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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수 Jan 27. 2023

세상에 '호상'은 없다.

삶은 항상 아쉽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호상(好喪)   

     명사: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상사(喪事)   




친정아버지가 자식들을 명절에 모두 모이라고 했다.

원래 친정 부모님은 어느 순간부터 시집간 딸과 사위에게 오라 가라 대놓고 말하지 않으셨다.

시부모님은 날이 갈수록 당당하게 요구하는데, 친정 부모님은 어느 순간부터 사위의 눈치를 보시기 시작했다.


그런 친정 부모님이 이번 명절에 자식들을 모두 모이라고 했다. 그리곤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생이 이제 2년 남았다고!'

순간 '이게 무슨 말인가?'싶어서 한참 멍하게 있었다.

몇 년 전에 친정아버지는 '흑색종'이라는 암선고를 받으셨다.

처음부터 의사는 '흑색종'이라는 암은 예후가 안 좋은 암이라고 했다.

 

그것도 머리, 두피에 암이 생겼던 아버지는 머리카락도 다 깎고 머리에 있는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셨다. 어찌나 상처가 깊고 큰지 허벅지의 살을 도려내서 상처를 덮었다.  수술하고 암치료하고 항암치료하는 동안 자식 키우며 맞벌이하는 나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저 가끔 시간 날 때 병실을 들르고 부족한 병원비를 보탰을 뿐이었다.  워낙 당신 아픈걸 티를 안 내시는 아버지는 항상 '괜찮다'라고만 하셨다.



그렇게 이겨내고 몇 년이 지나자 나는 모든 것이 다 지나간 줄 알았다.

그 와중에 자식들 먹이겠다고 서울에서 시골까지 다니시면서 농사를 지으셨다.

주말농장처럼 소일거리로 하신 다는 농사는 어느새 여느 농부처럼 양이 늘어나 있었다.


'이제 그만하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올해만 한다는 농사는 벌써 몇 년째 이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괜찮으신 줄만 알았다......

그러던 한 달 전 돌연 응급실에 실려가셨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독감이 심한 줄도 모르고 그냥 계시다가 고열에 쓰러지신 것이다.

수술받았던 병원으로 가셨던지라 각종 검사가 이어지셨나 보다.

워낙 암이 심했던 분이라 이것저것 쓰러진 다른 이유가 있나 검사를 한 것이다.

그날 어쨌든 열이 바로 내렸고 집으로 퇴원을 하셨다.

다 그렇게 무사히 지나가는 줄 알았다.




며칠 뒤 엄마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고열로 병원에 가셨을 때 했던 검사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곧바로 조직검사를 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암이 재발했다!'

조직검사 결과는 전해 들은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렇게 계속 건강하게 지내실 것 같았던 아버지의 전신에 암이 전이됐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길어야 남아있는 생이 2년밖에 없다!'라고 의사가 말했다고 한다.




불과 2년 남짓이면 세상에 아버지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진다. 나는 몰랐다. 계속 옆에 있을 것 같은 부모님의 생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노인의 죽음을 그냥 '호상'아라고 얘기하는 '예의 없음'을 몰랐다. 몇 살에 죽었든 그 죽음은 과연 여한이 없이 즐거운 초상일까? 내가 몇 살에 죽든 나의 죽음은 애처롭고 아쉽지 않을까? 그런데 노인이라고 다를까?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미련에,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삶에 애처로워서 슬프지 않을 수 있을까?


아버지의 생이 얼마 안 남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려봤다.

'아버지', '아빠', '친정아버지', '친정아빠', '준수 할아버지'....

부르는 이름은 여럿이지만 아버지와의 변변한 추억 하나 없다.


지금 우리 아이들과 그렇게 자주 다니는 '여행'도 나는 아버지와 가본 적이 없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먹고살기가 어려워서, 우리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어색해서 부모님과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도 잘 모른다. 물론 아버지는 더 모르실 테지만 말이다. 

나는 그게 더 슬프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거실에 앉아 계시던 뒷모습밖에 없을 것 같아 슬프다.




아버지는 우리가 어렸을 때는 무뚝뚝하시고 너무나 엄격하신 분이었다.

아버지와 변변한 대화라고 주고받은 것은 결혼하고 나서였던 것 같다. 그렇게 어려웠던 아버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가 어렵지 않아 졌다. 그리고 점점 짠해졌다. 손주들 보고 흐뭇해하시는 아버지는 그냥 나의 아이들의 할아버지로 보였나 보다. 그렇게 아버지는 어느 순간 편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내 옆에 영원이 계실 줄 알았다. 언제까지고!


시간은 지나가고,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

왜 이런 불변의 진리를 이제야 깨닫는 것인가?

왜 이리 인간은, 아니 나는 어리석은 것인가? 실지로 닥쳐야지만 뼈저리게 느끼느냐 말이다.


아버지의 시간이 얼마가 남았든 아프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아버지의 뒷모습만이 아니라, 아버지를 떠올리면 환하게 우리를 보고 웃는 모습을 떠 울릴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추억을 많이 쌓으려고 한다.




'아버지, 내일은 주말이니까, 우리 요즘 힙하다는 카페에 놀러 갔다가, 아빠 좋아하는 매운 낙지 먹으러 가요!'

'쑥스럽고 어색해도 저한테 시간 좀 내주세요!'

남아있는 나의 시간을 위해서 말이에요.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쓰는 동안 내내 울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시간 소중히 잘 써서 아버지를 기억할 때 울지 않고 웃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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