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순간

by 얼간이

종이 박스 따위를 올려놓은 난간 아래서 제가
해야 할 일은 그저 1분 간격으로 '아저씨'를
불러야 하는 일이라는 걸 처음에 들었을 때
땡잡았네. 보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이라는 걸
대번에 눈치챘죠.

사실 그날 제가 받은 오만원은 어느 공장의 폐수 정화조 내부에 방수 페인트를 칠하는 아저씨를 정기적으로 불러주는 값이 아닌 아저씨가 대답이
없으면 그 통 안에 들어가서 아저씨를 끌어내
와야 하는 보험의 성격이었죠.

오만원이 결코 싼 게 아닌 게
아저씨를 구조하다 저도 같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죠.

"아저씨?"
"오냐."

"아저씨?"
"그래"

결코 "왜"라는 답은 나올 수 없는 수십 번의
질문 끝에 저는 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어차피 중요한 건 반응 여부지 내용은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이왕 할 이야기면 호출과 답변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아저씨?"
"응"

1분 후
"제가 훈련소 있을 땐데요"
"으흠"

1분 후
"옆에 놈이 쉴 새 없이 싸러 가는 거예요"
"그래?"

1분 후
"전우조라서 따라가야 하잖아요."
"그렇지"

1분 후
"하도 궁금해 뭘 처먹은 건지 물었어요"
"뭘 처먹은 거래?"

1분 후.
"그 새퀴.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랬대요"
"총으로 쏴버리지"

1분 후.
"히히히"
"껄껄"

이런 식이 었죠.

아저씨는 제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된 즉시 아저씨가
쓰고 있던 마스크와 똑같은 마스크을 요청 해 굳이
이 더운 날 부러 쓰고 하루를 보냈다는 것과 거의 정확히 1분 간격으로 질문을 해서 제가 마음에 드셨다고 하셨죠.
14일을 모두 채운 학생도 드물었는데 저는 마지막
이틀의 연장근무도 마무리했어요.

아저씨가 쓰러졌다 간주하면 마스크 없이
아저씨를 꺼내오는 건 불가능할 테고 그 상황이
되면 최소한 1분은 지났을 테니 일이 벌어지면
지체 없어야 할 일이라서 아예 마스크를 쓰고 있는 편이 낫겠죠. 그런데 그런 작업에 참여한 아르바이트생 중에 마스크를 요구한 학생이 저밖에 없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죠.

40도를 오르내리던 8월의 한 여름 14일간 계속
되던 작업이 끝나는 날 저녁 아저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페인트 가게로 저를 초대했고 제 또래 여자분이 차려주는 밥에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마셨어요.


그날 아저씨가 페인트를 지우려고 받아놓은
신나를 물로 착각해 담갔던 대가리가 불에 타는듯한
알싸함에 연신 머리를 긁으면서도 홀짝홀짝
잘 받아 마시다가 거의 뻗어나갈 즈음이었어요.

아저씨가 잘 구워진 오리고기를 집어
후후 불고는 제 밥에 얹어줬던 생각이 나요.
삼겹살보다 오리고기가 좋다며. 그때 용기를 냈죠.
"아저씨. 저 1년만 데리고 다녀 주셨으면 해요"

가렵고 화끈했던 대가리의 통증이 거의
사라졌을 즈음 아저씨가 혼잣말처럼 "근데 학교는 졸업해야지 않겠나?" 하셨는데 발가락 끝이 찌릿찌릿한 게 그냥 다리가 저려서 그런 게 아니라
제 일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기로에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임의 휴학을 하면 4년 장학은 포기해야 했지만
어차피 2년만 남았고 제가 꿈꾸는 배낭여행을 계획대로 가려면 어차피 휴학이 필요하며 여행비를 모으려면 1년을 꾸준히 모아야 하는데 아저씨랑 같이 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며 부탁을 드렸어요.

아저씨는 타일도 하셨고 배관도 하셨는데 일이 아주 잘 되셨어요.

95년 한 해는 그렇게 아저씨와 다녔어요.
아저씨는 정해진대로 정확히 돈을 주셨고
저는 그걸 차곡차곡 모았어요.

가끔씩 아저씨가 저를 대견하게 보시는 눈길을
느낄 때면 내가 사실 운이 좋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8개월쯤 지나 지금도 있는 탑항공에서 12개월
오픈티켓을 끊었어요. ANA 전 일본 공수. 68만 원.
인천에서 오사카. 오사카에서 모스크바 경유 로마행이었어요. 로마와 브랜디시 를 거쳐 그리스를 가고 터키로 건너가 이란. 이라크를 돌고 다시 요르단과 이집트와 레바논. 그리고 루마니아 불가리아를 다녀오는 여정이었죠. 한나라 한 달 이상. 한 곳에서 이 원칙을 지키려면 그게 최선이었죠.

공처럼 굴러갈 정도로 단단하게 매여진
배낭에 만족하며 아저씨를 뵈러 갔어요.
아저씨가 자꾸만 고기를 밥에 얹어주시며
몸 건강해라. 건강해라 자꾸 말씀하셨어요.

그리고는 얼마간의 돈을 쥐어주셨는데
나중에 꺼내본 봉투 안에 신용카드가 있더군요.

혹시 실수이신가 문의드렸더니 정말 위험할 때
일단 쓰거라 하셨어요. 급할 때 써라.
봐야 할 것 돈 아깝다 넘기지 말아라. 쓰고 나서 갚으면 된다.

한때 머슴살이도 하셨다는 무학의 아저씨가 태생부터 가지고 계셨을 지성이 보여준 품격이라니...

공중전화로 인사드릴 때 그 마음씀이 너무나 감사해서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꾸뻑 인사를 했던 생각이
납니다.


비행기가 모스크바에서 이륙해 시베리아를 넘어
가는데 뒷자리에 앉은 어느 일본 어르신이
찰칵. 아래를 찍고는 "요시!!!" 했어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뭔가 내 인생에 변화는 있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른 채였고 오사카 공항에서
1박 노숙을 할 때 잠시 느꼈던 해방감이 전부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좋았어!
하는 순간에 실감이 나더군요.

바로 지금. 부정의 무게추가 긍정으로 넘어
가는 찰라이며 그동안 나를 짓눌러왔던 그 어떤
정서적 고통도 더 이상 내 인생의 주류로
자리 잡을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 말이죠.

"요시!!!!"
빛나라 내 인생!!!!.
저는 정말 그 순간 확신했어요.
제가 결국은 행복할 것을 말이죠.

제 인생의 분기점이 그렇게 넘어갔어요.
그날. 그 순간에. 그 여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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