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에 전설같이 내려오던 이야기 중 하나가 어느 이름 모를 선배가 신혼 단칸방을 얻어야 할 돈으로 오디오를 샀다는 이야기입니다.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누군가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봅니다.
제대 후 복학을 해보니 군 면제라서 이미 졸업한 줄 알았던 전주 출신의 친구 녀석이 아직도 학교를 다니고 있더군요.
녀석이 다 쓰러져가는 자취방으로 저를 초대했어요. 막 복학한 동기 녀석들과 우~ 몰려갔어요. 가운데 수도가 있는 마당을 쪽방들이 둘러싼 옛날 집이었는데 그 마당에서 대낮에 살인사건이 나서 월세가 절반이라는 말을 들으니 까닭 없이 서늘하더군요.
희멀건 놈팽이들끼리 모여할 수 있는 대화라는 게 고작 여자 이야기뿐이라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다를 바 없는데 그즈음 누나 친구와 (친구 누나가 아닌 누나 친구였고 둘이 결국 결혼했죠.) 연애를 하고 있던 녀석이 몇몇 글짓기 소재가 될법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니 불현듯 대찬 소나기 소리가 들리더군요.
"비기 오나?" 하고 창문을 열었는데 가을 녘 저녁 찬바람만 상쾌할 뿐 맑은 하늘이었고 녀석이 깔깔 대고 웃었어요. 그 소리는 녀석이 육 학기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 학기를 휴학하고 삥땅을
친 등록금과 있던 세입자들도 모두 도망가는 마당에 피범벅의 흔적을 모래로 훌훌 가려놓은 살인 현장인 마당에서 되레 머뭇대는 주인아줌마를 졸라 그 피해자가 머물다 칼에 찔린 방을 그저 '싸다는' 이유로 얻어서 아낀 방세를 모아 마련해 일본에서 사 왔다는 '중고!!!' 오디오 세트에서 나오는 소리였고 저는 그 소리가 너무나 입체적이고 '풍성'해서 깜짝 놀랐어요.
저는 지금까지도 녀석이 애정 어린 손 끝으로 빗소리가 나오는 판을 바꾸고 틀어준 비발디 사계. 여름. 프레스토를 잊지 못합니다.
정말 폭풍이 치는 강렬한 느낌이 귓전을 때리고 머리를 휘감고 심장을 후려쳤죠.
돌비 서라운드. 입체감. 현장감. 온갖 수사를 그렇게 한꺼번에 경험하는 건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무아지경에 빠진 채 아까 다른 녀석의 첫 경험 따위는 깜빡 잊어버렸고 우리는 한동안 그 오디오에 매료되어 방학 내내 온갖 판을 가져다 틀어댔는데 근래에 살인 사건이 났고 그전에는 연탄가스로 두 명이 죽었고 그 방에 있는 작은 쪽창에서 곧바로 보이는 그 뒤편 공터에서는 젊은 여자가 목을 맨 나무가 있다는 그 방에서 불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저는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상심'의 깊이가 어느 정도 인지 그때 목격했답니다. 식음전폐. 눈물. 이불 킥. 녀석은 재를 움켜쥐고 울었어요.
이미 지난 일인데 사람이 죽어나간 방에서 자는 게 뭐가 무섭냐던 녀석이 타버린 오디오가 남긴 검은 재를 움켜쥐고 엉엉 울더군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누가 타버린 오디오를 이야기할 때마다 필요 이상의 광분을 하는 것만 다를 뿐 이전과 똑같았죠. 휴학을 했고 밥값과 월세를 아꼈고 가여운 애들을 패서 성적을 올려주고 코 묻은 과외비를 더 받고는 일본엘 다녀왔어요.
제가 배낭여행을 하기 위해 돈을 벌고 휴학을 한 것처럼 그는 음악을 듣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자기 혼자만을 위한 극장을 만든 거지요. 그것도 집요할 만큼 간절하게.
녀석은 저랑 교생 실습도 같이 했는데 경북 어느 공고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어요. 오늘 같이 삼만 원짜리 이어폰을 테스트하는 날에는 문득 녀석이 그날 재투성이 위를 떼굴떼굴 구르다 얼굴에 재를 대고 세수하듯 격렬하게 문댄 까닭이 몹시 궁금해지곤 합니다.
녀석이 그 근방 제일가는 유지의 첫째 딸을 결사적으로 꼬신 이유가 분명 따로 있을 테죠.
그냥...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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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마늘 자매의 컬링이 보여준 마력은 결국 몰입과 좋은 개념으로서의 집착 덕분 아닐까 합니다.
몇 년 전 찾아가 만난 녀석은 그때의 일에 대해 소문내지 말아 달라 부탁했어요. 젊은 시절 호기였다고. 아이들 보기 창피하다더군요. 저도 녀석이 콧물을 질질 흘리며 울던 모습을 떠 올리며 문득 공감했어요.
결국 녀석은 좋은 음악 평론가가 되지 못했고 저도 좋기는커녕 보통 여행가도 못되니 그만큼 평생을 다할 정도로 간절하게 몰입을 안 한 탓일 거라며 그저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