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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수 Jul 27. 2023

엄마는 아픈 걸 모른다.

자식이 나타나면!


요즘 계속 골골 거린다. 너무 더워서 밥 먹는 것도 입맛이 없고, 영양제도 잘 못 챙겨 먹는다.

올 것이 왔다. 여름감기는 개도 안 준다는데, 나는 여름에 한번 정도는 감기에 걸려버린다. 처음 증상은 목에서부터 온다. 아침부터 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퇴근하고 나니까 머리까지 아프다.

집에 오자마자 옷도 안 갈아입고 드러누웠다. 그런데 오늘 다행스러운 것은 저녁밥을 나만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남편과 아이들은 모두 늦게 올 예정이란다. 이럴 때는 저녁시간에 혼자 있다는 것이 댜행이다 싶다.


얼마였는지 모르게 소파에 쓰러져서 잠을 잤다. 그런데 문을 여는 소리가 난다. 누운 지 30분 정도밖에 안 돼서 아직 머리가 아프고 목도 아침보다 아프다. 저녁밥이고 뭐고 계속 누워만 있고 싶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오늘 늦게 귀가한다던 큰딸이다. 오자마자 거실 바닥에 쓰러져서 아파죽겠다고 한다. 큰딸은 한 달에 한번 그날이 되면 힘들어한다. 여성들만이 알 수 있는 통증이 심하기 때문이다. 친구하고 약속을 하고 만나기로 했는데 몸이 너무 아파서 집으로 그냥 왔다는 것이다.


저녁은 먹었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못 먹었다는 것이다. 나는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혼자 밥 먹겠다는 생각은 하나도 안 들고 그냥 누워서 잠만 자고 싶었는데, 딸이 밥을 못 먹었다는 말에 바로 몸이 움직여졌다.


아침에 만들었던 된장찌개를 데운다. 딸이 좋아하는 어제 무친 무생채와, 오늘 아침에 만든 반찬(감자채볶음, 진미채볶음, 시금치)들을 꺼낸다. 계란 프라이까지 부쳐주고 비벼 먹을지를 묻고 양념간장과 고추장을 꺼냈다. 딸은 다 죽어가는 표정을 하고 식탁의자에 앉는다. 그런데 표정과 다르게 한 그릇을 싹싹 비웠다. 배탈이 나서 배가 아픈 게 아니니까, 먹는 데는 지장이 없는 모양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밥을 잘 먹는 딸의 모습에 안심이 된다. 밥을 먹었으니 기운을 차릴 수 있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표정이 좋다. 딸이 평소에는 다이어트한다고 참는 음식들을 한 달에 한번 마법에 걸렸을 때는 먹어줘야 한다며 폭풍흡입을 하고 있다. 나는 머리가 점점 더 아프다. 소파에 다시 누웠다. 다시 일어났다. 설거지를 하려면 기운을 차려야 하니까!


입맛이 없어도 밥을 먹어줘야 한다. 그래야 딸을 돌볼 수가 있다. 오늘부터 계속 아프다고 힘들어할 딸을 생각하면 나는 아플 시간이 없다. 혼자 있을 때는 힘들어서 몸을 못 일으키겠더니, 딸이 등장하자마자 용수철 튀어 오르듯 일어나는 걸 보면 몸은 정신이 지배하는 게 틀림없는 것 같다.




딸 덕분에 저녁을 거르지 않고 먹게 됐으니, 딸한테 고마워해야겠다. 딸은 저녁밥과 달달한 간식을 폭풍 흡입하고 나더니 몸이 조금 좋아진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된다. 설거지를 후다닥 끝내고 방으로 가서 바로 잠들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제보다 훨씬 몸이 좋아졌다.

역시 자식은 만병통치약, 아픈 걸 잊게 해주는 마취제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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