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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수 Oct 25. 2021

힘들게 여행을 하는 이유

시간을 공유하자!

결혼하고 나서 제일 놀랐던 건 남편이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본인의 어머니, 아버지와도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남편 식구들이 말 습관이 부드러운 것도 아니고 논리 정연한 것도 아니다.

사실 어떨 때는 너무 가감 없이 말을 하는 바람에 놀랄 때도 있었다.

그 정도의 말을 주고받고 이내 웃으면서 얘기하는 걸 보면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여러 번 있었다.


반면에 우리 친정식구들은 형제, 자매끼리는 대화를 그런대로 많이 하는 편이지만, 부모님하고 자신의 속마음을 주고받거나 한 적이 없다.

그냥 부모님과 있을 때면 절로 조용해지곤 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매년 여름휴가 때 부모님과 같이 여행을 다닌다는 것이었다.

사실 난 부모님과 여행을 간 경험이 전무하다.

기껏 가봐야 시골 할머니 댁에 명절에 가는 게 전부였다.


그렇다고 우리 시댁이 잘 사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직장생활을 하는 아버님은 성격 자체가 그렇게 아등바등하고 사시는 분은 아니다.

물론 사는 형편이 우리 아버지와 완전 다른 건 인정한다.

우리 시아버님은 자신의 식구들만 건사하시고 사셨기 때문에 그렇게 사셨을 수도 있다.


반면 우리 친정아버지는 줄줄이 동생에 돈 한 푼 없는 시골 빈농의 자식이었다.

그리고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결혼했더니, 시아버님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갓난쟁이 시동생에 빚밖에 없는 집이었다고 한다.

우리 막내 친삼촌은 큰언니와 2살 차이밖에 안 난다.

그러니 서울에 홀로 상경하여 그 많은 시골 식구들에게 생활비를 보내며, 자신의 처 자식까지 건사해야만 했던 친정아버지의 퍽퍽한 삶이 어렴풋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 삶이 얼마나 고단하셨을까?

시작이 이러하였으니 어디 여행이라는 걸 꿈이라도 꾸셨겠는가?


그렇게 어렵게 서울 생활을 하시다가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게 되신 게 내가 중학교 무렵이었던 것 같다. 이제 한 두 명씩 삼촌들이 돈벌이를 하기 시작하니, 점점 시골에 들어가는 돈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난 결혼하고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왜? 내가 결혼해서 부모님 집을 나올 때까지 난 항상 우리 집이 정말 어려운 줄 알았다."

항상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저축도 하시고, 집도 사시고, 보험도 드시고 하셨던걸 알았다.

우리 자매들은 대학을 모두 자신의 힘으로 다녔다.

나는 대학 다닐 때 알바를 몇 개씩 하면서 다녔다.

그게 당연할 줄 알았다. '왜? 우리 집은 돈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건데 우린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 자매들은 누구보다 독립적이다.

"나는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고, 나 혼자 일어나야 한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항상 생각하고 살아왔으니까!'

이 부분은 부모님께 감사하는 부분이다. 누구보다 우리 자매 모두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사니까 말이다.

성인이 됐어도 우리는 친정식구들끼리 여행을 간다는 건 상상도 못 해봤다.


분명히 나중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친정식구들과 여행을 다닌다는 건 내 상상 속에서나 언니들의 상상 속에서도 없는 일이었다.






다시 우리 남편 식구들 얘기를 해보면 그렇게 매년 식구들과 여행을 다니고 살아서 그런지, 결혼을 하고 식구들과 여행 다니는걸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결혼하고 나서 그 많은 시집식구들과 캠핑을 간 적도 있다.

(결혼 이후에 여행은 시집식구들의 마인드가 어떠냐에 따라 며느리의 중노동 현장이 될 수 있으니,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지금도 우리 남편은 자신의 부모님과 대화하는 걸 즐겨한다.

그리고 연례행사처럼 누구 하나도 빠지지 않고, 

 여렷형제들이 여름이면 모두 다 자신의 가족과 여행을 간다.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거의 매년 여행을 다닌다.

아이들이 크면서 힘들 때도 있지만,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한참 많이 다닐 때는 캠핑에 빠져있기도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사실 여행이라는 것이 불편할 때도 많았다.

"이건 집 나와서 돈 쓰면서 자진해서 고생하는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종종 있었다.

울고, 떼쓰고, 우리는 좋은데 싫다고 하고, 우리는 싫은데 다른 데 가자고 하고....

그리고 "좁은 차 안에서는 왜 이리 싸우는지?"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던 위기의 상황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이 모두 여행을 좋아한다.

힘들어서 방황했던 사춘기 시절에도 여행사진을 보면 즐거웠던 시간을 추억하며 기뻐했다.

코로나로 계속 여행을 못 가다가, 어제 아이들과 강원도에 여행을 갔다.

여전히 차 안에서 아이들은 투닥투닥한다.


강원도 고성 한적한 바닷가(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 딸 그림자가 나왔네~^^)


차도 커지고 몸도 커졌지만, 막히는 길은 여전하고, 차 안에서의 지루함은 여전하다.

갔다 오면 한밤중이고, 다음날 아침에 밀려오는 피곤으로 지각을 할뻔한 적도 있다.

하지만 갔다 온 사진을 보면서 서로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다.


"우리 몇 년 전에 여기 갔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바뀌었네? 저렇게 바뀌었네?" 하면서 즐거웠던 시간을 공유한다. 그리고 부모와의 여행이라는 매개체로 시간을 공유하고 추억을 나누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당연히 계속 붙어있어서 싸우기도 하지만, 이제는 서로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을 알고 지나갈 줄도 안다.

계속 자기감정대로 가다가는 여행을 망치기 때문에 서로 자제를 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로 말이다.)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서 집에서 안 하던 대화도 자연스럽게 하기 마련이다.


누구도 두려워한다는 중2 딸아이가 말한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다시 여행 가자고!" 눈을 빛내면서 말이다.

나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 무섭다는 중2병 최고봉이라는 사춘기 아가씨가 다음 주에는 한복을 입고 고궁에 놀러 가자고 한다. 아이가 웃으며 나랑 대화를 하자고 하는 게 나는 너무나 고맙다.


내가 처음에 엄마가 되면서 처음으로 다짐했던 "아이와 대화하는 엄마가 돼자!"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나는 부모와 변변한 대화를 하면서 자라지 않은 것 같아 부모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다른 아이들이 그게 항상 부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먹고 살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 이렇게 생각하면 끝도 없이 부모님께 감사함을 느낀다.


그런데 여행이라는 건 돈이 많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형편이 어려워 거창하게 멀리 가지는 못하더라도, 가까운 공원에라도 가서 아이와 시간을 가지려는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닐까?

그러다 보면 내가 힘들 때 그 추억들을 꺼내보면서 힘듦을 견딜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친정부모님과 같이 한 추억이 거의 없다는 것이 정말 아쉽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부모님과 여행을 같이 간다는 것은 우리 친정식구들한테는 어려운 일이다.


반면 시집식구들과는 여러 번 여행을 다녀왔다. 자녀들이 같이 여행을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성인이 된 이후에 나는 부모님께 여러 번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해봤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그것이 여전히 자연스럽지 못하고 부담스러운 것인가 보다.


내 아이가 커서 나와 여행 가기를 원한다면 "부모들이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열심히 여행을 다니자!"

같이 밥만 먹는 게 식구가 아니라, 시간도 공유하고 추억도 공유할 수 있는 즐거운 가족이 되기를 오늘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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