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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수 Jan 07. 2022

나의 생각은 1930년대 그녀보다 앞서고 있는가?



사춘기인 우리 딸은 어느 날부터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을 무척 좋아한다.

어느 날 다른 일을 하다가 딸이 보고 있는 꼬꼬무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그 회차는 1930년대 여성 나혜석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냥 관심 없이 보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앉아서 딸과 함께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작가이며 근대적 여권론을 펼친 운동가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남편의 인형이 되기를 거부한 신여성이었다.


처음부터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본 내용부터 얘기하자면, 

그 당시에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남편은 일본 외무부 고위관리이다.

 

일본 외교관인 남편과 함께 중국에 가 있는 동안에, 독립운동가들이 국경을 넘어가도록 남편의 외교관 신분을 이용하여 도와줬다고 한다.

그 당시에 남편과 세계여행을 다녀왔으며, 프랑스에서 잠시 미술을 배우는 동안에 다른 남자와 외도를 했다고 한다.

그냥 모든 내용이 그 당시 여성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프랑스에서 바람피웠던 사실이  유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는 바람에 남편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결국 이 일로 빈털터리로 아이들도 뺏기고 집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은 바람났다고 부인을 쫓아냈던 남편은 공공연하게 첩을 두고 있었다고 했다.

조선시대 이후 그 당시까지 남자들이 첩을 두고 생활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이 부당함을 아무리 얘기해도 현실은 여성에게만 돌을 던졌다고 한다.

같이 바람을 피웠던 상대방 남자도 유부남으로 쫓겨난 나혜석과 다르게 잘 먹고 잘살고 있었다.

너무 화가 난 나혜석은 고소를 했다고 한다. 같이 불륜한 남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변화된 것은 없고 나혜석만 바람피웠다는 주홍글씨가 쓰여서 어렵게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부당함을 계속 얘기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물론 결혼한 사람이 상대방이 바람피웠다고 나도 바람피워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둘 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자에게만 정조를 목숨으로 여기게 강요하는 시대였다는 것이다.

결혼한 남자라 하더라도, 남자들은 자신은 다른 여자를 수도 없이 탐하면서 자신의 배우자는 정조를 목숨으로 지켜야 한다는 논리가 당연한 시대였다.


1930년대 여성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누구 하나 목소리 내지 못했던 시대에 이런 여성이 있었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이 분이 쓴 글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자신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면 당연히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에는 주홍글씨가 씌워져서 자신한테 돌을 던질지도 모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성의 부당함을 얘기해야 하고, 그런 부당함을 공론화해서 얘기하는 사람이 있어야 그 당시에 바로 고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다음 세대의 여성의 인생은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1950년대 돼서 첩을 두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켰다고 하니,

누군가 부당하다고 떠들어대고 외쳤던 것들로 인하여, 부당한 세상이 하나 바뀐 것이다.


수도 없는 헛발질이 있어야지, 스트라이커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시도하지 않고 무언가를 이룰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쯤 되니 2000년대를 살고 있는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도 모르게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불편하지는 않나?

시댁에 가서도 "일 년에  몇 번 있는 일이니까, 부당한 일이 있어도, 오늘은 참자!"라고

나도 모르게 스스로 자신을 억제하고 양보하고 자재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나도 그러면 안 되겠다.

오늘의 나의 행동과 말이 나중에 우리 딸이 살 세상을 만든다는 걸 명심해야겠다.

지금의 작은 외침들이 모여서 서서히 부당함을 변화시키고, 마침내 우리 딸이 사는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1930년대 나혜석으로 돌아가 보면,

화냥년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먹고살려고 차린 미술학원 같은 곳도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화가에게 치명적인 파킨슨병에 결려서 마비로 인하여 그림도 그릴 수 없게 돼서 비참함 말년을 맞았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까지 시댁의 반대로 아이들을 볼 수없었다고 하니, 그 고통이 어땠겠는가?

"여성에게 정조를 지키기를 요구할 거면, 남자부터 정조를 지켜라!"라고 그 시대에 자신의 목소리를 얘기할 수 있었던 용기!!!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화냥년"이라는 말도 얼마나 아픈 말인가?

병자호란을 겪으며 철저히 유린된 국토에서 전쟁의 포로로 수만 명의 여성이 청나라도 끌려갔다고 한다.

그런데 포로로 끌려간 여성들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겨우 목숨을 건져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들한테 "환향"(고향을 다시 돌아옴)했다고 환영해준 게 아니라,

오랑캐한테 정조를 잃었다고 비난하고 쫒아내버렸다고 한다.


"환향한 여자"라는 말이 "화냥년"이라는 말이 돼서 비난하는 말이 되었으니, 얼마나 이 말 자체가 여성을 

희생양으로 만든 말인가? 결국 그 여성들을 지키지 못하고 고향에 남은 남자들한테 이 말을 듣고 쫓겨났으니, 얼마나 분하고 억울했을까?


지금 20대 남성들은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많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남성들의 시각으로는 여성이 대등하다 못해 이제는 남성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페미니즘"이란 말은 같이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것이지, 여성이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낸 지 얼마나 되었는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내 또래의 여성들은 지금도 대등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명절에 여성의 노동은 여전히 당연한 집이 많다.

아이의 양육은 결국 여성이 책임져야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시라도 아이가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엄마의 잘못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같이 맞벌이를 하더라도 여전히 집안일은 여성이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고 남자는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이건 세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지금 막 결혼하는 젊은 세대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 같이 손잡고 같이 걸어가자!

누군가에게 짐을 다 들라고 하지 말고, 자신의 부모에 대한 효도는 본인이 하고, 갑자기 장가가서 안 하던 

효도를 아내한테 하라고 하지 말고, 자신의 꿈이 중요하듯 배우자도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


부부는 같은 곳을 향해서 나란히 같이 걸어가는 존재라고 했다.


2022년 내 목소리 힘껏 내보기로 하자! 앞으로 나의 딸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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