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형 그리기

by 이광

저녁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현관을 나와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차로 갈 것인지 아니면 걸어서 갈 것인지 생각했다. 성당까지는 차로 가면 정확히 5분이 걸리고 걸어서 가면 20분이 걸린다. 미사 시간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고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하기도 해서 어둠이 아직 설익은 초저녁 공기를 맡으며 걷기로 했다.


아파트 1층에 이르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서 어느 길로 걸어갈 것인지 생각했다. 아파트 정문에서 이어지는 길로 가자면 처음 50미터를 제외하고는 성당까지 내내 오르막길이라 빨리 걷지 못하고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또 아파트 후문으로 이어진 길로 가자면 길이 성당까지 평평한 길이라 빠른 걸음으로 걸을 수 있지만, 그 대신 한참을 둘러 가는 길이다. 그러니까 집에서 성당까지 가는 길을 선으로 그어 보면 삼각형이 나온다. 경사진 직선 길과 두 면을 거쳐서 걸어야 하는 평탄한 길. 걸을 때 마주하는 사소한 것들에게 마음을 기울이기에는 평탄한 길이 좋다. 경사진 길로 숨을 헉헉대며 걸을 때면 눈에 들어오더라도 들숨과 날숨을 고르느라 주변의 경치라든가 사물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래서 대개는 삼각형의 두 면을 걸쳐가는 길을 선택하곤 한다. 하지만 가는 길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할 때는 아파트 정문에서 시작하는 경사진 직선코스로 간다. 그것은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이 정문 쪽 관리실 가까이에 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동 건물에서 관리실까지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올라와서 아파트 후문 쪽으로 가는 것보다 그대로 정문으로 나가는 편이 수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파트 건물을 빙 돌아서 후문으로 빠져나와 곧장 이어지는 다른 아파트 앞마당을 통과해서 차도로 나왔다. 이곳부터 횡단보도 4개를 왼쪽에 두고 걷는다. 100미터도 안 되는 구간에 횡단보도가 연달아 4개씩이나 있는 것은 도로 건너편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그곳이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횡단보도 수가 적절하다는 생각보다는 과하다는 생각이 그곳을 지날 때마다 든다. 네 번째 횡단보도 옆에는 아주 친숙한 목욕탕이 있는데 한때 지인이 운영하던 목욕탕이라 3층에 있는 집에 자주 초대받곤 했었다. 지인은 멀리 이사 갔고 그 뒤로는 그곳에 갈 일은 없지만,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지인의 가족들이 생각난다. 목욕탕은 예전만큼 잘되지는 않는 것 같다. 더군다나 코로나19로 인해 목욕탕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는 줄었을 것이 자명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목욕탕만큼은 꼭 일주일에 한 번씩 가야 한다는 우리 큰누나 같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목욕탕 가는 횟수를 줄이던지 아예 가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목욕탕 바로 옆에는 카페가 있는데 이 시간에 그곳을 지나면 원두 볶는, 일명 로스팅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누군가에 따르면 카페 주인이 커피에 대한 애정이 아주 대단하고 커피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을 지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손님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인 것 같다. 내가 지난날 경험한 바가 있어서인지 그런 광경을 보면 남 일 같지 않아서 임대료는 제대로 낼 수 있는지 염려하는 오지랖이 생기기도 한다. 연통으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검고 탄 냄새가 난다. 나는 커피 로스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서 원래 탄 냄새가 나는 것이 정상인지는 모르지만, 가슴이 타는 냄새만은 아니길 바라며 그곳을 지나쳤다.


20미터쯤 더 걸으면 버스 정류소가 있는데 이 정류소에서 버스에 타는 사람은 거의 없고 내리는 사람만 있다. 이전 정류소와 다음 정류소가 그리 먼 거리가 아니라서 상가들이 있는 이전과 다음 정류소에서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편이라 다소 황량한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버스를 타지 않는다. 버스정류장에는 니스를 잘 머금고 있는 나무 벤치가 놓여 있어서 버스를 타지는 않아도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잠깐 손에 든 짐을 내려놓거나 숨을 돌리며 잠시 앉았다 가기엔 안성맞춤이다.


50미터쯤 더 걸어가면 중학교가 있는데 교문 입구에 겨울이 시작될 무렵 붕어빵을 파는 임시 천막이 생겼다. 학생들이 정상 등교를 하는 날이면 붕어빵을 사려고 줄을 서는데 온라인 수업을 하는 통에 붕어빵을 파는 아주머니도 이번 겨울에는 학생들을 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가끔 오는 길에 세 개에 천 원하는 붕어빵을 이천 원어치 사 들고 오는데 안타까웠던 것은 밤에는 식어버린 붕어빵을 판다는 것이다. 사 가는 사람이 있으면 붕어빵을 계속 굽겠지만 해가 지면 그 길로 지나가는 사람들도 뜸해서 구워놓은 붕어빵을 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붕어빵의 보온을 위해 유리관 안에 넣어두었지만 차가운 겨울인지라 금방 식어버린 것이다.


거기에서 100미터쯤 걸어간 후 우회전하면 이제 성당까지는 반듯한 일직선 길이다. 오른쪽에 학교 담벼락을 두고 걷는 이 구간은 가로등은 있어도 다소 어둡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그래도 다행히 띄엄띄엄 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차와 배달 오토바이가 끊이지 않고 오고 가기 때문에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학교 담벼락이 끝나면 골목길로 접어든다. 골목길을 가다 보면 한가운데에 빈집이 몇 군데 보인다. 이곳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사람이 떠나고 빈집만 남았는데 언젠가 그곳을 지날 때 문득 그 집에서 생겨난 추억의 행방이 궁금해져서 시를 지었다.


빈집


땅거미가 내리면

집집마다 하나둘씩 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와

평온한 저녁을 보낸다


하지만 어둠이 자욱하게 깔려도

불을 밝히지 않는 집이 있다

날이 저물어도 집에 돌아올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골목 안쪽에 자리한 아담한 슬레이트집에는

불을 밝히러 더 이상 사람이 오지 않는다

사람은 어디 가고 골목 가로등만 집을 지키는가


사람의 추억과 시간이 배어 있는 집은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채로

쓸쓸함과 공허만이 빈집을 채운다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허물어져 빈터가 될 것이다

그러면 집에서 생겨난 수많은 기쁨과 슬픔의 순간들은

어디로 가서 머무는가


사람도 집처럼

언젠가 빈집이 되리라

사람도 집처럼

언젠가 빈터가 되리라

그러면 사람에서 생겨난 수많은 기쁨과 슬픔의 추억들은

어디로 가서 머무는가



골목길을 벗어나면 저 멀리에 성당 종탑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잠깐잠깐씩 앞을 보면서 오른쪽에 시선을 두고 걷는다. 오른쪽으로 밤바다가 내려다 보이기 때문이다. 바다 위로 달빛이 비치면 바다가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보여 어렸을 때처럼 그 위에서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고 저 멀리 보이는 섬을 돌아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밤바다는 낮에 보는 것보다 훨씬 풍요로움을 준다. 낮에 바다를 바라보면 눈이 부셔서 눈에 보이는 만큼만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밤에는 달빛과 명멸하는 조그마한 빛들이 전혀 눈 부시지 않아 상상이 나래를 펴고 수평선을 한정 없이 넘나들곤 한다.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밤바다를 촉촉한 눈으로 넋을 잃고 바라보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미사를 마친 후에 집으로 돌아갈 때는 직선코스로 걷기로 했다. 가는 길이 계속 내리막길이라 올라올 때와는 달리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위에 마음을 기울이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브랜드의 치킨집, 피자가게, 만두가게, 도넛 가게를 지나쳐야 하기 때문에 자칫 야식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또 찾는 물건은 뭐든지 다 있다는 그곳을 지나칠 때면 괜히 들어가 보고 싶어 진다. 층마다 모두 둘러보고는 결국 책에 붙이는 인덱스 테이프와 필기구 두어 가지를 손에 들고 건물을 나온다. 필기구를 보면서 흡족한 마음으로 걷다 보면 곧 집에 도착하게 된다. 이로써 두 발로 걸으며 그린 커다란 삼각형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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