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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한두 해 장마철이면 꼭 북한 사람이 죽은 채 떠내려오기도 하는 강이 있는 시골에 살았어요.
겨울에는 그 강바람이 얼마나 차갑던지 아이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두 줄로 등교를 했어요.
타지에서 전학 온 아이라면 매일 아침 상여 행렬로 착각하기 좋았죠.
물론 다음날이면 걔도 눈물을 줄줄 흘리며 상여행렬에 자동으로 참여했고요.
봄이 되면 그 행렬의 앞이 종종 소란해지는데 서둘러 가보면 둘 중 하나였어요.
뱀이 나타났거나 아니면 누군가 똥통에 빠지는 것.
지금은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 법관이 된 '재철(가명)'이는 같은 날 등굣길과 하굣길에 연속으로 같은
똥통에 빠지는 진기록을 세웠어요.
몇 년 전만 해도 재철이가 종종 뉴스에서 근엄한 얼굴로 뭔가를 하는 장면이 나오곤 했는데 걔를 볼 때마다
TV에서 냄새가 나는 듯했어요.
어느 해 식목일에는 학교에 호미나 삽을 가져오게 했는데 그날 나온 뱀은 '근재(실명)'라는 아이가 스카이 콩콩을 타듯이 삽을 타서 해결했죠. 지금도 그냥 마실을 가는 길이었을지 모를 뱀이 왜 그렇게 토막 나 죽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애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신이 난 근재는 뱀도 없는데 삽으로 스카이콩 콩을 타다가 삽자루가 부러져 울었어요. 이유를 알 듯 모를듯하지만 걔를 꽤나 미워하던 선생님이 근재를 줘 팼을 때도
근재가 삽자루처럼 부러지지나 않나 걱정스러웠죠.
토요일 하굣길에는 몇몇 용감한 용자들이 따로 모여 인삼밭으로 숨어들었는데 인삼밭에는 고장 난 버스가
인부들을 위한 숙소로 쓰였고 거기서 인삼밭을 돌보던 '조지(별명)' 형이 내주는 담배를 입에 물고
미군이 버린 보물 같은 허슬러 따위를 돌려보다 집에 가곤 했어요.
성이 '조'이고 이름이 '재○'라서 '조지'였던 형의 별명이 영어여서 그런가? 어디선가 그런 책을 잔뜩 구해오곤 했어요.
지금은 신실한 신부가 된 근재는 늘 결정적인 페이지 몇 장을 몰래 찢어서 곱게 접어가곤 했고 격분한 조지
형의 매운 주먹에 쥐어 박혔죠.
하지만 우리는 조지가 아무리 타박을 해도 놀러 갔고 우리가 가면 조지는 늘 환영했으며 근재는 또 잡지를 찢었고 조지는 지랄발광을 반복했어요.
훗날 제가 배낭여행을 갔던 나라 중에 '조지아'가 있었는데 러시아로는 그루지야이고 조지아의 고리라는 곳에서
강철 스탈린이 태어났죠. 그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재철이와 근재가 '조지아'라는 이름을 듣고 미친 듯이 웃었어요. 우리 셋의 머릿속에 그 형이 만들어준 무언가 은밀한 것이 머릿속에 아주 든든히 박혀 있기 때문이었겠죠.
여름에는 수로에서 슬라이드를 탔어요. 강의 물줄기가 만든 거센 수로가 농로로 퍼지도록 물길을 만들어 놨는데
거기에 누우면 저절로 백 미터쯤 흘러가다 멈추게 되죠. 하늘을 보면서 그냥 흘러가면 내가 낙엽인지 낙엽이
난지 헷갈리게 됩니다 그리고 행복해지죠.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맨발로 논두렁을 뛰다 보면 '삑뽁삑' 이런 소리가 나는데 대부분
진흙에서 나는 소리지만 드물게는 개구리가 밟혀 죽어가는 소리였죠. 우리는 그걸 아주 정확히 구별할 수 있었는데
그런 걸 '감'이라고 하겠죠.
똥쟁이 재철이의 엄마는 보건소 간호 사셨는데 거기서 주워온 주사기로 개구리 똥구멍에 바람을 불어 넣었어요. 그리고 배가 고프면 싱아 아카시아 잎을 따먹었는데 흙먼지가 잔뜩 묻는 아카시아 잎을 툭툭 털어먹으면서도 먼지 따위는 신경도 안 썼다는 사실에 종종 놀라곤 해요.
싱아와 아카시아와 산딸기와 찔레... 생각해 보니 얼결에 먹을게 꽤 흔하기도 했네요.
물론 개구리의 가련한 죽음도 너무 흔한 여름이었죠.
겨울에는 등굣길에 썰매를 탔는데 학교 근처에 도착하면 썰매를 숨겨놓고 방과 후에 다시 썰매를 탔죠.
썰매들은 나무판에 쇠 철사를 달아서 달리기는 달리는데 제동이 잘 안되는 단점이 있었고
자기도 모르게 과속을 하다가 논두렁을 넘어 저쪽 얼음 바닥에 떨어져서 대가리를 깨고 기절한 듯 누워있으면 남 모를듯한 동질감을 느꼈어요.
그런 일시적 생사 불상은 그 동네 아이들이라면 꼭 한 번은 경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죠. 아카시아 나무를 불에 구어 잠시 묶어두면 그럴싸한 하키 채가 되었는데 퍽의 역할을 대신하는 미군 잼 깡통 대신 후려치게 되는 것도 아이들 대갈통이었어요. 희생자가 생기면
아이들이 빙 둘러서 혹시 죽었나 살펴보면 늘 살아는 있었고 몇 번 징징 울다가 아무렇지도 않는 듯 다시 썰매를 탔고 또 대가리를 깠죠.
그래서 그런가 완연한 중년이 되니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군요.
어쨌거나 초등학교, 당시에는 국민학교 근 6년을 그렇게 보내니 풀잎 하나 돌멩이 하나 눈에 익어 훈련차 괴뢰 군복을 입고 비트를 파고 숨어 있는 국군 특공대를 발견할 정도가 되었는데 똥쟁이 재철이가 총든 사람들 앞에서 혹시 이북에서 오셨냐고 정중히 물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오가 야만 해서 오가는 길이라도 매번 놀랄 일 투성이었으니 매일 신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의 표정이 오묘해집니다. 대체 다른 사람의 똥에 어떻게 빠진다는 말이며
똥이 왜 길가에 모여 있어야 하는지,
아카시아 잎을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어떻게 먹는다는 것이며 유튜브를 보면 될 일 을 왜 책을 돌려보고 찢어가야 하는지... 방과 후에 학원에 안 가도 혼나지 않았는지, 학원이 없는 동네가 정말 이 세상에 있었는지 그리고 개구리의 똥구멍에 헛바람을 넣는 것에 대한 허황함을 뭉뚱그려..."에이~ 아빠 거짓말" 하죠.
- 그러게 거짓말 같지?
문득 은근한 성찰을 하게 하는 피천득의 <인연>이나
교과서 읽는 재미를 한 아름 선사했던 오영수의 <요람기>가 더 이상 교과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됩니다.
오늘 문득, 초등학교보다 훨씬 많이, 오래 다녔던 출퇴근길의 풍경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새삼스럽네요.
물론 지금은 똥통에 빠지거나 뱀을 만나거나 맨바닥에 들입다 박치기를 하거나 황당하기 그지없는 표정의 가짜 북한군을 만날 필요가 없어 도리어 그랬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그렇네요.
저 멀리 유럽 아프리카의 골목길에 어느 식당이 맛나는지 유심히 보면서도 매일 다니는 이 길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는 미처 생각치 못한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는 '무공해' 저녁 퇴근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