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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수 Nov 20. 2021

생애 처음으로 간 여행

비록 몸은 고단해도 뭔지 뿌듯함은 뭐지?

난 일평생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없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굳이 혼자 갈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친구하고 가족하고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 틀을 깨는 일이 발생했다.

그냥 가을이고, 날이 좋았다.

떠나고 싶었다. 일상에서 집에서~~




결혼하고 일하면서 가족만 돌보다 보니까, 

어느새 그 많던 친구들을 찾을 수가 없다.

겨우 몇 명 있는 친구들은 아이로 인해 알게 된 동네 친구다.

하지만 아줌마들에게 갑자기 여행 일정을 맞춰서 여행을 간다는 건 불가능한 것이다.


아이 스케줄, 남편 스케줄, 내 스케줄까지 모두 맞추다 보면

 한 달 전에 약속을 해놓고도 일정이 엎어지기가 쉽다. 

그러면 일정을 엎게 만든 친구한테 화가 나기도 하지만 금세 이해가 간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거나, 시댁에 무슨 일이 있다거나, 

남편의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다는 등등. 

이유는 너무나 많다.


그렇게 해서 여행을 못 간 게 한두 번인가!

그나마 지금이야 아이들이 많이 커서 여행이라는 단어를 꺼내보지,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두고 갈 수 없으니까, 

모두 데리고 가는 여행이란

여행이 아니라 고행길이다.


물론 그렇게 다녀와도 여행 갔다 와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웃음 짓는다.



하지만 이 가을 ~~ 정말 여행을 가고 싶었다.

설악산으로 거창하게 단풍놀이를 가지 않더라도

그냥 멀리 단풍 든 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드디어 큰 결심을 했다.

아무도 일정이 맞을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고 

그날 바로 경주행 ktx표를 구매했다.


고백하자면 사실 ktx기차도 처음 타본다.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세상에~~ 세상이 언제 이렇게 편해졌지?


역에 가서 기차표를 줄 서서 예매할 필요도 없다.

핸드폰에서 코레일 앱을 깔고 기차표를 샀다. 


드디어 며칠 후 새벽에 일어나 혼자 출발!!!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철도를 탔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ktx 타는 곳 이정표를 보고 계속 올라갔다.

그런데 몇 번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바로 ktx 타는 곳이 나왔다.

"응? 어디 나가고 쭉 걸었다가 그런 거 아니었어?"

바로 연결돼서 헤매지도 않았고 

너무나 편해서 깜짝 놀랄 정도다.


그리고 앱을 통해 표를 확인하고, 맞는 게이트를 찾아갔더니

ktx 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좌석표를 확인하고 앉으니, 출발 예정시간 정각에 열차가 출발!!


누가 표를 확인하는 사람도 없다.

옛날 대학 때 강촌 기차여행 갈 때처럼 

표를 확인하는 직원도 없고

음식을 팔러 다니는 카트도 없다.


코로나로 인하여 열차 안에서 음식 섭취도 안되고,

대화도 자재하고, 마스크를 잘 써달라는

 방송이 계속 나왔다.

(두 좌석 앞 턱스크하고 있는 남자가 계속 신경 쓰인다.)


 

그런 것 보면 코로나 이전에는 열차 안에서 싸온 음식도 먹고 

얘기도 하는 분위기였나 보다.

'이제 처음 타봤으니 알리가 있나?'


(턱스크한 남자가 계속 턱스크중인데 아무도 얘기를 안 한다.

난 계속 그것만 신경 쓰인다.

바로 내가 얘기했다가 해코지 달할까 봐 얘기도 못하겠고

계속 혼자 안절부절...

다행히 직원이 지나가길래 

살짝 얘기를 해서 이제야 마스크 제대로 씀.)



이제야 창문 밖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고 멍 때리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좋다.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고 나한테 아무도 관심이 없다.

챙길 아이도 없고, 주렁주렁 바리바리 들고 있는 짐이 없어서 낯설다.

'흑~ 우리 딸 학교 못 가게 하고 같이 올걸.....'라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이 훅 밀려온다.

하지만 학교 빠지기 싫다는 사춘기 딸과 같이 올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혼자 잘 놀아야지!' 

'누가 날 돌봐주지는 않으니까, 나이가 들 수록 혼자 잘 놀아야지 외롭지 않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아직 옆에 아무도 없는 게 많이 어색하고 외로움이 밀려온다.


어? 그런데 충남 천안아산역에 40분 만에 도착! 

"아니, 이렇게 빨리 와?"

지난주에 일이 있어서 충남 아산을 간 적이 있었다.

주말에 차가 막혀서 3시간이 걸렸었다.




계속 기차가 달려 경주에 출발 2시간 만에 도착했다.

'내가 참~~ 세상을 우물 한 개구리로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든 날이었다.

ktx가 이렇게 빨라서 전국을 하루 생활권으로 만들었다는 걸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걸 이용해서 서울과 지방을 오간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수도권은 GTX역 주변으로 

지방은 KTX역 주변으로 집값이 오른다고 한 거구나!

이제야 깨닫는다.





경주에 도착하기도 전에 

너무 촌스러워서 깜짝 놀라는 하루였다.


도착한 신경주역에서 시내까지 가는 택시를 탔다가 

23,000원이 나와서 또 한 번 놀란 하루!!! (나 호구됐나 봐~)

(몇 백 킬로 미터 거리의 경주 오는데 49,300원 들었는데...)


알고 봤더니 택시비가 엄청 많이 나온 거더라고!!



        




자가용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곳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유적지를 둘러보고 나 혼자 걸으면서 느끼는 가을은 외롭기도 했지만

너무나 좋았다.

항상 쫓기듯이 시계를 보며 살았는데

해가 지기 전까지 천천히 시계를 보지 않고 유유자적할 수 있는 하루였다.


물론 해가지는 걸 보고 열차시간에 늦을까 봐 2시간 미리 버스를 타고

신경주역으로 출발했다.

갈 때 택시기사한테 물어봤더니

버스 타면 역까지 1시간 걸린다고 해서 서둘렀다.

KTX 놓치면 집에 못 갈까 봐 ㅋㅋ (하지만 신경주역까지 40분 걸림)





혼자 여행 가니 불쑥불쑥 외롭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여행을 혼자 하는 것도 만하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KTX 타고

다른 곳 도전해봐야겠다.


물론 가족과 친구와 시간이 맞는다면 같이 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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