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고 할 때 자꾸 무슨 이야기를 쓸까 고민하지 말고, 스스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봅시다."
- 파울로 코엘료의 에세이 <내가 빛나는 순간>-
글을 쓰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여전히 힘들다. 두세 발짝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이내 뒷걸음질 치기 일쑤다. 뒷걸음질 치며 써 내려간 글에는 진솔함이 한참 모자라다는 생각에 가슴이 따끔거린다. 모두 지워버렸다. 처음부터 다시 쓰기로 한다. 깜빡거리는 커서를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 눈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그러면서 지금 나는 어떤 글을 쓰려고 한는지 물었다. 나는 오늘 어떤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일까? 나는 오늘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일까? 질문을 던진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최근에 걸으면서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어느 누군가 말하길 걸을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오롯이 걷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했지만 때로는 하나의 생각을 자라게 하기에 걷기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이 세상에 나를 태어나게 하신 분. 내 이름을 지어주신 분. 내 기억 속의 아버지의 젊은 날은 노년의 그것과는 달리 근사했다. 아버지는 훤칠한 키에 깔끔한 외모, 당당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 줄 아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5살 무렵의 나를 안고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을 보면 늘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형들은 '석'자 돌림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이름에서 돌림자를 과감히 빼버리셨다. 그래서 나는 동네에서 처음으로 외자 이름을 갖게 되었다. 광(光). 빛 광이다. 내가 언젠가 내 이름에 대해 물었을 때 아버지는 세상에 빛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이름을 지었다고 하셨다. 세상에 빛이 되는 사람.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세상에 빛이 되는 삶을 산다는 건 아주 멋지고 근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한참 지난 오늘 다시 아버지께 묻고 싶다. 이렇게 사는 내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세상에 빛이 되기에는 한참 모자라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거창하게 세상이 아니더라도 내 주위에서 내가 만나는 단 한 사람에게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본다. 그것이 내 삶을 의미 있는 삶으로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갈수록 꿈이 점점 소박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나는 먼 곳을 꿈꿨던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내가 서 있는 곳을 꿈꾸면서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 내 이름대로 살기로 하자. 아버지가 내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신 대로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빛이 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