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꽤 참신한 동행
지금은 아니지만 성장기 때 제가 본 어머니의 일생은 여자로서 불행 그 자체였어요. 결코 편안하지 못했죠. 그래서 딸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한치의 망설임 없이 편안한 일생을 희망하는 이름으로 지었어요.
역시 지금은 덜하지만 저희 아버지는 애틋함이 없는 분이셨어요.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며 또한
감정의 기복이 크고 소심했죠. 작은 일에 화를 내고 내적 갈등을 조금도 참지 못했어요. 저는 정서적으로 미성숙했기 때문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주적이고 주체적이며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의미가 포함된 이름을 지었어요.
저는 제가 꽤 강인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처음 봤을 때 울었어요. 사실, 엉엉 울었어요. 단순히 감동이라기보다는 뭔가 몽환적이더군요. 어떤 환상이 현실이 된 느낌. 익히 경험하지 못한 따스한 위로를 받는 느낌.
그동안 온실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일상을 보냈고 드라마틱 하진 않지만 많은 일을 겪었고 누군가의 케어 따위는 필요 없다. 나는 홀로 설 수 있으니까. 하며 살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외롭다 생각했나 봅니다. 아이들을 보는 순간, 아이들이 제게 위로가 되는 걸 아는 순간, 제게 절실히 위로가 필요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 위로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딱히 감동이나 감격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막 눈물이 나더군요.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생각은 때로는 신념이 되지요. 잘못하면 집착이 될까 봐 다소 관조적일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내 방식의 사랑이 아이들을 옥죄는 것이 될까 봐.
다만,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는 게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일지는 모르지만 '사랑해 사랑해'를
남발합니다. 얼굴을 비비고 피부를 맞대며 사랑해할 때 문득 제 자신도 사랑받는다는 느낌
입니다. 그래서 계속 사랑한다 말하는 거지요.
아이들과 여행을 떠납니다. 손수 계획을 짭니다. 교육 목적은 배제합니다.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순간 생각나는 본전의 욕구는 아이들로 하여금 여행 자체를 괴로운 것으로 정의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알아서 느끼고 배울 거라 믿습니다. 그냥 부대끼고 같이 보고 이야기하는 곳. 성취는 각자 알아서. 여행은 밑져야 본전이란다. 재밌으면 성공이지. 행복하면 대성공이야.
의미나 교육 따위는 잊어라. 즐겨라 하늘 끝까지.
묘하게도 어느 곳이든 비교적 장시간 여행을 다녀오면 아이들이 부쩍 자란 느낌을 받아요. 이번에도 그걸 느끼고요. 사실 이번에는 확신에 가깝게 느낍니다. 흔히 말하는 퀀텀점프의 자양분으로서 여행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딸아이는 새침하고 아들아이는 다정다감합니다.
반대로 딸아이는 세심하고 아들은 건성입니다.
타고난 천성 그 자체를 바꿀 순 없다고 믿습니다.
장점이든 단점이든 있는 그대로 인정하리라 늘 다짐합니다. 제가 저희 부모님께 늘 '그래 주십사' 희망했던 것처럼 말이죠.
가르쳐서 될 것만 챙기기로 합니다.
특히 식사예절, 타인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기...
저는 아주 엄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혼냅니다.
제 표정만 봐도 바로 알아차립니다.
어느 순간 조금씩 잔소리가 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합니다. 내 아이라도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이들과 대결하지 않겠다 다짐합니다.
아빠도 똑같은 사람으로 슬퍼하고 기뻐하고 아파하며 똑같이 실수를 하고 같이 배워가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제가 가끔씩 대견합니다.
완벽할 수 없음에도 완벽하려는 집착과 불필요한 권위가 얼마나 큰 고통인지는 제가 잘 알기 때문이죠.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중요하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사랑이 충만한 것 , 천성이 선한 것 등으로
행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믿습니다. 갈등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것. 때로는 담담할 수
있는 것. 매사에 평상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들은 가르쳐서 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체화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해 아이들과 같이 배워가곤 합니다.
그렇게 10년째입니다.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