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에 있는 행복 찾기
공기는 인간이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것이다.
공기가 없으면 숨을 못 쉬어서 죽어버리는 게 인간 아닌가?
그렇게 소중한 공기를 우리는 소중하다고 느끼고 사는가?
결혼하고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긴 사람은 아이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하지만 아이를 간절히 원하지만, 생기지 않아서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그 아이의 소중함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걸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지인을 보고 새삼 깨닫는다.
부모는 어떤가? 옆에 있을 때는 마냥 평생 나의 옆에 부모님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한다. 나는 그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금도 아버지 제사에서 '아버지 보고 싶다'라고 훌쩍거리고 있는 나를 보면, '진작에 아버지 계실 때 잘할걸' 하는 후회를 한다.
자신의 건강은 어떤가? 건강할 때는 그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 그러다 암이라도 덜컥 걸려버리면, 공기와 같이 무심히 지나간 나의 건강한 나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나는 어리석게도 암에 걸려 투병을 하고서야 깨달았다.
소중한 것들은 왜 이마에라도 '소중하다'라고 쓰여있지 않을까?
러닝을 예찬했던 나의 이전글을 봤던 독자들은 알겠지만, 요즘 달리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평일에 겨우 하루, 이틀밖에 달리기를 못한다. 주말에는 최대한 많이 달리려고 한다. 숨이 턱에 차서 헉헉거리고 땀을 줄줄 흘리지만 달리기는 무척 매력이 있는 운동이다. 자연스럽게 살도 빠지고, 달리다 보면 기분까지 좋아진다. 머릿속을 헤집고 나를 괴롭히는 잡념들도 날려버려 준다.
우리 집에는 이제 10살이 된 강아지가 있다. 산책을 열심히 시키고 잘 보살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산책을 시킬 때 나를 질질 끌고 다닐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녀석이다.
나는 이번 주말에도 강아지와 트랙을 열심히 달렸다. 주변에 '공'을 차는 사람이라도 보이면 더 난리가 나서 나를 잡아당기는 녀석이 에너지를 나보다 훨씬 많이 썼나 보다. 어느 순간부터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계속 나를 보다 더 이상 뛰지 않는다. 눈이 점점 초점을 잃어가는가 싶더니 이제 걸음도 점점 느려진다.
깜짝 놀라서 달리기를 멈추고 녀석을 살폈다.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았다. 원래 밖에 나오면 웬만하면 앉지도 않는 녀석인데 이상하다. 안아서 의자에 데리고 가서 앉았다. 그리고 의자에 엎드린 녀석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쉬게 했다. 나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아, 이제 이 녀석도 청춘이 아니지! 노견이구나! 내가 너무 무리하게 운동을 시켰구나...'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달리기는 내가 좋아하는 거지 녀석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마냥 이 녀석이 청춘일 줄 알았나 보다. 공기와 같이 나의 옆에 10년 넘게 있었던 소중한 나의 강아지가 '이제는 같이 있을 시간보다 갈 날이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나는 또 소중한걸 소중한 줄 모르고 살았구나! 내가 외로울 때 나를 제일 먼저 위로해 주던 존재가 이 녀석이었는데...
혹시 너무 익숙해서 소중한 줄 모르고 지낸 나의 소중한 것들아!
오늘도 그들이 있어서 나의 행복한 하루가 이루어졌노라고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행복을 찾아 멀리 떠났다가 집에 있었던 '파랑새'를 발견했던, 틸틸과 미틸처럼 행복을 혹시 멀리에서만 찾고 있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