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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ks Feb 11. 2019

정독이 먼저인가, 다독이 먼저인가

깊게 파려면, 먼저 넓게 파야한다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읽어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은 이미 많은 책을 읽고 지식을 쌓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뿐 아니라 생각하는 힘도 많이 기른 사람이라 생각한다. 책을 몇 권 읽지 않은 대학교 4학년에게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책을 읽어보라면 그 학생이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하지만, 대학 4년 동안 철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고 독해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4학년에게 같은 책을 주면 이 학생은 제대로 읽을 것이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문장론』(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옮김, 지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상은 주관적인 논리와 스스로 터득한 지식을 기초로 세워지는 건축물이다. 알기 위해서는 물론 배워야 한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여러 조건을 통해 스스로 깨달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앎은 깨닫기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와 학습은 객관적인 앎이다. 그리고 독서와 학습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색은 주관적인 깨달음이다.     


  사상은 건축물, 주관적인 논리는 설계도, 스스로 터득한 지식은 건축 재료라고 생각한다. 설계도를 그릴 줄 알고 건축 재료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설계도를 볼 줄 아는 것과 스스로 설계도를 그릴 줄 아는 것은 다르다. 설계도를 그리려면 무게를 견뎌 건물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고, 지진에 견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따위의 모든 것을 따져봐야 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책 읽기는 그런 과정으로 가기 위한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사색이라고 강조한다. 즉, 스스로 생각해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또 다음과 같은 문장도 나온다.     

  최고의 정신이 보여주는 특징은 판단을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직접 자신의 힘으로 결정한다는 데 있다. 이 같은 정신의 소유자가 제시하는 의견은 스스로 사색한 데 따른 결과이다.
  세상의 보통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면 권위 있는 말을 인용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력과 통찰력을 활용하는 대신 타인이 남긴 침전물을 동원하고, 이를 자기 생각보다 더욱 확신한다. 어떤 논쟁을 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주로 선택하는 무기는 권위이다. 그들은 수집한 여러 가지 권위를 무기로 선택한 후 서로 싸움을 한다. 그들은 타인의 자발적인 논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오직 사라진 자들이 남겨둔 권위만을 유일한 논거로 여기게 된다.     

  보통 윗사람들이 맡아서 하는 회의에 참석해 보면 어디 책에서 본 것이라면서 유명한 철학자 따위의 말을 많이 인용한다. 그런데 그 뜻을 고스란히 이해하여 자신의 사상으로 만들어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또한 마찬가지다. 주변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유명인의 말을 빌려오는 경우가 있는데 나 또한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말하는 게 아닌 경우가 많다. 쇼펜하우어의 이런 주장은 나를 반성하게 만들어 준다.

  어쨌든, 쇼펜하우어는 책 읽기는 단지 개인적인 사색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책 읽기는 사상을 유도하는 역할로 충분하다는 거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색’도 배경 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땅을 깊게 파려면 우선 넓게 파야 한다. 지금부터 삽을 들고 2미터 깊이에 황금열쇠를 숨겨두기 위해 땅을 파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삽을 들고 지름 50센티미터의 원을 그린 후 그 원 안에서만 땅을 파면 2미터까지 팔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지름 2미터나 3미터 아니면 그 이상 넓게 원을 그린 후 파 들어가야 2미터까지 팔 수 있다. 일단 범위를 넓게 시작해서 한 분야를 파고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학문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학을 알아야 물리를 배우고, 화학, 지구과학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심리학, 행동학, 철학, 사회학 따위의 모든 학문 분야를 알아야 하듯이.


  요즘은 ‘뇌과학’이라는 학문이 언론에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많이 나와 낯설지가 않게 느껴진다. 그런데 뇌과학은 단순히 뇌의 구조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인간이란 무엇’이고, ‘의식이란 무엇’인지 따위의 철학적 물음에 대해 뇌과학이 답을 하고 있다.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김대식 지음, 21세기북스)에서 ‘의식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뇌과학에서는 우리 눈 앞에 무엇인가가 보일 때, 이것을 퀄리어qualia(어떤 것을 지각하면서 느끼게 되는 기분이나 떠오르는 심상)라 부른다.
  좀비, 기계에게도 없지만 우리 인간에게 있는 것, 바로 의식이다. 의식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하는지는 여전히 비밀에 싸여 있지만, 과학적으로 뇌 한복판에 있는 클라우스트롬claustrum(전장)을 끄면 의식이 사라진다는 것은 밝혀졌다.     


  의식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아직 찾아내지 못했지만, 의식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즉, 의식에 대해 절반은 아니더라도 그에 비슷한 정도까지는 알아냈다고 봐야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철학자들은 무엇이라고 답할지 매우 궁금하다. 

    

  백날 초등학생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게 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라고 하면 그 아이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을 깊이 알려면 먼저 넓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사색을 할 힘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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