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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ks Feb 08. 2019

먼저 자신의 독해력을 알아야 한다

비워야 채워지듯 내 독해력을 솔직히 드러내자 

  몇 해 동안 책을 조금 읽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무슨 책을 읽어야 하냐?’는 물음 말고 많이 묻는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어떻게 읽어야 하냐?’는 물음이다. ‘어떻게’라는 단어에는 많은 뜻이 있는 거 같다. 정독, 다독 따위의 문제일 수 있고, 언제, 어디에서를 묻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구는 다독보다 한 권을 읽더라도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니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으며 읽어야 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많이 읽는 게 좋다고 한다. 그래서 속독을 배우면 좋다고 한다. 나는 어떤 게 더 좋은지 여기서 따지려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하는 방법을 소개할 뿐이다. 

  읽는 방법은 그 사람의 독해력과 책 내용이 얼마나 어렵고 쉬운가에 따라 다르다. 또한, 아무리 전문적인 내용이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읽기 쉽게 잘 풀어서 써 놓았느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는 먼저 자신의 독해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 경우, 쉬운 자기계발서 같은 경우 하루에 두세 권도 읽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쉬운 자기계발서도 며칠 걸려서 한 권을 읽었다. 그런데 2~30권을 읽어 나가자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즉, 자기계발서에 자주 나오는 단어, 용어, 문구, 지식이 나도 모르는 사이 뇌에 저장이 되어 새로운 책을 읽어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나에게 자기계발서는 속독이 되며 정독도 되는 분야가 되었다. 

    

  나는 원효대사가 해골바가지 사건으로 깨달은 ‘변한 것은 나의 마음뿐이다.’라는 구절에 큰 울림을 받았다. 그래서 『원효의 십문화쟁론』(박태원 지음, 세창출판사)을 통하여 원효의 ‘화쟁(和爭) 사상’을 배워보고자 책을 사들었다. 하지만, 조금 읽다가 포기했다. 언젠가는 읽어 볼 생각이지만 얼마 동안 읽지 않을 생각이다. 읽지 못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다.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내가 이 책을 읽으려면 불교 철학을 어느 정도 공부한 뒤가 아니면 평생 읽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누군가 어린이용 책처럼 아주 쉽게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모를까. 나에게 이러한 책은 정독해도 안 되는 분야의 책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유명한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를 읽었을 때는 속독이 되지 않았다. 문장 자체는 어려운 것이 없었다. 그러나 빨리 읽을 수 없었다. 나오는 문장들이 잇따라 생각을 하게끔 하는 문장들이었으니까. 이런 책은 빨리 읽고 싶어도 빨리 읽지 못한다. 그리고 천천히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당시에도 ‘아. 그렇구나. 이해는 되네’ 하는 정도였고, 지금은 솔직히 어떤 내용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이 책도 고스란히 이해하고 나의 것으로 만들려면 공리주의, 칸트 철학, 존 롤스의 정의론, 고대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고등학교 때 한 번쯤은 들어보았던 고대부터 현대까지 철학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런 책은 나중에 다시 읽을 책으로 떼어 놓는다. 

    

  레프 톨스토이가 쓴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의 경우 거의 한 달 걸려서 읽었다. 물론 다른 책을 함께 보면서 읽긴 했으니 더 빨리 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1,600쪽이 넘는다. 소설이라 하지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책을 정독한다면 얼마나 걸릴까? 보통 오늘 배운 것도 며칠 지나면 완전히 머리에서 지워진다. 하물며 이런 책을 정독한다면 뒤에 가서 앞의 내용을 기억할 수나 있을까? 내가 보기에 이런 책은 속독을 통해 빠르게 읽고 반복해서 읽어야 할 책이라고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메모지에 사람들 관계도를 그리는데도 꽤 힘들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책세상)은 정독으로 한 번 읽고 이 책에 대해 어느 대학 교수가 설명해주는 인터넷 동영상 강의도 들었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한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옆에 놓고 시간 날 때마다 읽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나에게 자기계발서는 한 번 읽는 것으로 끝낼 수 있는 책이고, 『십문화쟁론』 같은 책은 아예 처음부터 포기한 책으로 언젠가 다시 처음부터 도전해야 할 대상이고,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책은 읽긴 읽었으나 제대로 읽지 못하였고 다른 철학들을 더 공부한 뒤 다시 읽고 싶고, 읽어야 할 책이며, 『자유론』은 몇 번이고 읽어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책이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말이 있다. 새로운 것을 채우려면 지난 것은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독해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른 채 남들이 좋다는 책을 읽어봐야 자신과 맞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그래야 어떻게 읽을지 알 수 있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첫 번째 내 생각은 먼저 자신의 독해력을 있는 그대로 평가해서 그에 맞는 책을 읽어 나감으로써 독해력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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