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아날로그의 반격 서평

by leeconomy

헤겔은 변증법이라는 이론으로 현대 철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변증법이란, 인식이나 사물이 정, 반, 합 이 3단계를 거쳐 전개가 된다는 주장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정(正)이란, 그 자신 속에 실은 암암리에 모순을 가지고 있지만 모순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단계이고, 반(反)이란 그 모순이 자각되어 밖으로 나오는 단계. 그리고 이와 같은 모순에 부딪혀 제3의 합(合)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 합은 또 하나의 정(正)이 되고 다른 반(反)을 만나 새로운 합(合)을 이루고 이 과정이 무한하게 반복된다.


중세 유럽에서 발생한 르네상스도 이 논리를 따르고 있다. 중세 유럽의 암흑기라 불릴 만큼 유럽은 신 중심 사회였고, 과학기술은 신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되어 발전할 수 없었다.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신이 과연 실재하는가? 실재하지 않는 신을 위해 우린 그렇게 전쟁을 해왔나? 와 같은 회의론이 퍼져 나갔고, 인간들의 반(反)격이 시작됐다. 인본주의의 바람이 분 것이다. 그리고 합(合)의 과정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르네상스 이후 과학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이 사건 이후로 서양의 기술이 동양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때 합(合)이었던 과학기술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디지털’이라는 정(正)이 되었다. 그렇다면 반(反)은 무엇일까? 바로 ‘아날로그’ 기술이다. 그리고 이 책은 반(反)이 되어버린 아날로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디지털화는 편리함의 극치인 반면, LP는 경험의 극치애요.
종이의 감성적, 기능적, 경제적 가치가 증가했다.
디지털 사진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실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재료를 손으로 만지기를 원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책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결국 디지털의 핵심은 편리성, 효율성, 생산성 등에 있다. 또한 아날로그의 핵심은 감성, 체험, 실재 등에 있다. 그리고 필자는 디지털의 이런 핵심에 대해 본질적 의문을 제기한다.



받은 메일함에 이메일이 쌓여가고,
휴대전화 메시지에서 알림음이 울려대고 더 이상 통제되지 않는 것을 보면
모든 테크놀로지가 생산성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위의 문장은 최근 코로나 사태가 만든 언택트 시대에서 고민해 볼 만한 문장이다. 최근 모든 대학 수업도 사이버강의(일명 싸강)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으로서 매우 비효율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팀플도 행아웃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행아웃은 편리하고, 효율적이고 생산적이었을 수도 있다. 이동시간을 아끼면서 시간의 제약 없이 회의를 할 수 있으니. 하지만 반대로 이동시간이 없었기에 그 회의 자체가 소중하지 않았고, 시간의 제약이 없어 방만해지는 경향도 있었다. 또한 만나서 회의를 하면 표정을 보며 즉각적인 피드백이 되지만 행아웃은 그렇지 못했다. 결국 효율성은 더 떨어지고 말았다.


책의 구절과 위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디지털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 절대적이지 않은 점이 아날로그가 반격을 할 수 있는 스타팅 포인트가 되었다. 아날로그는 “레코드, 종이, 필름, 보드게임, 인쇄물, 오프라인 매장” 등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직접 만져보고, 소유하고, 체험하고, 경험을 하였다. 또한 아날로그 기술을 몰랐던 이들에게는 모순적이게도 ‘새로움’으로 다가갔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반(反)격만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위에 언급된 것처럼 아직 이 반격의 규모는 작다.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없다. 둘 다 나름의 장점이 있으니까. 그렇기에 책에 직접적으로 서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필자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네가 생각하는 합(合)은 무엇이냐고.



결국 우린 아날로그 존재들이고 아날로그 물건들이 우리에게 잘 맞으니까요.
아날로그 물건을 잘 만드는 사람들이 더 뛰어난 디지털 물건을 만들지요.



디지털이라는 정(正), 아날로그라는 반(反). 이 둘이 만들어낼 합(合)은 무엇일까? 결국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글귀는 위에 언급한 “아날로그 물건을 잘 만드는 가람들이 더 뛰어난 디지털 물건을 만들지요”가 될 것이다. 아날로그, 디지털 이 두 가지를 결국 다 이해해야 이 둘이 만들어내는 합(合)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니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인터스텔라

솔직히 나는 아직 어떤 합(合)을 그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감독 중에 디지털, 아날로그의 합(合)을 그리는 감독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기도 한데,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화계에서 디지털카메라 대신 필름 카메라를 쓰며, CG를 쓰는 것 대신 고집스럽게 세트장을 짓고 촬영을 하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만든 영화 중 대표적인 것은 ‘인터스텔라’라는 SF 영화다.


필름과 세트장이라는 아날로그를 고집하면서 정작 만든 영화는 우주로 나가고, 시공간을 여행하고, 과학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영화는 현대 SF영화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을 받는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한 구절.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이 구절이 다르게 보였다. 이것이 그가 찾은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함께 가져가 그려본 합(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나에게 단순이 디지털의 한계를 알려주고 아날로그의 가능성을 알려준 책이 아니었다. 디지털의 한계와, 아날로그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어떤 새로운 합을 그려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만들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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