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엄마의 영어 공부

한국에서 외국어 공부한 이야기 - 번외편

by 이정미

내가 어렸을 때 엄마와 아빠는 부업으로 과외를 조금 했다. 엄마의 담당 과목은 수학, 아빠의 담당 과목은 영어였다. 아빠의 교재는 항상 성문영어였는데, 그 초록색 책 속에 빼곡하게 들어찬 문법을 아빠는 줄줄이 외우고 있었다. 엄마는 본업이 학습지 수학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수학 과외를 하는 것이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영어와 특별히 관련이 없는 전공의 시간강사였고 평소에 영어를 쓸 일도 없던 아빠가, 한참 예전에 배웠을 영어 문법을 그렇게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어떤 사연이 숨어 있었는지 아빠에게 듣게 된 것은 내가 어느 정도 자라고 난 후였다. 군 생활이 지금보다도 힘들고 위험했던 시절, 아빠는 가능한 한 적게 고생하고 병역을 마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단기간 장교로 복무하는 것이었다(6개월 동안 훈련을 받은 후 장교가 되는 프로그램이어서 속칭 ‘육개장’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똑같이 병역 문제로 고민하던 친구가 고급 정보를 입수했다. 정부에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라는 연구기관을 열었는데(지금은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기관이었기 때문에 아직 존재를 아는 사람조차 적었다. 그곳의 부설 대학원에 합격하면 국비로 공부할 수 있고, 품위유지비도 조금 나오고, 무엇보다도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거다.


대학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아빠는 밤낮으로 공부에 매달렸다.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때였다고 한다. 예전에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때나 나중에 박사학위를 따던 때보다도 더. 영어 필기시험이 있었기 때문에 영어 문법도 달달 외웠다. 하도 열심히 외워서 그 후로도 계속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기 살기로 공부한 보람이 있어서 아빠는 합격했다. 아빠에게 정보를 알려줬던 친구는 떨어졌다. 그 친구는 혹시 아빠에게 알려준 것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조금 더 자라고 나서는 나도 아빠에게 영어 문법을 배웠다. 그저 지루했고 들어도 들어도 자꾸 잊어버렸다. 아직 영어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때였고 젊은 날의 아빠처럼 절박한 동기도 없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지금은 처지가 바뀌었다. 그동안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두 번 있었는데,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일이 있을 때 아빠는 엄마와 나 뒤에서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반면 나는 일할 때와 놀 때 모두 영어를 한국어만큼 많이 쓰고 있다. 그래도 만약 아빠와 내가 성문영어 연습문제를 푼다면 여전히 아빠가 더 잘 풀지 않을까 싶다.


아빠가 철저히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젊은 시절에 영어를 공부했다면, 정반대로 엄마는 나이가 든 후 철저히 취미 겸 자기개발로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내게 자주 ‘이제 국제화 시대이니 영어를 배워둬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공부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 정도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엄마의 그 말은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고, 게다가 나뿐만이 아니라 엄마 스스로를 향한 말이기도 했던 것 같다.


엄마가 본격적으로 여가 시간에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고등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가 다니던 학습지 회사에서 원어민과 인터넷으로 화상통화를 하며 영어회화를 배우는 상품을 출시했는데, 아마 그것이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씩 퇴근 후 그 화상영어 수업을 들었다. 운 좋게도 엄마와 아주 잘 맞는 원어민 강사를 만나서 친해졌고, 지금까지도 그 강사와 이메일로 연락하며 영어를 배우고 있다. 다른 수강생들은 대부분 아이들이었고, 강사와 나이가 비슷한 수강생은 엄마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 빨리 친해진 것 같다.


엄마는 화상영어 수업이 없는 날에는 틈틈이 독학을 했다. 화상영어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기도 하고, 영어와 한국어가 나란히 실려 있는 이야기책을 읽기도 하고, EBS에서 영어 강의를 듣기도 하고, CNN 뉴스를 보기도 했다. 미국 드라마가 한창 유행할 때는 케이블 채널에서 미드를 이것저것 보면서 대사에 귀를 기울였다. 퇴직해서 시간이 많아진 후에는 한 달 동안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하고, 주말마다 영어 스피치 모임에 나가기도 했다. 시간을 쪼개서 바쁘게 하는 공부가 아니라, 다른 할 일이 없을 때 조금씩 여유롭게 하는 공부였다. 그러면서도 성실한 성격을 타고난 엄마는 아주 꾸준히 공부했다. 가족으로서 옆에서 보고 있으면 신기할 정도였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엄마가 언어에 별로 소질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과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문과 공부에는 약한 경우를 많이 봤는데,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 언제나 수학이었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만큼 영어를 공부해도 습득하는 속도가 남들보다 느렸다. 나는 엄마와는 반대로 수학을 못 하고 언어가 자신이 있었는데(그 시절에는 국어와 일본어에 해당되는 이야기였고 아직 영어는 잘 못 했지만), 한참 동안 영어 문장을 들여다보고 있던 엄마보다 옆에서 쓱 훑어본 내가 그 문장의 미묘한 맥락이나 뉘앙스를 더 빨리 알아차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하는데, 엄마는 즐기면서 노력하기까지 하니 성과가 없을 수 없었다. 이제 엄마는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대부분 할 수 있고, 자막을 보지 않고도 영화 대사를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다. 평소에 영어를 쓸 일이 많지는 않지만, 필요에 쫓겨서 배운 것이 아니기에 자아실현이라는 면에서는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어릴 때는 엄마를 보면서 ‘취미가 공부라니?’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던 적도 많지만 나이가 들고 나니 존경스럽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