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drea Apr 13. 2022

낚시와 돌멩이

라틴어 ‘호모 쾌렌스 Homo quaerens’라는 말은 ‘질문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글을 쓰는 일이 삶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답을 찾으려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호모 쾌렌스’라는 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삶에 던지는 질문의 유형은 사람에 따라 단순한 질문에서부터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던지는 질문의 대상은 마치 화선지에 먹물이 퍼지듯이 ‘나’에서 시작해서 우리, 지역 공동체, 나라, 세계, 우주로 점차 번져나갈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말하기를 글을 쓰는 일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계가 상실한 것에 대해 질문을 던져 스스로 답할 수 있기 위해 천착하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라는 바다에서 글감을 길어 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는 면에서 글을 쓰는 일은 일종의 낚시질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1학년 때 큰 형님을 따라 경치 좋은 저수지로 낚시를 간 적이 있다. 그때는 정적인 것보다는 동적인 것을 즐기던 때라서 인적 없는 저수지에 낚싯대를 던져놓고 잔잔하게 일렁이는 잔물결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낯설고 고된 노역처럼 느껴졌다. 그날 내 인생에 있어서 낚싯대를 던진 것도 처음이었지만 시간이 그렇게도 더디게 간다고 느껴진 것도 처음이었다. 나는 온종일 '세상에 낚시만큼 단순하고 지루한 일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 지금은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서 그 시간에 온전히 스며들어 고요함과 고독이 주는 달콤한 선물을 만끽하려 하지만, 그때는 이런 종류의 행복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떤 이는 낚싯바늘 대신 작은 돌멩이를 메단 낚싯대를 던져놓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그렇게도 사랑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물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낚는다는 이른바 도를 닦는 사람의 낚시법인 것이다. 그만큼 낚시는 삶을 관조하고 지혜를 배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 낚시로 건져 올리지 못하고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해 아쉬워하는 마음은 없다. 그때는 그 소중한 것들이 내 것이 될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놓쳐야 했던 때였다고 생각한다.


해변에 가보면 물살에 둥글둥글하게 다듬어진 돌멩이들을 볼 수 있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갈 때면 해변에 있는 돌멩이들은 서로 몸을 부대끼며 뒹구느라 여념이 없다.

조각가 로댕은 “돌덩이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다 쳐내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기면 비로소 완성된 작품만 남는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염두에 두고 단단하면서도 아름다운 돌멩이를 보면 파도라는 조각가가 만들어 낸 조각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필요한 것들을 모조리 쳐내고 나야 비로소 한 편의 진솔한 글이 남는 것을 고려하면 글을 쓰는 일도 조각하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서로의 부대낌이 억만 번쯤이 되면 저렇게 둥글둥글한 돌멩이가 되는 것인지 나로서는 짐작할 수조차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글 쓰는 사람의 일이라면 더더욱 숙연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길을 걷다가 돌멩이가 발에 차일 때가 있다. 때로는 돌멩이를 밟고 지나가려다가 미끄러질 뻔한 적도 있다. 그럴 때면 땅속을 뛰쳐나와 길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돌멩이의 효용에 대해 생각했다.        



가끔 사람이 너를 밟고 지나갈 수도 있어. 피하지 않고 밟고 간다는 것은 그만큼 너를 위험한 존재라 생각하지 않고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렴. 사람들은 위험하고 더럽다고 생각되면 피해서 간단다.    

  

때론 화가 난 사람이나 술에 취한 사람이 너를 찰 수도 있단다. 그렇다고 기분 나쁘게 생각지 마라. 그들은 너를 한 번 참으로 인해 한동안 발가락 통증으로 아파할 수는 있겠으나 인간은 그렇게 아파하며 감정을 추스르기도 한단다.            


땅속을 뛰쳐나온 돌멩이》 중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