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를 위한 위로.
“난임이 많다고들 하지만 정작 내가 그럴 줄은 몰랐어.”
남자에게 여자가 더없이 ‘예쁠’ 때는 결혼할 즈음일 것입니다.
어쩌면 여자가 진심으로 ‘대단하다’ 할 때는 아이를 낳을 때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제게 여자가 정말 ‘위대해’ 보인 때는 난임이라는 예상치 못한 절망을 이겨 낼 때였습니다.
어느 여사원이 “난임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난임 일 줄은 정말 몰랐다.”고 했던 말이 진심으로 와 닿는 것은 저희 또한 그랬기 때문이죠.
인생을 그다지 무겁게 살지 않는 편인 제가 진심으로 미칠 듯 한 압박감을 느꼈던 때는 난임이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이겨 낼 때였습니다. 그 압박감은 단순히 기다림이 힘들다거나, 아이를 갖는 데 따른 어려움이 아닌, 제한된 시간 안에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해도 결국 부모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애타는 절망
에서 비롯됩니다. 정말이지 마음대로, 노력대로 안 되는 일 중하나가 아이를 갖는 일이더군요.
꽤 오랜 시간 난임 부부였던 저희에게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며 서로 어색하게 웃는 일이 있습니다.
근처에 작은 산이 있는 주택가에 살던 어느 날 혼자 집을 나섰다가, 외진 동네 놀이터 입구 언저리에 있던 굵은 미루나무 그늘에서 낡은 유모차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특별한 생각 없이 그 유모차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고, 놀랍게도 그 유모차 안에는 태어난 지 몇 달 안 되어 보이는 아이가 홀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근처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더군요. ‘혹시 이 아이를 누군가 의도
적으로 두고 떠난 거라면?’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 갔고 그때 심정은 뭐라 표현하기 힘든 놀라움이었죠.
그때는 여러 차례의 시험관을 실패해서 잠시 쉬고 있었을 때였고, 수년 동안 내색 없이 참아 주셨던 부모님이 속설에 따라 ‘다산(多産)’을 한 여자의 속옷을 보내오는 바람에 말로 형용하기 힘든 불쾌감을 느낀 지 며칠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민감했는지도 모르지만 마치 머릿속에 천둥이 치듯 ‘어쩌면?’ 하는 기대가 가슴에 내리꽂혔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어찌할 바를 모르다 그 유모차를 바라보며 뒷걸음질을 쳤고 멀리서 아내를 불렀습니다.
“여기! 빨리 와 봐. 빨리!”
뜨악한 표정으로 나타난 아내의 손을 붙잡고 우샤인 볼트처럼뛰어간 그 자리에는 여전히 아이가 잠들어 있었고, 아무리 이성을 잃은 사람이라도 누군가를 두고 가야 한다면 바로 딱! 그 자
리일 법한, 외지지만 간간히 사람들이 오가는 자리에 놓여진 낡은 유모차의 아이를 보는 순간 아내도 분명히 5분 전의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아! 정말 어쩌면!”
조금 전의 제가 그랬듯 아내도 어쩔 줄을 모르다가 아주 순진한 표정으로 “안아 볼까?” 했는데 그건 사실 좀 겁이 나는 일이 었습니다. 정말 누군가 ‘두고’ 간 아이라서 실제로 우리 아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친 듯이 달려드는 맹수처럼 정수리를 파고든 까닭에 되레 조심스러워 졌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저하며 “글쎄…….” 하고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한 여자가 잘 보이지도 않는 쪽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또 가슴이 덜컥하더군요. 저는 아이를 혼자 두기에는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가 이 아이의 엄마일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아내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어색하게 서 있는 아내와 저 사이를 그대로 지나간 그 여자는 ‘이 사람들이 왜 여기 모여 있나?’ 하는 의아함과 다소의 불쾌함이 버무려진 어색한 표정으로 말없이 유모차를 밀고 갔습니다.
“안아 볼까?”했던 아내의 순진했던 얼굴이 당황으로 바뀌면서 애써 명랑하게 “그럼 그렇지.” 했을 때는 온 지구를 덮을 만큼 넓고도 깊은 오지랖이 참 미안하더군요.
그날 밤 저는 제가 늘 꿈꿔 왔던 모습의 아기가 거실에서 새하얀 기저귀를 차고 ‘앵앵’거리면서 기어 다니는 ‘실제’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아! 꿈에서도 저는 놀라서 아이를 안지 못하고 마냥 행복한 기분으로 바라만 보고 있더군요. 기분좋게 잠에서 깬 저는 한 번 더 가슴을 쳤습니다. 얼른 아이를 안아야 ‘내’ 아이가 된다던데…… 이렇게 한심할 수가…….
우습지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곤 합니다. 겪어 본 사람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난임의 고통은 상상하 는 것 이상입니다.
그 고통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수 있다는 절망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잘못하면 ‘영영 부모가 될 수 없 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긴장에 비할 일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저는 수십 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그와 같은 압박을 느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 심적인 고통을 소스라치도록 선명한 기억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난임의 고통은 정말이지 매순간 참기 어려운 현실이었고 고통스럽기 이를데 없는 압박입니다.
만약 누군가 남자에게는 자괴감을, 여자에게는 비참함을 선사하는 최고의 방법을 찾는다면 그건 난임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자신에게 괴롭고 서로에게 미안한 과정을 몇 번이나 거친 끝에 아이를 가졌습니다. 결혼한 지 근 십 년 만이었지요. 마지막 시술 후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피·가·마·른·다.’는 말의 의미를 절감할 만큼 고통스러웠는데, 마치 온몸 특히 심장을 이리저리 비틀고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난임 부부들은 그런 과정을 매번 겪곤 하지요.
결과 통보를 받기로 한 날, 마침 팀 축구 시합 후 팀원들이 모두 샤워장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 종일 결과에 대한 불안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심장을 짓누르는 긴장에 미친 듯이 공을 찼던 저는 샤워장에서 더더욱 증폭된 ‘실패의 불안감’에 급기야 비명을 지를 참이었습니다. 그때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는 첫사랑에게 고백을 받은 십대 소녀처럼 엉엉 울며 “나. 됐대…….”라고 말했습니다.
“그래? 됐다고? 정말 됐다고? 우리가 부모가 된다고?”
저도 모르게 내지른 그 기쁨의 소리가 너무 커서 주변 사람 모두가 그 이야기를 들은 터라 스물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벌거벗은 채 제게 몰려와 역시 벌거벗은 제 등과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의 말을 쏟아 내 주었습니다. 무척 행복했지요.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간절한 바람을 되뇌어도 늘 안 되는, 가슴의 온갖 애간장을 쥐어짜는 시간을 위해 직장을 그만둔 이후 몇 년을 보냈던 아내와 제게는 ‘노산(老産)’이라는 의학적 분류에 따라 수많은 검사를 거쳐야 하는 난관이 추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어렵고 힘든 고개를 하나 하나 넘을 때마다역시 온몸을 짓누르는 절박함이 꿈틀거렸고, 그렇게 몇 달을 더 ‘살아낸’ 끝에 부모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벌써 5년 전의 일입니다.
(*그로부터 다시 5년이 지남)
어떤 사람들에게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토록 힘든 일입니다. 난임 부부에게 부모가 된다는 것은 특별하다기보다는 ‘각별’합니다.
보통의 부모들에게도 ‘부모가 되는 일’은 특별하지만 난임 부부에게는 부모가 되는 동안 저마다 ‘각별’한 사연이 생기기 마련 이지요.
저는 아이를 처음 보던 날, ‘펑펑’ 울었습니다. 그 수준은 「모여라 꿈동산」의 인형이 눈물이랍시고 뿌려 대는 물줄기만큼 되었는데 저희만의 각별한 ‘사연' 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길거리에 잠시 놓여진 다른 사람의 아이에게조차 느끼는 어떤 절박한 ‘기대감’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운명에 애원하며, 자신에게 슬퍼하고, 상황에 절망하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 난임 부부에게나 있을 법한 일입니다.
최근 논의되는 ‘난임 휴직제’를 찬성하는 이유는 난임이 주는 사회적 의미가 의외로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회사에서 주는 ‘진료’의 기회는 역차별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에 대한 보완적 측면이 강합니다. 물론 결혼하기 전에, 그 어떤 고통 없이 당황스러울 만큼 자연스럽게 아이를 갖는 수많은 사람들이 볼 때는 매우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지원일 수도 있겠지만, 잠재적으로 기혼 여성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부가 난임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사회적 보완재 역할로서 ‘난임 휴직제’는 충분히 고려할 만합니다. 정작 자신이 난임이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
지금, 아름다운 파바로티의 ‘남몰래 흘리는 눈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경험하는 수많은 난임 부부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지금보다 나은 ‘사회적 기회’를 주는 일입니다.
회사에서 조금만 더 도와준다면 정말이지 아주 ‘각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 진심으로 믿습니다.
- 5년 전, 난임휴직제 논쟁이 있을때 회사게시판에 올린 글. : 지금은 절차적으로 유급휴가를 지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