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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an 12. 2024

우리나라 나무 이야기

우리 곁에서 자라는  나무 이야기

책도 생애주기별 맞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기에는 헤세나 에밀리가 지은 작품에 푹 빠지고, 청년기에는 ‘1만 시간의 법칙’이나 ‘몰입’ 등 자기계발서를 주로 읽게 되며,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면 ‘삐뽀삐뽀 119 소아과’부터 재테크 관련 책에 눈이 가게 됩니다. 그리고 슬슬 나이가 들어 세상살이가 시큰둥해질 때면 취미로 배울 수 있는 실용도서들을 많이 찾게 되는데 만약 특별한 취미생활이 없다면 수목 도감을 한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이동혁 저자의 ‘우리나라 나무 이야기’를 추천하는데, 이 책은 나무의 식물학적 특성뿐만 아니라 예부터 우리 민족이 나무와 어떻게 얽혀서 살아왔고 나무의 쓰임새는 어떠했는지 또 나무에 유래된 전설은 무엇인지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작가의 전공은 물리학이었지만, 풀꽃과 나무에 푹 빠져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산속에서 식물을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국립수목원에서 나무를 관찰하는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고 하니 자신의 꿈을 찾은 것 같아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허구한 날 보는 것이 도로 가로수이며 동네 야산에 들어찬 게 잡목인데, 뜬금없이 웬 수목도감이냐고요? 저도 예전에는 자연이 좋다며 산속에 들어가는 것은 세상을 등진 히키코모리의 삶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우리나라 나무 이야기’를 읽었더니 늘 걷던 길의 풍경이 전혀 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던 나무들이 재미있는 얘깃거리로 말을 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을 건네는지 주말 산책길에서 만났던 나무들을 소개하겠습니다.
 
평소 중앙동에서 야탑동까지 대원공원 산책로와 작은 산 숲길이 연결된 길을 걷곤 했습니다. 그 길에서 제일 먼저 아름드리 갈참나무가 우듬지를 남쪽으로 내밀며 길 방향을 일러줍니다. 참나무임에도 불구하고 가을에 잎이 붉게 물들면 단풍나무 못지않게 색이 곱습니다. 갈참나무가 가을 참나무란 이름에서 비롯된 연유입니다. 바람이 불면 나무는 노래도 부릅니다. 김소월 시인의 ‘엄마야 누나야’에서 나오는 시 구절 ‘갈잎의 노래’가 바로 이 갈참나무 잎사귀가 서걱거리는 소리입니다.
길 따라 공원 광장 벽천분수를 지나면 측백나무가 양쪽으로 늘어선 길이 나옵니다. 측백나무는 잎과 열매를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송백(松伯)이라 하여 소나무(松)는 공작(公), 측백나무는 ‘백작(伯)’으로 귀하게 대접하였습니다. 이 길을 걸을 때마다 귀한 신분의 측백나무가 친히 도열하여 마중하니 사람이 귀하게 된 느낌입니다. 
 



측백나무 옆은 거대한 메타세쿼이아가 나란하게 서 있습니다. 하늘 높이 자라난 메타세쿼이아 사이를 걸으면 마치 공룡이 튀어나올 듯한 원시림에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메타세쿼이아는 살아있는 식물화석으로 불릴 정도로 오래된 나무로 쥐라기 시대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평철석을 징검다리 삼아 랩터처럼 깡충깡충 뛰듯 걸으면 재미납니다.
산책로 끝자락에는 잣나무 숲과 맨발 지압장이 있습니다. 잣나무는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피톤치드를 발산하는데, 이것이 사람에게는 아토피 등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정작 나무를 해치는 것은 해충보다 사람이 더할 텐데 잣나무는 그것도 모르고 귀한 잣까지 아낌없이 내어 줍니다. 
  


공원을 나와 둔촌대로를 건너면 둔촌 이집선생의 묘소 입구에 다다릅니다. 신도비에는 회화나무 몇 그루가 있습니다. 예부터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얻으면 마을 어귀에 회화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회화나무는 한자로 학자수(學者樹)인데, 공교롭게 영어도 학자라는 의미의 Scholar tree입니다. 성남 보호수로 지정된 수백 년 묵은 회화나무가 이 근처 노인정에 있습니다. 이 고장은 대대로 선비들이 터를 잡고 살았음을 회화나무는 말없이 증명합니다.
아튼빌 아파트 앞으로 둔촌대로 따라 걸으면 방음벽에 담쟁이가 기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로수로 심은 느티나무 넉넉한 나뭇가지와 담쟁이 풍성한 잎사귀가 햇빛을 막아주며 도심 속 인도는 시원한 숲길이 됩니다. 
 


하대원 야채시장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 3번국도 토끼굴을 지나면 비로소 숲길이 나타납니다. 숲에는 키 큰 떡갈나무와 신갈나무가 많습니다. 잎사귀가 넓은 나무지만, 저마다 필요한 햇볕만 가져가서 파란 하늘이 듬성듬성 보입니다. 키 큰 나무가 나눠준 햇살은 키 작은 나무가 받습니다. 특히 길섶에서 키 작은 생강나무가 잘 자랍니다. 성남에는 생강나무 노란 꽃이 진달래나 개나리보다 더 일찍 꽃망울을 터뜨려 봄이 왔음을 알려줍니다.
개암나무도 자주 보입니다. 잎끝이 개복치처럼 싹둑 잘린 모양이 재미있습니다. 개암나무라고 하면 낯설어하여 헤이즐넛이라고 말하니 다들 아는 척합니다. 우리 이름보다 영어 이름이 더 친숙한 것 같아 ‘나 때는 말이야.’ 개암 열매를 딱 깨물면 방망이를 든 도깨비들이 깜짝 놀라 도망갔다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산길 야자 매트를 따라 우수박스를 통해 돌마로를 횡단하면 여수동이 나옵니다. 여수동 이름은 조선시대부터 개울에 흐르는 물이 맑고 주변 숲이 아름답다고 하여 여수(麗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수동 산자락에는 아름다운 산목련 자생지가 있는데, 저는 처음에 꽃이 너무 예쁘길래 함박꽃인 줄만 알았습니다.
여수천을 건너면 야탑동입니다. 야탑동 이름은 들판에 오동나무가 탑처럼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은 아파트가 탑처럼 빽빽하게 들어섰습니다. 대신 오동나무는 영장산 기슭에나 가야 몇 그루 듬성듬성 자라고 있습니다.
 이렇듯 수목도감 한번 읽었다고 평소 길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나무들이 아는 척하며 말벗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쉬다’라는 뜻의 한자 쉴 ‘휴(休)’가 ‘사람(人)’과 ‘나무(木)’가 만나서 이루어진 글자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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