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나라는 아이가 만들어진 곳을 성(fam. name)으로 한답니다. 논둑에서. 밭 한가운데서. 뽕나무 아래서. 이런 식이죠.
만약 베트남이 그러하다면 압도적인 성은 '혼다' 일 겁니다. 많은 사랑이 오토바이 혼다 위에서
이뤄지니까요.
2. 아버지가 전쟁 유공자이고 어머니가 육군 대령인 어느 베트남 여자의 초청을 받아 집으로
몇몇과 놀러 갔어요. 흔한 직사각형으로 된 다층 집이었죠.
많은 사람들이 그 여자가 이렇게 잘 사는 줄 몰랐다더군요. 특히 그 여자의 개인방이 있다는 걸
부러워하던데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의 60~70년대처럼
3대가 한방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죠.
3. 제가 자주 가는 중국 호텔 서고에서 책을 읽다 보면 많은 중국 사람들이 옵니다. 그 시간에 많은 중국인들이 '마작'을 하므로 대부분 마작을
좋아한다고 믿겠지만 사실 적지 않은 수의
중국인들은 그 시간에 독서를 하고 있으니
'마작' 은 '일반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씩 '일반적'을 '절대적'
인 사실로 믿지요.
4. 일반적인 것도 생각해보면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베트남 주택의 압도적인 수는 특정 사람에게 몰려 있습니다. 그 외 사람들은 집이 비싸 방을 온 가족이 셰어 해야 합니다. 혈기 왕성한 신혼부부는 어디로 갈까요? 베트남은 허가 없이
모텔을 갈 수도 없습니다. 마음대로 모텔을 갈 수 있다 하더라도 돈이 아까워 가지 않을 겁니다. 가장 편하고 익숙한 곳을 찾겠죠. 그래서 오토바이일 겁니다. 우리에게는 물레방아가 있었듯 말이죠.
어느 전문가라는 사람이 베트남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너무나 사랑해서 많은걸 그 위에서 할 수 있다. 하는데 <할 수 있다와 할 수밖에 없다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오토바이에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재주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맞습니다. 그 기제가 오토바이일 뿐이죠. 변태도 아닌데 오붓이 사랑할 있는 좋은 침대가 있으면 거길 가지 굳이 '88' 오토바이 일리 없잖아요.
중국사람들이 안 씻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럴 겁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씻는걸' 싫어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훗날 제가 글을 쓴다면 꼭 한번 묘사를
하겠다 결심했던 중국의 어느 섬유단지의 근로자
평균 수명은 42세였습니다.
밀레니엄 해. 100세 시대를 논하는 때였죠.
그곳을 방문한 두 시간 내내 구토감을 느끼게 만들고 며칠이나 냄새를 달고 다니는듯했던 그 경악스러운
악취와 화학물질 사이에서 하루 작업을 마친
사람들은 벌집 같은 집에서 살면서 목욕을
하려면 물값을 내야 했습니다.
밤새 얼마나 괴로울까요? 그런데 고양이 세수 말고는 목욕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더군요. 물 사는 돈. 그 돈을 모으면 적지 않은 돈이죠. 스타벅스에서 물 하나 사고 거기에 캔커피를 넣는 건 어쩌면 궁상이지만 이분들은 그런 절약을 넘어선 절박함이 있습니다.
씻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적당치 않은 겁니다.
일반적 사고로 뭉뚱그려 말하려면 상황이 적절치 않다는 전제를 깔아야 하는 거죠.
중국인이 더럽다는 건 물값이 비싸서일 수 있으며
베트남인들은 오토바이에서 모든 걸 하는데 심지어 사랑을 나누더라는 낮은 프라이버시 보장과 사회주의적 통제가 버므려 져 선택된 차선책일 수 있습니다.
나라면!!! 편안한 공간이 있다면 극기 러브도 아니고 오토바이 위에서 힘들게 할리가 있느냐? 이게 상식이어야 하는 거죠.
5. 가난할수록 성에 익숙할 수밖에 없는 건
서로의 나체에 익숙한 환경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나 문화나 성향이 아닌 것이죠.
6. 남자로서 모욕감을 느끼는 건 사실 '모든 남자'가 기회만 있으면, 짐승 같으며, 원하지 않아도... 하는 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자'로서 제 평생 가장 모욕적인 장면은 캄보디아에서 어느 60대 서양 노인이 벌벌벌 떨면서 머뭇대는 기껏해야 열 살도 안된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호텔로 올라가는 장면을 봤을 때의 무력감이었습니다.
그게 설령 문화라 해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죠.
원치 않는 터치가 있는 마사지는 '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노'라 말할 수 도. 말한들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는 저런 장면은 매우 고통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싫으면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싸잡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과도한 연민이나 감정 세일을
하는 편은 아닌데 어쨌거나 태국의 맛사지사가
한국 남자의 아랫도리를 훑어낸다 해도 넘어갈
사람이었으면 한국에서도 그랬을 것이고
여기서 아니면 거기서도 아닌 것이고
분위기상 휩쓸릴만한 경우라면 여기서도
그랬을 겁니다. 어느 분 말마따나 정말 그럴 겁니다.
그런 경우 저는 '싫다'라고 명백히 말하고
교체를 정중히 요청합니다.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마냥 화낼 일도 아니고.. 사실 놀랄 일도 아닙니다.
그런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하지만 한 가지.
태국의 모든 여자가. 모든 맛사지사가 남자 친구이나
남편의 사타구니를 훑을 리는 없습니다. 물론
어느 분 말씀처럼 '모든 남자가' 그걸 원할 리도
없고요.
그냥 그런 '경우'에 걸린 것뿐입니다.
그냥 우연히 베어 문 사과가 벌레를 먹은 것뿐인 거죠. 벌레 먹은 사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모든 사과가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일반적과 절대적의 차이인 거죠
- 베트남 사람이 한국 와서도 굳이 오토바이에서
사랑을 나눌 리가 없으리라 믿으며 어떤 문화도 이유 없이 '절대적'이고 '단편적'일리 없다는 생각도
같이 '헛소리'로 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