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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ks Oct 31. 2018

지식인의 책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라졌는가

  【어떤 면에서 ‘지식인의 책무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지식인의 책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이렇게 쉽게 대답할 수 있지만 여기에 수식어가 더해지면 상당히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몇 가지 수식어를 더해서 지식인의 책무를 정의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적합한 대중에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진실을 찾아내 알리는 것이 지식인에게 주어진 도덕적 과제이다.


   중요한’ 문제부터 따져보자. 무엇이 중요한 문제일까?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데는 많은 요인이 있다. 어떤 질문들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특히 인간의 삶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현상과 관계있는 도덕적 차원의 것이다.

   도덕적 행위자로서 지식인이 갖는 책무는 ‘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대중이란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자. 대중에게 진실을 알리려면 올바로 선택된 대중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 대중에게 진실을 알리는 이유는 교화(敎化)의 목적도 있지만 일차적인 목표는 인간적 의미를 갖는 행동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세상의 고통과 슬픔을 줄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뻔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이때 근본적인 쟁점에서는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르다.


   권력자들에게 진실을 말한다고 특별히 명예로울 것도 없다. 그들을 상대할 바에는 실질적인 역할을 해줄 대중을 찾는 것이 낫다. 게다가 그런 대중은 단순한 대중이 아니라, 사람들이 건설적인 정신으로 참여하고 싶어 하는 공동의 관심사를 지닌 공동체다.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말해서는 안 되고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나눠야 한다.


   이제 이번 논의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핵심적인 면을 살펴보자. 즉, 중요한 사건에서 진실을 찾아 그대로 말한다는 뜻은 무엇일까?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우리지만 새삼스레 말할 것이 많고 대답할 것도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말들이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살아가고 일하는 공동체에 달가운 소리여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속한 학교와 언론계와 공동체에서 우리의 관심사와 행동에 대해 숨김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변화가 있을 때,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문명 세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위 문장들은 『지식인의 책무』(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황소걸음, 2005. 7. 15)에 나오는 문장이다. 


  우선 나는 지식인이라 말할 수 있는가? 내가 속한 직장은 지식인 집단이라 말할 수 있는가? 나의 업무가 지식인의 업무라 말할 수 있는가?

  지식인의 책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과연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중요한 문제에 대해 적합한 대중에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 ‘나는 지식인이다’라고 강하게 답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위 기준으로 볼 때 현재 우리 사회의 언론, 정부 고위 관료, 국회의원, 대학교수 등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 하는 사람들은 지식인이라 말할 수 있는가? 이들이 지식인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누구를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높은 사회적 신분(사회 고위층 인사)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는 사회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헌납 등의 전통이 강하였고, 이러한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귀족 등의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은 더욱 확고했는데,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든 것도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힘입어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나라에서 출세하려면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위장전입, 탈세, 편법증여, 논문표절, 부동산투기 등이다. 정치권을 보면 참 재밌다. 여야가 서로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비난한다. 서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 한다. 이를 바라보고 있는 국민들 대다수가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한다. 우리나라 사회지도층이 얼마나 한심한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서로 자기네들이 깨끗한 정치인이라 한다.

      

  나는 지난 정부에서 일어난 국정농단 사건을 언론을 통해 지켜보았다.

  ‘국정농단 사건’이라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적합한 대중에게 진실을 찾아 그대로 알려준 지식인이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2014년 특정인에 대한 문건이 드러났을 때 이미 대한민국 권력서열 1, 2, 3위가 누구인지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이러한 문건 내용은 덮어두고 문건을 유출한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수사가 이루어지고 언론도 이 부분에만 관심을 가졌다. 이때 이를 제대로 국민에게 알리고 진실을 밝혔으면 한 나라가 특정인에 의해 농단당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다. 과연 이 나라를 끌고 간다는 높으신 정치인 그리고 말단 사원이 함부로 말을 건네기 힘든 재벌기업 총수들은 권력 실세를 모르고 있었을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을까? 이들이 알면서도 감추고 있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우리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은 이미 사라졌는가? 멀리 서양 역사를 볼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아도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부정부패가 극도에 이르게 되면 항상 그 국가는 패망의 길을 걸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모두 그랬다.

  하지만 나는 나와 같은 평범한 국민들의 촛불을 보고 희망을 보았다. 아직은 살만한 대한민국이고 절망과 분노를 희망과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았다.

  그래서 이 나라 국민인 게 아직은 자랑스럽다.

     

  지식인의 책무는 진실을 알리는 것이라는 말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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