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에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직장인은 매우 드물었다. 40대 염색이라면 더 드물었을 것이고 나름 위계를 강조하는 보수적인 기업이라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며 새하얀 빽 바지까지 입고 다녔다면 한층 더 드물 것이다.
그 드문 사람이 내 첫 직장의 팀장이었다.
이분하고 몹시 닮아 한 가족이 아닐까 싶은 그의 부하 직원이 이제 막 연수를 마치고 자사 배치된 나의 사수가 되었다. 물론 우리 셋의 조우 자체도 흔치 않은 일인데 그 팀에 오랜만에 배치된 신입사원이 하필이면 그 독특한 팀장, 그 특별한 사수의 '흥이 충만한' 초년에 비길만한 '순 날라리'였던 것이었다.
신입 사원은 그분들에게 만인의 사랑을 받고 만인의 웃음을 볼 수 있어 스스로도 행복해질 '뱀쇼'와 '물쇼'를 사사했는데... 처음 그 노랑머리 팀장님의 뱀쇼를 보고 얼마나 신선하던지 수제자가 될 수 있다면 두어 달 치 월급쯤은 기꺼이 바칠 요량이었다. 물론 사수의 물쇼까지 펼쳐지는 날이면 아... 직장 생활이 이리도 행복할 수 있다니...
오해하지 마시라.
이름만 들으면 어디 질펀하고 유치한 핑크빛 나는 쇼 같지만 실제로는 피리만 없을 뿐 인도의 코브라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악사의 예술적 행위와 동남아 어딘가에서 한 번쯤 대가리를 물리는 사고가 났을법한 두근두근 악어쇼가 액기스만 발췌되고 기가 막히게 자연스레 연결되어 완성된 <완벽한 예술적 퍼포먼스>가 '뱀쇼'이고 실수를 해도 대가리를 물리거나 해독제를 맞을 필요가 없는 '갈색 허리띠'를 가지고 노는 '건전한' 행위이고 단지 허리띠를 '뱀'이라 불러서 뱀쇼일 뿐이었다. 그 쇼의 핵심은 허리띠가 나이고 내가 허리띠가 되는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뱀처럼 몸을 배배 꼬는 그로테스크한 몸짓이었는데 늘 혓바닥을 길게 빼고 뱀처럼 날름 거리는 걸로 크라이막스를 장식했다.
물론 물쇼 또한 태국의 송끄란이나 캄보디아의 그것처럼 빨대에다 물을 뿜어대는데 이 단순한 주제의 퍼포먼스가 때로는 5분 이상 유지되었고 그럴 때마다 예상치 못한 음주와 가무가 난무하게 되며 스님이 함께하고 목사님이 동행해도 기도 대신 흥에 겨운 나머지 광란의 춤을 출 정도가 되곤 했다.
문득 놀랍지 않은가? 하고 종종 생각했더란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이 놀라운 직장인 퍼포먼스 2종을 사사받은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
이 흥이 너저분한 퍼포먼스의 명맥은 내 대에서 끝이 나게 되었는데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한동안 잠잠했던 나의 '흥'이 하필이면 이제 결혼한 지 육 개월이 된 우리 부부와 대여섯 커플들인 아내의 친구 부부들과의 모임에서 발현되었고 물쇼와 뱀쇼가 하나가 되어 새로운 예술적 산출물을 낼 정도의 멋진 콜라보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남자들에게 머쓱했던 그 자리는 내 스스로 예측하고 기대했던 대로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이 위대한 신체 예술이 띄운 분위기가 얼마나 열렬했던지 아내들의 모임에 억지로 따라와야 해서 개똥 밟은 표정들이던 신랑들이 일제히 널린 바나나를 본 원숭이들처럼 꽥꽥 대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이 오늘만큼은 뭘 해서 망가지든 저 얼간이 정도는 아닐 거라는 자신감이 가득한 얼굴로 변했으며 심지어 철이 지나도 수 십 년이 지난 어설픈 브레이크 댄스를 추었던 내 또래 어떤 소심한 신랑도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표정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날, 이제는 모두 중년이 된 그 부부들이 종종 회상할 정도로 신나던 모임이 끝난 밤중 귀갓길에 진심으로 절박한 얼굴로 아내가 다른 걸 뭘 해도 좋으니 저런... 괴이하고 괴상하고 치명적일 정도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짓은 '다시는, 죽어도' 안 해주기를 간곡히 부탁했을 때 이 위대한 퍼퍼먼스의 명맥은 영원히 끊기게 되었던 것이다.
아내는 종종 "나이가 들수록 품격이 더해지는" 사람이길 기대한다는 말을 했는데 그때 TV에서 흔한 '넥타이를 이마에 맨' 그런 처절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하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내 퍼머 먼스의 수준이 어떻든 아내에게는 넥타이를 이마에 매고 불그레한 얼굴로 침을 질질 흘려대는 추한 모습을 떠 올리게 했나 보다.
그래.... 나이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기 가장 좋은 방법은 안 해도 될 일을 안 하는 것이렸다.
그렇게 그 황홀하고 기묘한 행위는 지나는 세월처럼 사라지고 중년만 남았다.
그렇게 이십여 년 이 지나고 우리는 갑자기 중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슬퍼졌다. 갑자기 바지가 맞지 않기 시작했고 계단을 오를 때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 내 스스로 봐도 내가 그 옛날 생각했던 '흔하디흔한' 중년의 모습인 까닭이었다.
어쩌면 안 해야 할 걸 하고 해야 할 걸 안한 '중년'의 대가일 테고 거기에 더해 만약 그때 '하지 말아야 할 쇼'를 멈추지 않았다면 나는 꽤나 추한 사람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정신적인 '품격'을 잃지 않으려는 의도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나이.
팀장이 이제 안 한다... 했던 나이도 딱 이즈음이던가?
사수가 이제 물쇼 따위는 안 한다 했던 나이도 그랬던가?
술을 마시는 시간에 차를 마시고 술을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차를 좋아하게 되고...
역한 냄새가 나는 담배를 끊고 명상으로 기분을 다스릴 줄 아는...
시시껄렁한 음담패설보다 가벼운 산문집을 읽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중년의 나.
이렇게 기름기 없는 중년은 계속된다.
멈추면 흉해질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