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인 만남

리스본행 야간열차

by 이광

파스칼 메르시어가 쓴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의 삶을 바꾸어놓은 그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똑같이 시작됐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레고리우스는 에스파냐 책방에서 우연히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발견한다. 책 속에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단 한 문장을 읽고 그 책을 손에 넣게 된다. 그레고리우스는 인생을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책을 쓴 프라두에 대한 호기심으로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지체 없이 리스본으로 떠나게 된다. 교사인 그레고리우스가 리스본으로 가기 전에 교장에게 남긴 편지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한 부분이 쓰여있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그레고리우스가 책 한 권에 이끌려 하던 일을 그대로 남겨두고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인 것 같지만 결코 우연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 꾸준히 축적되어 온 동인(動因)이 있었다는 것이다. 화산이 폭발하기까지는 그동안 땅속에서 끊임없이 힘을 응축해 왔으며, 그 응축된 힘이 만기가 되었을 때, 비로소 화산은 지표면을 뚫고 폭발하는 것이다. 그레고리우스도 그동안 전혀 문제없는 것처럼 살아온 일상에서 자신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이제는 좀 다르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내부의 심연에서 응축되고 있었던 것이다. 응축된 욕구가 포르투갈어 한 마디에 의해 촉발되어 자신의 영혼을 떨리게 한 원인을 찾아 모든 걸 그대로 두고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마찬가지였는데, 우연인 듯 우연 아닌 우연 같은 만남이었다. 오래전에 성당 간행물의 영화 소개 코너에서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알게 되었고 집에 오자마자 OTT 서비스를 통해 시청하게 되었다. 나도 야간열차를 타고 떠나서 본래의 나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영화였다. 그로부터 한참 후에 도서관 서고에서 손가락으로 훑어가며 책을 찾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리스본행 야간열차>라고 쓰인 책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책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헌책방에서 프라두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를 발견한 것처럼 나도 그랬다. 나는 그때부터 그레고리우스였다. 운명적인 만남이라고까지 생각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그레고리우스가 되어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새 책을 구입해서 밑줄 긋고 그 순간의 느낌을 기록하며 또 읽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내가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발견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 내 안에서 계속해서 응축되어왔던 욕구가 때마침 만기가 되었고 그 순간 나는 그 책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날실과 씨실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불꽃이 일어났고 나는 그것을 운명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불면증은 오빠에게 저주였다고 생각해요. 이런 괴로움, 한없이 숨차게 계속되던 단어를 향한 갈망이 아니었다면 오빠의 뇌는 훨씬 오랫동안 버텼을 거예요.”


“글을 쓰지 않으면 사람은 결코 깨어 있다고 할 수 없어.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해. 자기가 어떤 사람이 아닌지는 더욱 알지 못하고.”

<리스본행 야간열차 /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중에서


책에는 언어의 연금술사 프라두가 불면증 때문에 글을 썼는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나온다. 나 역시 심한 불면증을 앓았던 경험이 있다. 불면증으로 인해 시를 쓰게 되었다. 처음 쓴 시도 ‘불면증’이었다. 나에게 불면의 시간들은 고통스러운 시간이면서도 동시에 시를 쓸 수 있었기에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때 불면증이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면 시를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시인 등단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의 연속이다. 그래서 한 번 살아서는 인생을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끝까지 가보지 않고는 결코 단언할 수 없는 것 또한 우리의 인생일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가 우리 안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하며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영혼의 떨림을 따라 사는 것이 후회를 줄이는 길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한 번의 생으로 우리의 삶을 정의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한 번의 생으로 우리의 삶을 정의할 수는 없다.

어슴푸레한 겉만 보다가 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한 번의 생으로 우리의 삶을 정의한다는 것은

음식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맛을 짐작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이 이어져 순환한다는 것과

그에 따라 자연의 모습이 조화롭고 아름답게 변한다는 것

그리고 자연 속에 사는 모든 생명은 유한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의할 수 없는 삶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아가고 있다.

삶을 어슴푸레 짐작할 수밖에 없을지라도 삶은 놀랍도록 아름답다.

‘삶은 이런 것이야’라고 정의하는 것보다

눈앞에 펼쳐진 놀랍고도 아름다운 삶의 빛나는 조각들을

놓치지 않고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리라.

눈앞에 펼쳐진 놀랍고도 아름다운 삶의 빛나는 조각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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