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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요 Sep 15. 2022

[다움] 내려놓기

다움에 갇힌 많은 사람들의 인간다움과 연대

사진출처 : 블로그 노래의 날개위에

선생은 선생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한다

-모든 곳의 많은 이-


삼겹살이 먹고 싶은 어느 오후.

찾아간 가게 벽에 붙은 글귀 하나를 발견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저기압일 때는

고기 앞으로'

학기를 마무리하기 전날 함께 모여 찾아간 회식장소에서 누군가가 건배제의를 했고 그가 건넨 위로는 모두의 가슴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애쓴 자신을 위하여 건배~'

정호승 시인의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라는 시와 그 노랫말에 곡을 붙여 부른 가수 안치환의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졌다. 따라라라라~

늘 그렇듯 고기가 익기 전까진 소소하고 일상적이며 고기가 익고 술이 돌면 활기차지고 열기가 식으면 타고 치워져 한쪽 구석에서 처음처럼 기대를 주진 못하지만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닌 고기처럼 자리의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각자의 취기대로, 마신 음료에 따라 다양하게 무르익어간다. 자리가 돌고 사람들이 섞이면 서로의 고민과 서로의 처지에 대한 이해로 인해 분위기는 좀처럼 처음 모임의 의도대로 유지되기보다는 무겁게 가라앉는 경우가 경우가 많다.

선생답지 못한 자신과 아이답지 못한 학생과 학부모 답지 않은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답고자 하는 이들의 애씀과 아이다움이 무엇인진 잘 몰라도 학교라는 곳이 그저 답답한 아이들의 힘겨움과 이미 자신의 노력으로 기대할 수 없게 되어버린 고집 센 자녀들을 그나마 학교와 교육의 권위로 소위 '잡아주기'를 바라되 세상 둘도 없는 친절과 상상해 본 적 없는 인권과 천국 같은 평화의 교실을 소소하게 바라는 그저 소소한 학부모들의 바램은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힘들다. 말할수록 지쳐가기 때문이리라.


[선생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는 속담아닌 속담이 전해져 내려온다. 존경받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간혹 있겠으나 감정의 상함과 인내의 고통으로 문드러지고 썩은 장에서 나온 것이 다른 일반의 것과는 달리 더 지독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했다.

'스승으로서 존경받는 교사'라는 말은

 '교사가 교사다움을 유지하여야 스승이 되고 그리하야 존경을 받는다'는 뜻으로 시급한 것은 교사 다워야 한다는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적인 고민이 생긴다.

자질은 갈고 닦음으로 어느정도 갖춰지고 타고난 성정에 어울리는 직업을 적성이라 하며 자신을 누를 충분한 마음가짐을 사명감이라 한다.

자질도 필요하고 적성도 필요하고 사명감도 필요하다.

 

사도의 길, 교사다움의 길과 행동, 태도는 과연 교사를 교사답게 하고 더 나아가 자유롭게 하고 있는 것일까?

복장과 말투, 권위, 상징, 예상되는 행동과 뻔한 말들이 초~고에 이르는 10여 년 동안 보고 학습되어져 우리는 겉모습만으로도 능히 교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교사가 있고

세상에 있는 모든 아이의 부모는 자신의 형상을 닮아 자라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으로 때론 기대하고 때론 실망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 세상의 흐름을 예견하는 그들만의 식견으로 자녀를 양육한다.

그런 소중하고도 소중한 아이들이 있고, 지극히도 주관적인 보호자도 있고

그런 아이들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있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교육의 목표는 이러하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공교육이란 목표 아래 서로가 서로에게 소속되어 있고

목표가 분명하므로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고 안내자로서의 교사는 제복을 입은 사람처럼 일사불란하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과 소질과 적성이 중요해지는 미래사회도 거기 있다.


교사에게도 교사다움 보다는 교육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다듬어가도록 자유롭게 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어떠한 압박과 강압 속에 있다는 판단하에 든 생각은 분명 아니다.

가정에 부모와 자녀가 있고 학교에 교육자와 학생이 있다.

'세상의 많은 어머니들은 위대하고 세상의 대부분 아버지는 가련한 뒷모습을 지닌다'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면 생각해 볼 일이다.

위대하고 또 가련한 탓은

출처 블로그 보건복지부

어머니는 어머니다움보다는 어머니로서 사랑하고 양육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아버지는 자신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아버지다움에 갇힌 탓이리라

어머니의 품이 더 따사롭고 포근하나 아버지의 품은 불편하고 어색한 많은 이들의 경험은 애정의 차이와 뱃속에 품은 세월과 배 아파 낳은 경험의 있고 없음 탓은 아닐 것이다.

물론 모두는 아니다.


우리 모두는 성장에 필요한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넘어진 아이에게는 다가가 일으키고 상처를 살피며 우는 이유를 살펴 안전하게 해 주어야 한다. 스스로 일어나 툭툭 털어내고 다시 묵묵히 제 길을 가는 아이로의 성장을 기대하는 마음은 어른의 마음이지 아이가 원하고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속이 썩어가며 걱정할 일이 아니라 무릎을 낮추고 눈물을 닦아 둘이 마주 보고 웃어 서로가 행복해지는 것이 올바른 길은 아닐까?


반듯한 선생님을 보고  아이가 반듯하게 자랄 것이라는 생각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눈과 무릎이 낮아져야 할 일이다. 내 똥도 편하고 내 눈도 선하고 말도 다정해지는 길은 분명히 있다.

[다움]은 온 누리에 펼쳐져 지나가고 스쳐가는 거의 대부분 많은 길 위에 안내판처럼 우뚝 서 있다. 애써 무시하면 비난의 대상이 되고 꼼꼼히 지키다 보면 답답하다.


세상이 바라는 다움의 시전과 안내를 버리고 온전한 나로서 내 자리에서 내가 하는 일에 충실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야 말로 [다움]을 버려 [진정]을 얻는 길이다.


다움은 고결한 듯 하나 외롭고

다움은 깨달음을 줄 것처럼 세월을 견디라 하지만 위로받지 못한 상처는 세월이 더할수록 덧날뿐이고

다움은 늘 날 돌아보게 하지만 풀어헤쳐 자유롭지 않고

다움은 참게 하지만 고통스럽고

다움은 미소 짓게 하지만 속을 썩게 만들고

다움은 미사여구를 쏟아내지만 가슴을 적시지 못하고

다움은 칭송을 기대하게 하나 카타르시스적 고백은 만들지 못한다.


다움의 껍데기를 벗고 참된 나로 살아 자유와 희망과 소통과 연민의 인간적인 것들로 연대하고 기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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