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이야기

에세이 :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앞으로 나아갈 때의 어려움

by leeconomy


앞으로 친구 관계에서도, 본인이 바쁘다는 이유로 도망치고
다른 사람의 진심에 상처 주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최근, 정말 친한 친구에게 받은 메시지입니다. 그리고는 이 도망이라는 두 글자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게 됐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도망을 칩니다. 연인 앞에서, 선택 앞에서, 친구 앞에서, 도전 앞에서. 그리고 이 도망에는 정말 다양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무서워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 내가 더 손해라서, 바빠서, 귀찮아서.


시실 어쩌면 저에게는 도망이라는 두 글자가 낯선 글자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이미 도망을 쳐본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9급 공채를 준비했었고, 9급은 크게 3차례의 시험을 치릅니다. 4월 국가직, 5월 지방직, 6월 서울시. 하지만 제 수험은 4월, 5월 국가직, 지방직만 치르고 끝이 났습니다. 6월 시험을 앞에 두고 저는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는 더 할 엄두도 나지 않았고, 너무 힘이 들었고, 그렇다고 친구나 부모님께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친구에게 말을 한다면 왜 그만두냐, 힘내라 이런 이야기가 돌아올게 뻔했고, 아마 왜 그만두었는지, 도망쳤는지에 대한 이유를 다 말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자니 우선 너무 죄송했고, 제가 너무 모자 라보였습니다. 그렇게 자책을 하다 결국 속초로 도피 여행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낙산사를 걸어 다니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도망이 꼭 나쁜 것일까? 서핑을 할 때는 파도를 잘 타려면 좋지 않은 파도는 보낼 줄도 알아야 하고, 애초에 불완전한 인간이라면 매 순간 다 부딪히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고민이, 생각이 25살 남자가 하기엔 조금 버거운 고민이었다는 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당장 시험을 때려치우면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없는 잿더미에서 새로 시작을 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시험을 다시 준비해야 할까? 그리고는 그 여행에서 다짐했습니다. 속초에서 올라가는 그 순간부터, 절대 매 순간 도망을 치지 않겠다고.


그렇게 올라왔고 지금까지 도망 한번 치지 않고 너무 잘 살고 있었다 생각했던 저에게 이번에 도망은 또 다른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쩌면 정말 바쁘고 열심히 살아온 저의 20대가 어쩌면,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겠다고,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나는 조금 남보다 늦었다고 이런 핑계로 더 온전히 맞이할 수 있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가능성과 기회에서 도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도달한 결론.


"아, 난 아직 속초에서의 다짐과 달리 도망을 치고 있구나"


결국, 저는 앞으로 나아갈 때, 인간관계에서 아직 도망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젠 도망을 치지는 않겠습니다!! 이런 오글거리는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도망을 치기로 했으니까요. 저를, 제 인생을, 도망에 대한 저의 태도를 바꿔준 두 문장을 소개하고 이번 글을 마치려 합니다.



부디 우리가 도망쳐온 모든 것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기를
결국 우리가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지 않기를
(영화 평론가 이동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대한 평)



이 한 문장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대한 영화 평론가 이동진 씨의 한 줄 평입니다. 정말 어쩜 이렇게 이 영화의 에센스를 이 한 문장에 녹여버릴 수 있는지 정말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도망을 쳤던 저에게, 그렇다고 자책하는 저에게 정말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었던 문장입니다. 우리는 결국 언젠간 도망을 쳐야 할 순간이 올 테니까요. 20대, 뭐든 다 할 수 있다 생각했던 저에게 처음으로 제동이 걸린 순간에 마음에 너무 큰 울림을 주었던 문장이기도 합니다.




일에는 식판과 평판이 있대요.
어떤 일은 밥을 먹고살게 해지고,
어떤 일은 업계에서 평판을 얻게 해 준다는 말이겠죠
(유병욱, 생각의 기쁨 中)




그렇게 도망을 치고 자책하던 저에게 너무나도 운이 좋게도 대외활동을 하며 유병욱 CD 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듣고는 저런 답변을 해주셨었습니다. 일에는 식판과 평판이 있다. 모든 일에 대해서 그렇게 진정성 있게 대할 수는 없다. 정말, 흰돌만 던지다가 검은 돌을 던질 순간이 올 거고, 그때 한번 제대로 던지면 된다. 그 순간이, 식판이 아닌 평판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일 것이다. 이 문장은 자책하고 위로받은 저에게 그건 별거 아니야, 정말 중요할 때 한번 잘하면 된다 라는 또 다른 위로를 주었던 문장입니다.


누구나 박새로이처럼 빛나게, 단단하게, 소신 있게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그럴 때 이 글을 보는 누구나, 저 두문장을 보면서 작은 위안과, 작은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글을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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