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성 액정보호필름병으로부터의 탈출기
휴대폰을 사용함에 있어서 액정보호필름이란 건 내게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다. 조그마한 흠집이라도 생기면 새로운 액정보호필름을 붙이고 반복 또 반복한 지 어언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스마트폰을 처음 샀을 때로 돌아가 보자. 10여 년 전쯤 스마트폰을 처음 구매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의 경우 액정이 전체적인 면적을 차지하기에 액정보호필름을 부착하는 건 어찌 보면 숨 쉬는 것과 같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휴대폰을 교체하고 그에 따라 액정보호필름도 계속해서 교체해주었다. 이러한 사이클에 대해서 전혀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당연한 거였으니까. 주변 사람들도 유튜브도 세상 사람들 모두 똑같이 살아가는데 왜 의문점을 느껴야 하는가? 그렇게 생활을 한 지 10여 년 정도 흐르게 되었고 고릴라 글라스, 세라믹 실드, 낙하 성능 강화 등 액정의 기술력은 날이 갈수록 강화되어갔다.
그러나 내게는 큰 상관은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기술력이 추가됐다고 한들 액정보호필름을 부착하고 사용할 거니까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 휴대폰의 후면 파손으로 인해 리퍼받는 일이 있었는데, 백업과 액정보호필름을 제거하고 휴대폰을 달라는 말에 잠깐 동안 정말 순정 상태의 액정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써보았다. 그 찰나의 경험이 액정보호필름 없이 살아보자라는 결심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리퍼를 받고 액정보호필름 없는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한 첫날. 아뿔싸! 나의 서랍장에서 액정보호필름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액정보호필름을 발견함과 동시에 부착하고 싶은 욕망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어찌 결심한 지 하루도 안돼서 포기해버린단 말인가? 나는 나의 굳건한 의지를 휴대폰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어야만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휴대폰들이 보는 앞에서 액정보호필름을 무자비하게 반으로 접어버렸다. 액정 보호필름을 하나하나 반으로 접을 때마다 가슴속에는 왜인지 모를 희열 같은 게 느껴졌다. 대다수의 사람들 그리고 나 또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일까? 단지 액정보호필름을 부착하지 않고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뿐인데 말이다.
휴대폰 앞에서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 한 달 정도 액정보호필름을 부착하지 않고 살아보았다. 애플케어플러스(애플 제품의 AS 기간을 연장하는 일종의 보험상품) 없이 말이다. 액정보호필름 없이 살아보며 체감되는 장점은 눈 부실 정도로 선명한 화면과 피부를 만지는 것과 같은 터치감 그리고 제스처를 할 때 걸리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단점도 명확하게 두드러졌다. 두어 번 정도 휴대폰을 실수로 떨어트렸었는데 확실히 보호필름이 없이 추락을 하니 가슴의 쫄깃함은 배가 되었다.
여러 산전수전을 겪으며 액정보호필름 없이 살아보기를 시작한 지 두 달 정도가 흘렀을 때 어김없이 위기가 찾아왔다. 생일선물의 사은품으로 비싼 벨킨(belkin) 사의 액정보호필름이 우연찮게 내 손으로 들어오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평소 이렇게까지 비싼 액정보호필름을 써본 적이 없었기에 써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휴대폰을 떨어트렸을 때의 아찔 함들이 내 뇌리를 스쳐가며 다시 액정보호필름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지배적으로 들었다.
그러나 이왕 액정보호필름 없이 살아보기로 결심한 거 그래도 세 달 정도는 유지해보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마침 생일선물을 준 친구도 나와 동일한 기종을 사용하고 있었고 케이스 교체 주기도 다가온 것 같아서 케이스도 추가적으로 구매하여 액정보호필름과 함께 전달해주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주기 싫었던 건지 손에 힘이 들어간 모습이 포착되었지만 말이다.
어느 정도 흠집이 생길 각오로 도전했던 액정보호필름 없이 살아보기였다. 그러나 세 달 정도 지속해왔음에도 액정에는 눈에 띄는 흠집 하나조차 보이지 않았다. 애플의 정품 액세서리 중 케이스는 있으나 액정보호필름이 없는 것은 아이폰의 액정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액정보호필름을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비용과 파손된 액정을 고치는 비용이 어느 정도 비슷하게 지출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게 되었다.
맹목적으로 액정보호필름을 부착하며 살아온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을 때 가장 큰 이유는 중고로 판매할 때 감가를 방지하기 위함이 가장 컸던 것 같다. 후면 파손으로 인한 리퍼를 통해 중고로 휴대폰을 팔기 위해 휴대폰을 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되었고 액정보호필름 없이 살아보기라는 도전을 하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하찮은 도전일 수도 있으나 액정보호필름을 부착하는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10여 년간 살아온 나의 인생사에 있어서 꽤나 큰 도전이었다. 세 달 정도 도전하고 끝내려고 했으나 액정보호필름 없이 사용하는 것이 생각보다 만족스럽기에 몇 달간 더 지속해볼 예정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습관성 액정보호필름병을 앓고 있다면 액정보호필름을 벗겨내고 진짜 액정과 마주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