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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Jun 10. 2022

포장마차에서

마음 비우기

포장마차에서



직장 상사와 동료에게 차이고

사귀던 그녀의 양다리에 차이고

세월의 야속함에 차이고 멍든 채

가벼운 주머니로 찾은 포장마차 한구석에 앉아

멍든 속을 풀어줄 소주 한잔 찰랑거리게 따라놓고

아와 오의 중간 발음을 하듯 입을 벌려 한 번에 털어 넣자

목젖은 단 한번 꿀렁거렸다.

  

소주가 목젖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극한의 쾌락으로 감전되면서 

막힌 속이 뻥 뚫리는 듯 ‘캬’ 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동시에 쓰디쓴 인생을 맛보는 듯

눈 주위를 사정없이 찡그리며 잔을 내려놓고

노가리를 질근질근 씹을 

목젖은 한 번 더 꿀렁거렸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그 님들을 축복한 후에

또 한 잔의 소주를 넘칠락 말락 따라 놓고

반은 눈으로 마시고 반은 입으로 마셨을 뿐인데

마음을 비우는 것은 나보다 소주병이 먼저다.


건너편 어느 님이 빈병에 숟가락을 꽂고

구슬프게 카츄샤를 떠나보낼 때

나는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다가

더 큰소리로 말해야 했다

"여기 소주랑 노가리 추가요."






#처음처럼  #포장마차에서 #소주와노가리 #한잔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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