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수 Aug 12. 2020

72년생 김지영

영화를 봤다. 물론 책은 미리 봤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난다.


극장의 대부분이 여자였다. 아니면 여자랑 같이 온 남자 이거나~~ 애인한테 억지로 끌려온 듯한 남자이거나. 부인한테 억지로 끌려온 남자들 같았다.


하지만 우리 남편은 영화를 보기를 거부했다.


영화를 보면서 몇몇 장면에서는 극장에 있었던 모든 여자들이 대부분 눈물을 흘렸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로 사실. 같이 간 일행 중에서도 내가 제일 눈물을 많이 쏟았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같이 간 일행들과 영화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신기한 것이 같이 눈물을 흘렸어도  이유는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른 이유들이었다.


어떤 이는 "난 그렇게 안 살아서 공감은 안 가지만 그래도 그냥 주인공의 감정에 전이돼서 눈물을 흘렸다"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친정엄마의 눈물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단다".


그럼 나는 어땠냐면... 사실 주인공의 고난과 슬픔이 그렇게 동의되지는 않았다. 왜냐면 나는 영화에서는 비교가 안 되는 시집살이를 했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에 비교하자니 주인공의 힘듦은 사실 힘들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그리 눈물을 흘렸냐면 나의 20년의 결혼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그 힘든 시간을 견딘 나에 대한 애처로움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얘기한 얘기 중에 나와 같은 고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남편한테 얘기 한 대화 때문이었다. 당신은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면서 무엇을 잃었냐고? 여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어쩔 수 없이 엄마로서 희생해야 할 부분이 생긴다는 것.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존재하는 사실이다. 그 고통의 양이 다를 뿐이다.


내 또래 어떤 지인은 그랬다. "사실 72년생 김지영이라고 했으면, 그 여자의 처한 상황이 더 공감이 갔을 거다"라고.

"지금 그 또래 어떤 여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참고 사냐?"라고..


난 어렸을 때 하나밖에 없는 귀한 남동생의 양말을 실수로 신었을 때 '여자가 재수 없게 남동생 양말을 신었다"라고 부모님한테 혼나던 시대에 살았고, 시댁에 가서 순종하고 시부모님 말에 토 달면 안 된다고 그게 예의라고 수도 없이 강요되고 들으면서 자럈던 세대이다. 하지만 여자애라고 대학을 보내지 않으려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내가 돈 벌면서 힘들게 우기면서 대학을 나왔고. 시도 때도 없이 시댁에 시누이 식구나 형님 식구나 우리 식구 모두를 일주일이 멀다 하고 불러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시부모님도 당연히 자식의 도리로 안된다 말 못 하고 순순히 보러 갔던 착한 며느리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게 착하고 귀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그건 당연한 것이고 안 오면 내가 여태까지 했던 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부정당하는 그런 시부모님께 한번 싫은 내색하지 않고 "네네" 하고 지내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모든 집안일들은 며느리의 일이었고 시누이들은 앉아서 놀기만 하는 일이 반복될 때마다 당연히 "이건 부당하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나만 참으면 된다는 우리 엄마가 살았던 것처럼 가슴앓이를 했다.


그렇게 살아왔으니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지영이네 시부모님이나 시누이는 나의 경험에 비추어서는 그나마 젠틀한 괜찮은 사람들이었던 거다.


하지만 나도 전혀 바꾸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어쩌다 한번 용기 내 얘기할 때마다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시끄럽게 한다고 그게 어때서?"라는 반문을 듣고 아무도 지지해 주지 않았다. 힘들게 냈던 용기는 지리멸렬하게 사그라들기 일쑤였다. 우리 남편은 영화에 나오는 공유 같은 남편이 아니니까.


혼자 투사가 돼서는 집안 특히 시집은 바꿀 수가 없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런 관점으로만 접근하다 보면, 그럼 62년생 김지영은 72년생들 "너희들이 겪은 건 일도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고, 그 윗세대는 "너희는 우리가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얘기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영화에 나오는 지영이는 힘들다. 자기가 하고 싶은걸 아기가 태어나면서 할 수 없다.

자기 성취도 자아실현도.... 내가 하고 싶은걸 상황에 밀려서 못하게 되면 누구나 힘들다.


그리고 아무리 시대가 바꿨다 하더라도 결혼한 여자 한데 강요되는 부당한 요구는 엄연히 존재한다.


물론 우리 시집을 포함하여 여전히 명절 때 그 많은 집안일은 여자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사위는 백년손님이고 며느리는 집안의 일꾼이고~~ 그러니 우린 가족이니 가족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걸 같이 해결해보자는 이야기로 영화가 끝난다. 나도 이건 당연히 동의하는 바이다.


여전히 세상에 존재하는 72년생 김지영, 62년생 김지영, 52년생 김지영 ~~ 모두 파이팅~~



물론 이글이 공감이 안 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내 삶의 팩트만을 얘기한 것이다.

사실 20대인 남자들과 얘기해보면 견해가 많이 다른 것을 느낀다. 자라올 때 성평등에 대한 생각이 세대마다 많은 변화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아울려 사는 방법은 똑같은 것은 아닐까?

누군가한테 희생하라고 하지 말고 서로 공감하고 도우면서 살아야지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는 것은 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맨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