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함에 관해.

by 얼간이

한 시간 전 친구는 기차를 탔습니다. 까치머리를 한 제 아이 또래의 아이 손을 붙잡고 꾸깃 쥔 기차표를 든 손으로 악수를 청하고는 개찰구를 빠져나갔습니다.

친구는 어쩌면 고작이랄 수 있는 20만 원을 꾸러 한 시간 반을 달려와 한 시간을 더 기다렸습니다.

돈을 꾸러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다른 친구들의 연락을 이미 받은 참이라 그저 밥이나 사 먹여 보낼까 했는데 막상 친구의 아이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아이는 맨발에 짝퉁 크록스를 신고 여름용 칠부바지를 입은 채 아빠의 손을 가만히 잡고 있다가 꾸뻑 인사를 했지요.


그때 제 심정을 굳이 정의하자면 반은 연민, 반은 걱정입니다.

그리고 그 걱정의 정체는 "다음에 또 부탁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었죠.

"아이 힘들게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그냥 계좌 알려주지."

"계좌가 (저당으로) 물려 있어서 못 받아." 하는데 왠지 모를 화가 치밀었습니다.

처음 "OO 역에 와 있는데, 18만 원만 꿔줄래?" 하는 말을 들었을 때도 같은 화를 느꼈습니다.

'20만 원이면 20만 원이고 15만 원이면 15만 원이지 18만 원은 대체 뭐란 말이냐?....'

분명 그 친구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상도 없이 그냥 화가 났죠.

제 평생 명동칼국수를 그렇게 맛있게 먹는 아이는 처음 봤습니다.

저는 그냥 웬일인지 화가 나 있었는데 확실히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20만 원 때문은 아니었지요. 그냥... 계속 화가 났습니다. 아이가 맛있게, 너무나 맛있게, 마치 칼국수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어른처럼 후루룩 후루룩 정신없이 면발을 들이킬 때도 화가 났고 아이의 구질구질한 칠부바지 끝자락에 묻은 밥풀때기를 보고 화가 났고 아이에게 급하게 쥐여준 던킨 도너스 봉지를 움켜쥐느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몹시 신경에 거슬렸으며 건네주는 돈을 받으며 " 너 못 만났으면 오도 가도 못하고 여기서 잘 뻔했어" 하는 소리에도 화가 났습니다.

" 오빠 친구들은 다 이상해"

제 여동생이 자못 심각한 얼굴로 제게 했던 말인데, 그 이상한 친구에 '당연히' 들어가는 친구이긴 했지만 유유상종이라고 그 정도 이상함은 저도 가지고 있던 터였으며 그는 도박도, 술도 하지 않는, 그냥 시킨 일 열심히 하려고 애쓰는 그냥 흔히 보는 그런 친구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딱히 원인을 찾기도, 잘잘못을 따지기도 어려운 그런 평범한 삶을 사는데... 외국인인 아이의 엄마가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친구의 잘못도 아닌데....."아이 참! 모르겠다. 운명이라면 차라리 설득력이 있겠지..."

"오늘 자고 가. 우리 집 10분 거리야."

" 나도 집 있다... 올라갈게,"

왠지 모르게 기차표를 그 친구에게 끊도록 하는 건 대출해 주면서 선이선이자를 떼는 것 같아 얼른 창구로 가서 표를 끊어오니 친구다 저를 가만히 쳐다보며 말하더군요.

"고맙다. 쓰는 김에 차나 한잔 사줘. 그냥 커피 말고 아메리카노인가 무시기가 비싼 거"

그때 알았어요. 그가 "구질구질" 하게 친구 사이를 들먹이며 비굴한 웃음을 지었거나 온갖 '20만 원의 용처'에 대해 타당성 없는 설명을 하거나 꼭 갚겠다는 말을 했더라면 화가 아닌 짜증이 났을 것이라는 것.

40분 남은 차 시간 동안 고작 두어 마디... 커피 맛 쓰다 와 나는 괜찮은데 이 새끼가 불쌍하지 뭐.

그리고 사실 나 이 돈 못 갚아.

'어휴. 정말. 차라리 비굴하던가.'

아이가 던킨 봉지를 자꾸 열어봅니다.

"삼촌이 또 사줄게. 먹고 싶으면 먹어."

아이는 아빠 얼굴을 쳐다봤고 동그란 엄지손가락만 한 빵을 한 입에 털어 넣었는데 "이 새끼가 불쌍하지 뭐." 하고는 친구가 아이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습니다.

저도 제 아이가 뭔가를 맛있게 먹으면 대견합니다.

미국의 부모도, 북한의 부모도, 일본의 부모들 모두 그럴 겁니다.

저처럼 그 친구도 대견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또 까닭도 없는 화가 납니다.

"어휴. ..."


띵동 띵동.

언제 오느냐?는 아내의 메시지에 이어 다른 친구의 카톡이 도착했습니다.

기차가 출발하고 막 차에 시동을 걸 때였는데 "야 OO 돈 꿔줬냐?

그 '새끼' 돈 꿔주지 마. 상습이야. 푼돈 꾸러 사방에 돌아다닌다더라.."

그만해. 알아. 안다고. 나도 안다고.

나 지금 후회하는 중이야. " 다음에는 못 꿔줘" 하고 말한 걸 정말 후회하고 있단 말이야..

안 그럴걸 그랬어. 그 '새끼'가 정말 상습범이라면 다음에 또 부탁을 할 테니 그때 안된다 말해도 될걸. 생전 처음 부탁하러 온 친구에게 "다음에는"이라는 말을 해서 상습범을 만들어 버린 것을 후회 중이라고... 미리 잔인할 필요는 없었는데...

사실 저는 그 친구의 아이와 제 아이를 견주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감정이입이고 저도 그 친구처럼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회는 더 이상 '운명의 약자'에게 관대하지 않으며 웬만한 버팀목이 있지 않는 한, 최악의 상황이라면 제게도 충분히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일말'의 불안감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화가 난 건 그 때문일 겁니다. 20만 원도, 15만 원도 아닌 18만 원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처음 부탁하는 사람에게 "다음에는"이라고 말해야 하며아이가 미친 듯이 먹는 국수를 건져주며 그 친구가 지은 표정을 저도 짓게 될까 걱정하는 것이며 결국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는 '삶'에 대해 화가 났던 것이겠지요.

저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개념상으로는 같은 '처지'가 될 가능성을 가진 삶을 산다는 것. 그게 좀 화가 났던가 봅니다.


쓰러지는 사람들.
우뚝 서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정말 '그럴 만큼' 잘못하거나 '그럴 만큼' 잘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면 더더욱 그렇지요.

문득 적자생존의 세상이 잔인한 건 순전히 자기 노력만으로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고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당장이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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