진로를 탐색하고 일본어능력시험 1급을 준비한다는 명분이었지만(합격하기는 합격했다) 진짜 이유는 놀고 싶어서였다. 원 없이 빈둥거린 시절이었다. 새벽 세 시쯤 자고, 정오에 알람을 맞춰 놓고 일어났다. 알람을 맞춘 유일한 이유는 TV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2000년대 중반이었던 당시는 미국 리얼리티 쇼의 전성기였고,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오디션 형식의 쇼들에 푹 빠져 있었다. 주로 온스타일이라는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 봤다.


미국 리얼리티 쇼가 재미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신선함도 거기에 못지않은 재미였다. 80년대 중반 한국에 태어나 겸손이 미덕이라고 교육받으며 자란 내게, 자신감을 가장 큰 무기로 내세우는 쇼 참가자들과 그것을 권장하고 칭찬하는 심사위원들은 낯설고 신기했다. 묘한 대리만족을 느낄 때도 있었다. 참가자가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을 인정하면 심사위원이 “순순히 인정하는 걸 보니 여기에 남고 싶은 마음이 강하지 않은가보네요.” 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단칼에 탈락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자극적인 장면을 만들기 위한 제작진의 의도였겠지만) 그럴 때는 약간 충격을 받기도 했다. 리얼리티 쇼가 실제 그 나라의 문화를 보여주는 데에는 한계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 중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을 가장 농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마치 요점정리처럼 배울 수 있다는 장점도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어떻게 미국인들은 그렇게 청산유수로 말을 잘 하는지. 대부분의 리얼리티 쇼는 방송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을 출연시켰는데, 그 일반인들이 하나같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물론 방송작가가 말을 다듬어 주거나 대본을 써 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대본이 있다고 해도 그 내용을 숙지하고 마치 자기 자신의 말처럼 자연스럽게 풀어놓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예전부터 미국 만화를 보면 초등학교에서 말하기 수업을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던데 어릴 때부터 그렇게 연습한 덕분인가, 감탄하기도 했다.


순전히 말초적인 재미를 위해 보기 시작한 미국 리얼리티 쇼는 내게 서서히 영어의 재미를 가르쳐 주었다. 그 전에 영어는 그저 지루하고 부담스러운 공부의 대상일 뿐이었고, 영어 공부는 특별히 궁금하지 않은 지식을 억지로 머릿속에 넣는 행위일 뿐이었다. 문법뿐만이 아니라 회화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리얼리티 쇼는 지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처음으로 내게 순수한 궁금증을 주었다. 왜 저 사람들은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반응하고 저렇게 말할까? 관심이 생기고 나니 자막 너머의 영어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동안의 지루하고 부담스러운 영어 공부를 통해 기초를 쌓았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는 했다. 단어와 문법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면 쇼를 아무리 재미있게 보았더라도 영어는 마치 외계의 언어처럼 한 귀로 들어왔다가 한 귀로 흘러나가 버렸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영어 교재는 리얼리티 쇼에서 드라마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에서 미국 리얼리티 쇼보다도 더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 미국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미드’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곧 여러 케이블 채널에서 다양한 미드를 골라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침 비슷비슷한 자극이 반복되는 리얼리티 쇼에 조금씩 질리고 있던 나도 자연스럽게 미드로 넘어갔다.


엄마의 영향도 있었다. 엄마의 취미 중 하나는 영어 공부인데, 당시 엄마가 영어를 배우는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이 미드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미드를 틀어놓고 있으면 나도 같이 앉아서 볼 때가 많았다. 엄마처럼 공부를 의식하고 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어 공부라는 엄마의 취미를 아직 이해하지도 못했던 때였다. 그래도 공부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 나도 조금씩 무언가를 배우게 되었다.


“영어는 참 편리하지 않아? 상황마다 할 말이랑 대답할 말이 정해져 있어.”


엄마가 종종 했던 말이다. 듣고 보니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운 예로 영어권에서는 남이 문을 잡아 주거나 칭찬을 건네는 등 아주 작은 호의라도 베푼 상황에서는 반드시 Thank you/Thanks라고 소리 내어 말한다. 또 그 말을 들으면 You’re welcome이나 No problem, 또는 Sure 등 정해진 몇 개의 말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대답한다. 그러고 보면 원어민 영어회화 수업에서도 학생이 Thank you나 You’re welcome이라고 말해야 할 상황에서 말하지 않고 한국식으로 그저 쑥스럽게 웃기만 하면 선생님이 반드시 지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드라마에서는 한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를 위해 무언가를 해 줬는데 감사 인사가 돌아오지 않을 때, ‘너 고맙다는 말 빠트렸어.’ 라고 눈치를 주는 뜻으로 You’re welcome이라고 먼저 말하는 장면도 종종 나온다.


또 한 가지 드라마에 자주 나오던 말, 엄마가 주목해서 나도 함께 주목한 말이 It’s a long story다. 드라마 속 캐릭터가 무언가 개인적인 일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쓴웃음을 지으면서 “It’s a long story(사연이 길어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많았다. 그 말이 나오면 대부분의 경우 대화가 거기에서 끝나거나 화제가 바뀐다. 단순히 사연이 길다는 중립적인 설명이 아니라, 자세히 묻지 말아달라는 의사 표시가 함축되어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은 보통 그 의사를 존중해서 더 캐묻지 않는다.


다만 친한 사이여서 개인적인 질문을 해도 실례가 아니거나, 그 이야기를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 “I have time(나 시간 있어요).” 라고 받아칠 수 있다. 드라마 속 장면이 그렇게 흘러가면 흔히 두 캐릭터는 복잡한 눈빛을 교환한다. 이런 상황에서 I have time은 단순히 ‘사연이 길다고요? 난 다 들을 시간이 있으니까 괜찮아요.’ 라는 눈치 없는 반응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야기인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들려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전체까지 함께 놓고 보면 It’s a long story라는 이 짧은 문장에는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영어권 사람들의 문화까지 반영되어 있다. Thank you와 You’re welcome을 꼬박꼬박 말하는 것도 언어뿐만이 아니라 문화의 영역에 함께 속한다. 이렇게 언어와 문화를 한 덩어리로 배우는 일은 아주 유익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둘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든 리얼리티 쇼든, TV에서 사용하는 말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말만큼 자연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이러는 건 너답지 않아.” “나다운 게 뭔데!” 처럼 TV에서는 클리셰이지만 실생활에서는 들을 일이 없는 대사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회화 교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일상적인 대화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클리셰의 집합 아닐까. ‘아임파인땡큐앤유’ 처럼.


지금 돌아보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회화 수업에서 대화하기보다 혼자서 TV를 보는 것은 내 성격에도 더 잘 맞는 공부 방법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사람들을 만나기보다 집에서 혼자 놀기를 더 좋아하고, 호기심은 많지만 직접 행동하고 부딪치기보다는 조용히 관찰하고 생각하기를 더 좋아한다. 각자 성향에 맞는 공부 방법을 찾아낼 때 공부의 효율이 높아진다는 평범한 진리가 여기에도 해당된 것이다.


다만 내 경우에는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배우는 속도가 꽤나 느렸다는 것이다. 공부 방법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애니메이션으로 일본어를 배울 때와는 다르게 ‘덕질’을 하지 않고 그저 느긋하게 즐긴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내가 영어의 재미에 눈을 뜬 시기는 연세어학당에서 영어회화를 배우던 시기와 겹쳤는데, 그저 간신히 눈을 뜨기만 했던 탓에 어학당에서 배운 내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학당 과정을 마칠 때까지도 영어는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내게 스며들고 있었을 뿐 불이 붙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천천히 스며들었다는 것은 마음이 편하고 오래 지속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미드를 보았고, 미드 속의 영어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지금은 미국 TV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는다. 그러나 리얼리티 쇼의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알람을 맞춰 놓고 일어나던 그 시기는 내 영어 공부에서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그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 내가 영어로 밥을 벌어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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