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이기적인 자기 위안이 필요할 때

by 얼간이

지금은 외국에서 생활하는 대학 동기가 실연을 당했어요.
키가 훤칠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머리도 좋아서 동급생 중에서도 제일 인기 있었죠.

이 친구가 모 여대 여학생과 불기둥 같은 사랑을 하다가 채였죠.
학부생 신분으로 모 대기업의 프로젝트에 Pilot으로 참여를 할 때였어요.
같은 사무실 안에서 불러도 말을 안 하길래 "뭐하냐?" 하고 어깨를 치며 보니 정말 만화같이 눈물이 얼굴을 타고 두 줄기로 흐르더군요. 조용히 뒷걸음쳐서 제 자리에 온후 '실연의 아픔에 공감하는 자라면 그 친구를 가만히 둘 것' 하고 사발통문을 돌렸죠.

며칠 동안 결근을 좀 하길래 걱정스러웠어요.
혹시 목이라도 맸나 싶어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하숙집 문을 열어보면 뭐가 매달린 건 없었고 침대에 널브러져 있어서 덜컥 약을 먹었나? 서둘러 뒤집어 보면 코를 골며 자고 있고 그랬어요.

여하튼 그렇게 한 달가량 지나니 조금 정신을 차리더군요.

그 프로젝트 후 저는 배낭여행을 갔고 그 친구는 어학연수를 다녀왔는데 거기서 동양계 외국 여자를 만나 몇 년 후 결혼했어요. 배낭여행에서 돌아오니 그 멤버들이 또 다른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고 교환교수로 가신 교수님 집을 합숙소로 쓰고 있는데 왠 훤칠한 여자가 나오길래 깜짝 놀랐어요.
여자 친구고 조만간 결혼한다더군요. 아주, 대단히 미인이었어요.

제가 다시 배낭여행을 떠나던 해 친구는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취직을 해서 몇 년을 떠돌더니 동남아 어느 나라에 터를 잡았어요.

몇 년 후 출장으로 베트남 하노이 엘 갔더니 주말 비행기를 타고 한걸음에 달려왔더군요. 하노이의 포시즌 호텔에서 술을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전 여자 친구 이야기가 나왔죠. 그 여자 친구도 대단히 미인이었는데 성격은 좀... 괴팍한 경우가 있어 제 개인적으로는 꺼리는 사람이었다 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종종 생각할 정도로 사랑했었노라 하더군요.

그리고 십몇 년 전에 겪은 실연의 아픔을 장황하게 이야기하더니 제게 그래요.
"그때 있잖아. L*에서 프로젝트할 때 너한테 무척 고마웠어."

저는 그날 제가 아이들에게 혼자 슬플 수 있도록 건드리지 말라고 배려를 해준 것과 목을 맸나 약을 먹었나 기대하며 매일매일 찾아간 걸 말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그날 날 불러서 널 쳐다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저런 새끼도 결혼하고 살 텐데.....'"

??!!

그날 술값은 그 친구가 냈어요. 그리고 사실 저는 하나도 안 불쾌했는데 그게 농담이건 아니건 어쨌거나 죽진 않았으니까요.

상처가 크면 좀 더 이기적이어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영원히 이기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내게 전례 없는 상처라면, 그 상처가 남에 비해 덜 아픈 것이라면 속으로나마 못내 좋아해도 죄짓는 것은 아닐 겁니다.

언젠가 저는 세상의 우울한 분들을 위해 제가 세상으로부터 쓴 바가지를 공개할 것입니다.
만약 그날 우울한 사람이 있다면 제 상처를 보고 마음껏 자기 위안을 하셔도 좋습니다.

바로 저! 인간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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