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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수 Nov 21. 2021

눈치 보지 말고 네 멋대로 살아라

남이 원하는 데로 너를 희생하지 말아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세상에 부자는 많다.

하지만 소시민들이 생각하는 부자는 얼마의 자산가일까?

30억 이상 있으면 자산가라고 할 것이다.


그녀는 그런 부자이다.

서울 중심지 40평대 집을 가지고 있다.

원래도 집이 금액이 계속 올랐는데

지금은 재건축 얘기가 나오면서 

천정부지로 매매 가격이 상승 중이다.

그 집 한 채로 몇 십억 부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녀의 남편은 결혼할 때부터 집에 집착했다.

그 당시 결혼하는 사람 대부분은 전세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굳이 집을 사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녀는 부모님께 혼수를 하나도 안 한다고 얘기하고, 혼수에 쓸 돈 모두를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남편의 돈과 그 돈을 보태서 집을 샀다.

하지만 혼수를 안 한다는 얘기는 그냥 한 이야기였고, 

그 뒤 부모님의 돈으로 하나하나 혼수며 웨딩 촬영이며 모든 것을 다 했다.

비싸서 그 당시에 나는 엄두도 못 냈던 외국으로 신혼여행도 갔다 왔다.


결과적으로 얘기하자면 부모님들이 생각했던 결혼비용을 몇 배 더 챙기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한 이후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친정부모님 댁 옆에 살면서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같이 키워줬고,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까

친정부모님 댁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더 이상 부모님의 도움이 없이도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 나이가 되니까 

이사를 갔다.


친정 옆에 살 때도 집을 수시로 몇 채씩 샀고, 집으로 자산을 늘려나갔다.

그 돈으로 서울에 아파트 전세로 이사를 갔다.

얼마 있다가 그 집 옆에 있는 아파트 2채를 샀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녀의 남편은 건설회사 대기업에 다녔다.


그 당시에도 연봉이 많았는데 외국에 한번 나가게 되면 연봉의 몇 배를 더 받았다.

연봉이 많은 데다가 집으로 재테크를 잘해서 서울의 또 다른 집을 사더니,

이제는 빛 없이 서울 중심의 40평대 똘똘한 집 한 채를 가지고 있다.


투자 사이사이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부모님의 돈을 빌려가서 

지금도 갚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지금 몇 십억의 자산을 형성하게 됐다.




그럼 나는 어떻게 했냐고?

지금 얘기한 그녀와 딱 반대로 했다.


결혼할 당시 부모님 힘드실까 봐, 부모님이 하라는 데로 했다.

그리고 알아서 외국이 아닌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했다.

언감생심 집을 산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결혼할 때 시부모님의 성화에 시댁 근처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친정과 너무 거리가 멀었고 

시부모님은 수시로 시누이 아이들을 키워줬기 때문에 

오롯이 독박 육아를 했다.


남편이 교대근무를 했기 때문에 밤에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육아가 처음인 나는 밤에 아이가 열이라도 오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맸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었다.


아이를 안고 울었던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신혼일 때 옆집에 술만 먹으면 우리 집이 자기 집인지 아는 아저씨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남편이 교대근무로 집에 없을 때만 

술이 취해서 우리 집 대문을 발로 차고 두들겼다.

나는 너무 무서웠다.

경비실에 몇 번을 전화를 했는지 모른다.


그러면 경비아저씨는 왜 이리 늦게 오는지? 

경비아저씨 기다리는 동안 옆집 아저씨의 고함소리와 주정을 들어야만 했다.



반대로 자신이 필요할 때마다 친정 옆에 살면서 엄마의 도움을 받는 그녀가 정말 부러웠다.

시부모님은 수시로 식구들이 온다고 오라고 하셨다.

우리가 시댁 근처에 사니까 

당연히 와야 한다는 논리였다.


형님네가 집에 와도 우리를 부르셨고

시누이 식구들이 집에 온다고 부르셨다.

그럴 떼 그 많은 설거지와 뒤치다꺼리도 물론 며느리인 내 몫이었다.


하지만 난 그 세월을 그냥 참았다.

나만 참으면 다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참고 희생하는 걸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친정엄마는 항상 이런 말씀을 달고 사셨다.

"착한 끝은 있다. 착하게 살면 나중에 다 알아준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엄마~~ 엄마 말이 맞지 않았어요.'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정말 편리하다.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해서 기억한다고 한다.

그 힘들었던 시기를 아무도 모르더라.

아는데 자신한테 불리하니까,

모른척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참았던 나는 병을 얻었고.

그렇게 자기 유리한 데로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았던 그녀는 잘 먹고 잘살고 있다.




나는 재테크는 어떻게 하냐고?

그런 거 안 한다.

집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거주의 개념이라 생각하는

 즐거운 남편의 소신대로 살고 있다.





인생은 길다.

아직 우리의 인생은 많이 남아있다.

 아직 난 누가 더 잘 살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녀는 이제는 만날 때마다 어깨와 목에 깁스를 한 것 같다.

그리고 세상사 이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은근 다른 사람들을 밑으로 보는 듯이 행동한다.


하지만 항상 입에 돈이 없다고 얘기하면서 산다.

자산이 우리 중 제일 돈이 많은 걸 알고 있는데 

돈을 쓸 일이 있을 때는 정확히 n으로 배분하거나

자신이 제일 조금 낸다.

이유는 아이들 사교육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리고 결혼 이후에도 돈이 필요할 때마다 

부모님께 손을 빌린다.

잠깐만 쓴다고 돈을 빌려서 돈을 갚지를 않는다.

부모 돈이 자신의 돈이라는 마인드이다.

그렇게 자신의 자산을 늘려왔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남의 말데로 산다면 하나밖에 없는 인생에 후회만 남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선택한 것 중에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한 것 중 잘못된 것이 있어도, 후회는 그리 길지 않다.


반면에 상황에 밀려서, 싸우기 싫어서, 말해봐야 소용없다고 미리 포기하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데로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했을 때는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내가 원하는걸 다른 사람의 반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후회는 시간이 정말 오래도록 남는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

앞으로 남은 인생 남들 생각에 휘둘리지 말자!

혹시 욕을 먹고, 질타를 받더라고

내가 하고 싶으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자!!


그래야 혹시 잘못되더라도 후회가 오래가지 않는다.

한 번뿐인 인생!!!

우리 다 같이 "눈치 보지 말고 내 멋대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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