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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수 Nov 06. 2021

뭇국을 끓이다 별생각을 다하네... (가을무는 산삼)

가을무는 산삼이라는데 결국에는 아이들 생각으로

아침에 끓인 시원한 뭇국


친정부모님은 서울에 사시는데 태생이 시골분들이라 지금도 시골을 오가면서 농사를 지으신다.

김장철이라 농사지은 못생긴 무를 주셨다.

시중에 파는 예쁜 모양의 무가 아니다.

겉은 긇혔고 모양도 삐뚤빼뚤하다.

그런데 맛은 일품이다. (달짝지근하고 즙이 풍부하다)

어느 음식에 넣어도 무만 쏙 빼먹고 싶은 맛이다.

휴일 아침 냉장고에 변변한 재료가 없어서, 다시팩을 물에 넣고 엄마가 주신 무를 왕창 때려 넣었다.

물론 간은 국간장에 새우젓 살짝..

그런데 맛이 별로 없다. 어~~ 아니네. 계속 끓였더니, 무는 말랑말랑 익었고 국물 맛은 점점 맛이 있어진다.

시원하고 감칠맛이 난다.

역시!! 요리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돼. 재료가 적당히 익어서 어우러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괜히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엉뚱한 것들을 집어넣다 보면 맛이 산으로 가서 결국에는 1층에 있는 음식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 십상이다.





그러다 며칠 전에 만났던 지인이 생각났다.

요즘 그녀는 사춘기 딸을 키우는 애로점을 몇 시간 동안 나에게 멈추지 않고 얘기했다.

그 긴 이야기의 요점은 이랬다.

아이가 너무 게임을 좋아해서 엄마 몰래 너무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약속을 어기고 자꾸 게임을 하는 딸을 혼내게 되고, 아이는 잘못을 거짓말로 덮다 보니

자꾸만 아이의 거짓말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핸드폰 공기계를 어디서 구했는지, 가지고 와서 몰래 하고 있었다고 한다.

엄마한테 딱 걸렸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거짓말로 무마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 아빠는 방관자이고 속상한 아이 엄마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그건 엄마인 너의 잘못이다. ""벌써 부모를 속이고 그런 행동을 하는 거 보면, 막장까지 갔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속상했겠는가? 사춘기 딸의 방황도 힘든데, 사실 더 힘든 건 지지받지 못하는 마음이 더 힘들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아이가 정말 금방 큰일 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난 힘든 일을 나가서 잘 얘기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래서 그렇게 오랫동안 그 지인을 만났지만, 우리 아이의 사춘기를 얘기한 적이 없다.

사실 우리 아들도 게임을 사춘기 때 많이 좋아했다.

나도 첫 아이고 모든 것이 처음이라 아이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일희일비했던 것 같다.

사실 핸드폰 공기계로 부모를 속이고 게임을 하는 건 우리 아이 때도 종종 있는 일이었다.

사춘기 아들 엄마들 학교 모임을 가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그맘때 아이들이 한두 번씩은 그런 일이 있다고 했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인데 말이다. 


그런 엄마 속이는 스킬은 아이들끼리 열심히 공유하나 보다.

내 아들이 나쁜 친구를 만나서 그랬다고 부모들은 생각한다는데, 그건 모르는 일이다.

우리 아이가 친구한테 가르쳐 줬을지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다시 그 지인의 얘기로 돌아와서 얘기하면, 하도 자기 힘든 이야기만 몇 시간을 얘기하길래, 우리 아이 사춘기 때 얘기를 해줬다. (물론 잘 듣지는 않는 것 같다.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으니까..)

물론 우리 아들은 그 시기를 지나서 아주 잘 자라줬다. 우리 아이는 엄마의 자부심이다^^


"사춘기 아이들 대부분 그 정도는 한다. (물론 아닌 아이도 있지만) 그렇게 큰일이 아니다. 하지만 엄마를 속인 것에 대해서 결코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하지만 절대 감정이 극에 달해서 아이하고 얘기하지 말아라. 그러면 나중에 후회한다. 잘못을 꾸짖어라. 아이의 인격을 무시하지 말고!

내일 하늘이 무너질 것 같지만, 하늘은 너의 생각보다 튼튼하다. 그리고 지금 혼내는 건 너의 행동이 잘못돼서 혼내는 것이지, 네가 미워서 혼내는 게 아니다. 잘못을 들켰을 때, 그때 인정을 하고 다시 안 하면 된다.

그걸 거짓말로 속이려고 하면, 점점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한다. 엄마는 마지막까지 너의 방패막이다. 너와 나의 신뢰를 흔드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면 방패막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면 너와 나의 하늘이 그때 무너지는 것이다."


물론 이건 나의 경험에서 나오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다.

그렇게 얘기하고 항상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고 믿고 있는지 지켜봐 주고 지지해주니까, 아이는 신기하게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더라. 


처음 또 다른 핸드폰 공기계로 게임하는 아이를 봤을 때, 나도 아이를 끌어안고 감정을 주체를 못 하고 울었다.

그전까지 아이가 엄마한테 거짓말로 속인 적이 없었으니까, 그 충격은 심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까, 그냥 그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 하든지 무마해보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지, 아이가 크게 나쁜 아이가 돼서 그런 건 아니다.

잘못한 것을 들켰을 때 그때 거짓말하지 말고 진실을 얘기하면, 거기서부터 해결의 실마리가 생기기 나름이니까 절대 거짓말은 하지 말자고 아들과 약속을 했다.


성인이 된 아들이 얘기하기를 자기가 딴짓하고 싶을 때마다 엄마의 우는 모습이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고 헸다. 그렇다고 아이 앞에서 맨날 울면 그런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항상 따뜻하고 논리적이고 차분한 엄마였는데 그런 모습을 보였더니, 어린 마음에 깜짝 놀랐었나 보다.  


나는 아들이 잘 될 거라고, 바른 아이로 자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들은 부모가 말하는 데로, 믿는 데로 성장한다고 한다. 이 말 또한 난 믿는다.


아이를 멋진 아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진득이 한 자리에서 믿고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시 생각해본다.

뭇국을 끓이다가 별별 생각이 꼬리를 물고 생각난 아침이었다.


아들 잘 있지? 오늘따라 군대가 있는 아들이 더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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