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의 뱃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고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선율 위로 내 마음을 실은 배를 띄웠다. 그저 바람과 물결이 이끄는 대로 떠가는 배를 타고 그렇게 한참을 흘러가다가 마음이 차분해진 상태로 사르르 눈을 떴다.
지난주까지 신경 써오던 일이 있었다. 3개월 동안 그날을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참 많았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는 저녁이면 전력 질주를 하며 학교 운동장을 돌았다. 타인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별거 아닌 일일 수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굴레를 벗어버리는 날이었다. 나는 그날 최선을 다해 임할 것이고 훌륭하게 해내고 뿌듯하게 미소 짓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예상대로 나는 그날을 아주 근사하게 마무리 지었고 상상했던 것과 같이 나는 웃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갇혀있던 틀이 한순간에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참으로 맑고 기분 좋은 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이날을 기념하기로 했다. 혼자서라도 축배를 들기로 했다. 드디어 첫 번째 산봉우리에 오른 기분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산을 올라야 하겠지만 그때도 역시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여지없이 웃으며 축배를 들 것이다.
머리가 어지럽다. 며칠 동안 너무 늦게까지 컴퓨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으면서 극도의 피곤을 느끼곤 했었다. 책이라도 읽으려고 책을 폈지만 어지러움은 가시질 않았다. 그대로 책을 덮고 말았다. 뻐근한 뒷목을 손으로 만져보니 왼쪽과는 확연히 달리 오른쪽이 뭉쳐있다. 순간 오래전 아찔했던 기억이 떠올라 연신 손으로 마사지하면서 목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생각을 비웠다. 오늘은 책도 펴지 않고 컴퓨터도 켜지 않을 생각이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다행히 뒷목의 뻐근함이 조금은 풀린 느낌이다. 남아있던 마지막 리포트도 마무리 짓고 제출했다. 그래서 오늘은 더 한가롭다. 도서관 문이 열리자마자 읽었던 책을 반납하고 읽고 싶었던 책 두 권과 그 책들을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책 한 권, 이렇게 세 권을 빌려왔다. 먼저 읽고 있는 책은 이전에 시(詩)로도 시론(詩論)으로도 접했던 작가의 산문집이다. 작가의 글 중에서 자신의 글의 8할은 슬픔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는 문장이 있었다. 그만큼 작가의 삶 또한 만만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생각났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으로 불행하다." 그래서 겉모습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늘 쾌활하고 장난기 있어 조금은 가벼워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결코 그 사람의 인생이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코를 막으며 닭똥 냄새가 진동하는 길을 걷다가도 어디선가 바람결에 실려오는 한줄기 매화향에 행복해하며 이 길로 오길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책에서 발견한 문장들을 수첩에 옮겨 쓰기 위해 한동안 쓰지 않았던 색연필을 집어 들고 칼로 길쭉하게 깎았다. 작가의 글에 화사한 색을 입히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마치 곱게 화장을 하듯. 문장을 색연필로 쓸 때는 손가락에서 힘을 빼고 마치 그림 그리듯이 쓴다.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가만의 색채가 담긴 문장처럼 내가 쓴 문장에도 나만의 색이 배어나길 바라면서 그린다. 자신의 아픔을, 그림자를 드러내는 글 앞에서는 적어도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문장들을 옮겨 쓰고 또 쓰다가 짧아진 연필을 또 깎았다. 언젠가는 연필깎이를 사서 연필 한 다스를 깎으면서 즐거워했던 적이 있다. 한없이 유치해 보이는 일이지만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는 일은 나름 재미를 줬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짝꿍이 연필깎이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로봇이 그려진 연필깎이였다. 연필을 칼로만 깎던 우리에게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거기다 로봇까지 그려져 있었기에 더욱 아이들의 관심을 촉발시켰다. 순간 아이들이 한 번씩 깎아보려고 자신의 연필을 들고 몰려들었다. 짝꿍은 연필깎이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가져왔겠지만 혹시 아이들이 고장이라도 낼까 봐 조마조마해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연신 멋있고 근사하다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오직 연필깎이에만 시선이 몰려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하나둘씩 연필깎이를 들고 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연필깎이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다.
성인이 되어서 연필의 촉감이 그리워져 다시 연필을 잡았다. 그때 연필깎이도 하나 샀다. 연필을 칼로 깎는 느낌이 좋긴 하지만 연필깎이의 손잡이를 돌리며 깔끔하게 연필을 깎는 것도 나름 즐겁다. 하지만 점차 연필을 손에 잡을 일이 없어졌다. 어느 유명한 소설가는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우며 소설을 쓴다고 하던데 깎아놓은 연필들이 있고 묶음으로 산 하얀 지우개가 있지만 가끔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쓰지 않아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던 수첩을 사용하기로 했다. 수첩에 뭔가를 쓰면서 만년필도 꺼내서 써보고 붓펜으로도 써보기도 하고 연필로도 쓴다. 그런데 지우개는 쓸 일이 없을 것 같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얼굴이 화끈거려 차라리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한 때는 그 순간들을 몹시도 지우고 싶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화끈거렸던 기억마저도 소중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쓸모를 잃은 지우개는 수첩 속의 글씨든 추억 속의 장면이든 지울 일이 없어 그저 지우개라는 이름으로 서랍 안에서 고요한 침묵에 잠겨있다.
책에서 소개된 시인의 시를 찾아서 연필로 써 내려갔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놀랍게도 이 시인은 어느 무용가를 사랑하다가 좌절되자 자살하려고 나무에 목을 매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주위 사람에게 발견되어 그의 자살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사랑을 얻지 못한 채로는 도저히 숨 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차라리 죽기로 마음먹고 목을 맸을 정도였다면 그 시인의 사랑이 얼마나 절실하고 뜨거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서 로테를 향한 젊은 베르테르의 사랑을 떠올려보았다. 살면서 한 번쯤 목숨을 버릴 만큼 뜨거운 사랑을 해봤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 시를 연필로 쓰고 또 쓰다 보니 시처럼 내 마음 어딘가에 한 편의 끝없는 강물이 흐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