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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승 May 21. 2020

고객 집착과 겸손

코로나 시국을 버텨가는 어느 스타트업 이야기

        매장 직원과 본사간 업무 협업 위한 B2B 소프트웨어, 샤플(Shopl)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9년 국내 모 대기업의 해외 법인(멕시코)과의 협업으로 시작해, 2020년부터 좀 더 다양한 기업 대상 서비스 확산 중에 있습니다. 좌충우돌 과정 중 느끼고 배운 것들을 조금씩이라도 기록해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왜 멕시코에서 시작했나요?


         IR 자리마다 매번 “그런데 왜 멕시코에서 시작했냐”는 질문은 꼭 받게 된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런 IR 자리를 통해 2019년 TBT, 2020년 한국투자파트너스가 우리의 든든한 주주가 되 주었다). 


        앞으로 긴 여정을 같이할 파트너를 선택하는 자리인만큼, 싱겁더라도 솔직하게 답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저희가 전략적으로 멕시코를 결정한 것이 아닌, 그나마 멕시코에서 기회를 줘서. 즉, 멕시코가 저희를 선택해줘 멕시코에서 시작했다”고.


        초기 겨우겨우 최소 사용 가능 수준의 제품을 만든 후, 전세계 여기저기 우리 서비스를 (무료로라도) 써줄 만한 고객을 찾아 다닐 때, 부족한 줄 알면서도 같이 한번 해보자 마음을 열어준 팀이 멕시코였다. 2019년 초, 그렇게 멕시코 일을 시작했다.

 

2019년 1년간 8번의 멕시코 출장, 그리고 고객 집착


        1년간 멕시코에 8번 출장 갔다. 어렵게 다가온 기회를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오라서 간 적도 있지만, 내가 필요할거라 생각되는 타이밍이면 무조건 갔다. 


        한국서 일할 때도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매일 새벽 2시에 알람을 맞춰 놓고 일어나 메일을 확인했고, 온 메일이 없으면 별 문제없냐고 괜히 메신저를 보내기도 했다 깨어있는 티내려고.(이게 습관이 되버려 지금도 새벽에 한번 이상씩은 깨는 직업병이 생겼다 ㅠㅠ)

        

        고객 집착. 작년에 직원들과 많이 주고받던 단어다. 초기 스타트업을 하는 대표라면 누구나 우리가 한 정도의 고객에 대한 집중과 집착은 할 거라 생각한다. 솔직히 그리 힘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거웠다. 누군가 우리 서비스를 써주고 (욕해주고) 그리고 개선해 가는 과정은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운 좋게도 멕시코팀과 서로 죽이 잘 맞아, 회의하고, (싸우고), 또 작은 성과에 서로 고마워하는 문화로 신나게 일했다. 일을 즐기는 편이라 10년여 직장생활 하면서 나름 죽어라 열심히 했다 생각했는데, 스타트업 대표로 해보니 직장 생활은 너무 대충했구나 싶었을 만큼 열심히 했다.


아... 열심히 했다고 했지 일만했다고는 안했습니다 (...)


그리고 2020년 중남미 확산과 코로나


        2019년 한 해 그렇게 공을 들인 결과, 멕시코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가 나왔고, 덕분에 올해 중남미 여러 국가에서 서비스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중남미 여기저기서 우리를 찾았다. 한국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3월, 2주간 중남미 3개국에 출장 가서 열심히 팔았다. 한국이 전세계 코로나의 핵심이던 시절이라, 한국서 온 나를 만나는 건 꺼려하면서도 우리 소프트웨어에 대한 반응은 무척 좋았다. 모두들 바로 써보겠다고. 아, 이제 뭔가 되는구나도 싶었다.


        출장서 돌아와 두 달이 지난 지금 5월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코로나가 심각하게 확산이 되고 있는 지역은 중남미이다. 출장 다닌 국가들은 모두 내 출장 직후부터 두 달째 직장과 매장을 굳게 닫아 둔 상태다. 


        우리가 파는 제품이 매장 직원과 본사간의 협업 소프트웨어인데, 매장이 문을 닫은 상황이니 쓰고 싶어도 쓸 방법이 없다. 계획했던 파일럿 프로젝트도 모두 기약없이 중단이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간다 (자금은 타 없어진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


덕분에 또 배우는, 겸손


        멕시코에서 시작한 것이 (내가 뭘 잘해서가 아닌) 좋은 고객을 만난 운이었듯,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하필 중남미가 직격탄을 맞은 것도 (내가 뭘 잘못해서가 아닌) 그냥 운이다. 창업을 해보니 결국 모든게 운이라는게 절실히 와 닿고, 그래서 또 배우는게 겸손이다. 잘된다 우쭐댈 것도, 안된다 너무 좌절할 것도 없다.


        해외가 모두 막힌 덕에 한국에 눈을 돌려보니, 한국서도 우리를 필요로하는 회사가 있고 생각 외로 규모가 작지 않다는 것을 배운다(팔기는 더 어렵다 ㅠㅠ). 그래도 코로나 사태로 오히려 매장 업무 효율화가 화두가 된 기업들도 있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 없으니 그간 못한 Digital Transformation에 관심을 갖는 회사들도 찾아온다. 못보던 기회고 그래서 또 감사하다.

 

고객에 집착한다. 그리고 겸손하게 운을 기다린다. 


        밥 먹으면 배부르다는 소리처럼 뻔하고 진부한 얘기지만, 이 바닥에서 몇 년 구르며 그나마 배운 진리가 고객 집착과 겸손이다. 오늘도 머리위로 멋진 스타트업들이 로켓이 되어 날아다니지만, 직원들과 한발한발 바닥을 살피며 리어커를 밀고 끄는 와중에 남겨본다. 이 리어커가 언젠간 로켓처럼 날아갈 날이 올거란 말에, 알면서도 속아주는 직원들과 투자자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 새삼 감사하다. 


그래서 (정말 가끔) 코로나도 고맙다.


아참, 저희의 집착을 받아가며, 리테일 매장 혁신을 함께 고민하고 싶은 고객분들.... 언제나 환영합니다.

기승전광고다. 팔아야 산다(www.shoplwor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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